별일은 없고요?
이주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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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세계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선물』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작가 이주란의 세 번째 소설집 『별일은 없고요?』에서 그녀는 조각나고 부서지고 무너져버린 일상을 살았던 사람에게 지금을 견디게 해주는 ‘다음’이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어제의 힘듦을 지켜봐주고 묵묵한 오늘이 되어 담담한 내일로 걸어 가게 한다. 

책 속의 인물들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산다. 사람들의 잣대로 보면 조금 다르고, 외롭게 살고 있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삶에 진심을 다해 충실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평범이라든가 보기 좋다, 괜찮다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 다름에서 오는 인식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봐 줘야 할 사람들이 친구이고 가족이어야 함을 책으로 본다. 

8편의 단편-별일은 없고요?, 사람들은, 어른, 여름밤, 위해, 이 세상 사람, 서울의 저녁, 파주에 있는중 처음에 등장하는 ‘별일은 없고요?’는 
수연이 살던 다가구 주택에서 발생한 화재 이야기로 시작한다. 방화로 발생한 화재 탓에 직장동료의 집에서 신세를 지며 멍한 상태로 다니던 직장을 정리하고 고요한 풍경의 소도시의 삶을 살고 있는 엄마 곁으로 온다. 멀리 왔지만 너무 멀리 온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엄마가 끓여주는 된장찌개를 먹고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난 그녀는 “그동안 고생했으니 당분간은 좀 쉬어”(p13)라는 엄마의 말에 숨을 쉬게 된다. 그렇게 전보다 덜 울고 더 자면서 지낸다. 가끔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기억과 잊고 싶지 않지만 잊히는 기억들로 조각난 마음을 조금씩 맞춰가며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는다. 어느 날 밤엔 갑자기 외롭거나 불안하기도 하지만 별다른 노력 없이도 아침엔 괜찮아진다. 남들 눈에 평범한 삶을 살았던 시간 동안 지고 있었던 무거운 짐이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으로 견딜만하다. ‘별일은 없고요?’라는 문자에 ‘별일은요’라고 담담하게 답하는 그녀가 되었다. 
-무너져도 다시 일으켜 세울 곳이 있다면 괜찮다. 그곳이 가족이 있는 곳이면 괜찮다. 아무 말 하지 않고 안아주는 엄마가 있는 곳이라면 더 괜찮다. 가끔 “별일은 없지?”라고 물어주는 친구가 곁에 있다면 한결 더 괜찮다. 조각나도 괜찮아진 마음이 생겨나면 정말 다 괜찮다. 

사람들은 
나는 친구들에게 계속 시시한 사람으로 남아 있다. 아무 이야기가 있을 리 없는 그런 사람이다. 그럼에도 엄마와 좋은 시간을 보냈다. 늪에 빠졌다고 생각했는데 늪에 빠지는 일에도 좋은 점이 있었다. 엄마가 내게 시간이 나기를 기다렸다가 아픈 것 같았다. 살아온 날들 가운데 가장 슬펐지만 가장 행복한 날들이었다. 서로에게 최선을 다한 시간이었다. ‘다행이다, 너무 좋다, 지금은 정말 행복하다, 그런 말을 엄마가 아주 많이 하는 게 마음 아팠지만 정말 좋았다, 나 역시 그 생각으로 버텼던 것 같다.’(p54)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고 2년을 보냈다. 은영 씨가 가고 나는 전과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다. 외롭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사람들의 삶은 다 거기서 거기다. 그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나의 생각이고 의지다. 사람들의 마음이 변해가듯이 삶은 각자가 만들어가는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지의 선택 역시 내 몫이다. 

어른
장례를 치르고도 아줌마는 서울로 올라가지 않았다. 다음 날 아줌마가 서울로 올라가고 내겐 시간이 필요했다. 할머니의 짐들을 정리하는 대로 이 집도 정리가 될 것이다. 그러고 나면 나도 정리가 좀 되겠지. 내게는 애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할머니 집을 정리했다. 나는 할머니의 옷 한 벌과 일기장 그리고 수저 한 벌을 남겼다. 몇 장 없는 사진도 일기장 사이에 끼워 두었다. 서울에선 아줌마 덕분에 외로울 일이 없었다. 아줌마는 늘 행동으로 내게 말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아줌마가 정직하다고 생각한다.(p110)
-『불편한 편의점』의 염여사를 이곳에서 만났다. 경아에겐 아줌마 박경미가 어른이다. 딸 은비와 아들 승호에게도 엄마로 자신의 시간을 살고 있는 엄마 경미는 어른이다. 

위해
수현아, 조용히 살 거라. 아무래도 그게 좋지 않겠니. 어릴 적에 그 말을 해준 사람은 수현의 할머니였다. 감정을 발설한 적은 없다. 감정이란 건 비밀로 해야 좋다. 억울하다고 말해선 안된다고 배웠다.(p153) 수현은 그 선을 지키려고 노력했고 할머니의 지침대로 최대한 조용히 살아왔다. 
-조용히 산다는 것이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것은 아닐 텐데.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않고 담아만 두는 수현이 안쓰럽다. 열 살의 유리는 앞으로 만날 자신과 서로를 위해 좀 달라졌으면 싶다. 

이 세상 사람
사람이 다 다르다는 것이 가끔은 무섭게, 그래서 외롭다고 느껴질 때가 있었습니다.(p184) 늘 반쪽 인간인 것처럼 살아온 기분. 제 마음인데도 제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았지만 또 어떨 때는 그 사람과 함께 산 시간들을 잊고 사는 것이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란 걸 잠시나마 깨닫는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남겨둔 빚을 다 갚은 후에도 사는 것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사는 게 지겨웠음에도 살았습니다. 그 사람과 같이 사는 동안엔 단 하루도 평범한 날은 없었습니다. 태어나 보니 그 사람의 딸이었습니다. 아무 일이 없는 하루 그냥 살면 되는 수많은 하루일 뿐인데. 왜 난 그게 어렵지. 왜 난 그게 안 되지. 살면서 받은 대부분의 상처를 견뎌왔고 자주 웃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 사람만은 끝내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그러나 어릴 때도 커서도 엄마에게 그런 기분들을 말한 적은 없습니다.
-태어나서 온전하게 행복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사람에게 집은 늘 불안한 곳이다. 이제라도 모녀가 서로에게 짐이 되는 집이 아니라 안식이 되는 집에서 “좋은 꿈 꿨어?”라는 물음에 “아니야 아무것도.”가 아니라 “응” 하며 시작하는 하루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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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은 날아 차 - 작심삼일 다이어터에서 중년의 핵주먹으로! 20년 차 심리학자의 태권도 수련기
고선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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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 내 꿈은 날아 차

심리치료사로 누군가의 죽음이 아니었다면 만나지 않았을 사람들을 만나는 작가는 여러 이유로 돌파구가 필요한 시기에태권도를 시작했다.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완벽하게 낯선 곳에서 지금까지 안 해본 것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큰 기대없이 시작했던 태권도로 책 『내 꿈은 날아 차』까지 출간했다. 누군가에게 심리치료가 자기 이해, 자기 발견, 자기 돌봄의과정인 것처럼 태권도가 작가에게 그 역할을 해주었다고 말한다.


태권도를 시작한 이유는 다 달랐다. 그들은 품새를 수련하는 것이 힘들어 중간에 포기할까 고민했지만 내 몸을 보호하고상대방의 공격에 무의식적으로 손발이 나가게 하기 위해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허약한 체질에서 강철 체력으로 변화된 몸을 체험했고 일이 힘들어 번아웃이 올 때 태권도가 돌파구가 되어 주었으며, 자신을 짓누르던 압박감이 해소되고, 자신이 향상되는 느낌으로 진취적으로 변화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단순히 스포츠로서의 운동이 아닌 태권도가  ‘무도성’ 즉, 신체 단련을 통한 강한 정신력 함양의 중요함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작가는 험한 세상에 자신을 사랑하고 돌봐줘도 모자란 인생인데 왜들 그렇게 ‘극기’를 하며 자신과 싸워 이기라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태권도 수련을 하면서 ‘극기’가 나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 혹은 확장이며. 내 몸을 단련하고 근육의 감각을 깨우고 조절하는 것이 내 몸의 운전대를 내가 잡고 있다는 것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배워야 할 것이 버라이어티하다고 말하는 작가와 태권도를 꾸준히 하겠다는 결심을 하는 수련생들은 ‘날씬한 몸’이나 ‘젊은 몸’을 목표로 수련하지 않는다. 그들은 태권도를 수단으로서가 아닌 태권도 그 자체를 목표로 삼고 있다. 운동으로서가 아닌 무도로서 태권도를 사랑한다. 나이도, 배경도, 성격도, 꿈도 다르지만 그들은 태권도로 진하게 연결되어 있었고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새로운 움직임을 향해 도전하고 있었다. 


1장 태권도를 아십니까?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가 허공을 날아 차기하고 있는 장면을 프로필 사진으로 등록해 놓은 친구의 카록을 본 순간이 태권도의 시작이었다. 태권도는 애들 운동 아니에요?라고 생각했고, 국기원은 도서관 아니에요?의 삶을 살며, 싫은 것이 더많아진 중년에 태권도를 시작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렇게 태권도라는 운동을 다이어트가 아닌 ‘운동뚱’의 마음으로 시작했다. 


도복을 받았다. 거울 앞에서 태권도복이 잘 어울리는 여자, 난 그런 여자가 좋더라는 표정의 내가 그럴듯했다. 


수련을 시작하겠다는 결심인 ‘띠를 묶다’는 수련을 충실히 임하겠다는 태도와 이제 곧 수련을 시작한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태권도 띠의 매듭은 도복을 단정히 입는 것을 넘어 인생의 매듭을 정확하게 묶는 행위의 마침표 같은 것이다.  흰 띠에서 검은 띠까지 가고 다시 그 검은 띠가 수련을 거쳐 물이 빠지고 천이 해지면서 색이 바래지는 흰 띠까지, 숙련도의 계급장 태권도 띠는 그야말로 무도인의 피, 땀, 눈물의 증명이자 연륜이 내공을 증명하는 것이다.


2장 평생 우량한 삶

백설기 같은 피부를 자랑하며 4.5kg로 태어나 평생 우량한 삶을 살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뒤듬바리이며 곰 손입니다의표본처럼 운동신경도 없고 손재주도 없었다. 이런 육체적인 무딤과 곰 손은 내 열등감의 일부가 됐다. 거기다 입맛에 예민함이 없던 어린 시절을 관통하는 시기, 인생 음식으로 순대와 순대 친구들을 가진 나에게는 편식이 뭐예요?인 생활이이어졌다. 나는 주는 대로 먹고 먹는 대로 살이 찌며 민첩성과 순발력을 잃고 파워를 얻었다.


힘을 센 여섯 살 어린이의 에어로빅은 운동에 대한 실망만을 남긴채 끝이 났고, 우량아에게 장착된 나의 비만 유전자와다이어트는 평생 나를 따라다녔지만 결국 살과 싸우지 않기로 결심하고 다이어트를 단념했다.


3장 중년이 된 영심이


내 삶의 가치와 방향을 담고 있는 만화 영화 <영심이> 주제가 중 ‘알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아이’라는 부분을종종 읊조리는 나는 나이 50의 영심이였다. TCI 심리검사(사람이 인성이라는 것을 기질과 성격으로 구분하여 측정하는검사) 상으로 기질적으로 새로운 자극이나 보상 단서에 이끌려 행동이 활성화되는 유전적 성향, 즉 자극 추구 성향이 강한 편이다. 새롭고 낯선 것에 대한 호기심이나 열정적 탐색, 다소 충동적이어서 일단 저질러 보는 성향이 태권도를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남들이 이 나이에 좀처럼 하지 않는 운동을 시작한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 흥분됐다. 영심이의기질을 가진 내가 금방 달아오르고 금방 지겨워하는 태권도를 1년 이상 지속했다는 것은 태권도라는 무예가 지루할 틈이없는 변화무쌍한 매력을 가진 운동이기 때문이다. 


노화 불안에 관한 질문에 그렇다로 대답하는 50대 여자가 된다는 것은 건강식품을 챙겨 먹어야 하고 건강을 돌봐야 할중년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내 나이를 인정하지 못한 채 내적 발악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추하게 늙지 말자는 결심을하고 있다. 그 결심으로 나 자신의 말과 행동을 검열한다.


몸으로 먼저 맞이하는 늙음을 아는 나이가 되었고 눈 뜨면 한 움큼의 영양제를 털어먹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나이가된 것이다. 사람에게 몸은 고통의 근원이다. 나는 통증으로 몸이 소리치며 내는 다양한 소리를 외면하고 있었다. 그러던나에게 태권도는 몸과 마음이 민첩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해준 해결책이 됐다. 


4장 야, 너도 태권도 할 수 있어

꼬리 칸에서 앞 칸으로! 전진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차근차근 기초 동작을 배워갔다. 수련 첫날 죽일 듯이 발차기를 했다. 태권도는 평화의 무예인데 내 발은 불을 뿜었다. 발차기의 원리고 나발이고 요령 없이 있는 힘껏 발차기를 했다. 


모든 품새의 시작은 로봇 태권 V의 준비자세로  자신의 강력한 의지를 표현하는 자세이자 정신을 집중해 기를 모으고, 호흡에 집중하는 자세로 몸을 이완시켜 그 쓰임을 올바르게 해 폭발적인 힘을 나오게 하는  자세다. 


앗! 얏! 핫! 기합 소리 역시 초보 수련생들은 어색하고 부끄럽다.  꽤 그럴듯한 기합 소리를 발화하는 데도 몇 개월이 걸렸고, 첫 수련 승급에서야 비로소 나의 ‘기’를 제대로 활용하게 되었다. 태권도의 기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우선 몸을 움직여야 하는데 나처럼 중년 이후 태권도를 처음 배우는 사람들은 한없이 낯선 태권도의 움직임에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


태권도의 행동양식, 품새에서 품은 모양이나 동작, 됨됨이 등을 나타내는 말이고, 새는 모양새, 꼴, 맵시 등을 의미한다. 품새는 태권도에 대한 잘 짜인 한 편의 이야기 같다. 


격파는 공격 기술을 이용해 목표물을 정확하게 가격해 깨는 행위를 말한다. 파괴지왕으로서 격파는 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초보 수련생에게는 그런 격파를 시키지 않았다. 


겨루기란 기본 기술로 방어, 공격, 이동 동작들을 응용하여 상대방과 우열을 가리는 수련이다. 겨루기에 주어진 시간은단 60초. 너와 나의 거리, 겨루기의 거리는 대인관계의 심리적 거리와 다르지 않다. 태권도는 막고, 차고, 지르는 격투 기술뿐 아니라 기술의 습득 및 활용에 지침이 되는 정신적인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갈고 닦아야 할 마음 그릇, 인성 교육까지 받는다. 


5장 중년의 태권도 친구들을 소개합니다

수련에 참여한 나만큼 힘들어하는 40대들이 있어 마이클 잭슨의 노래 “You are not alone. For I am here with you”처럼 덜 외롭다.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함께 수련하는 이들에게 태권도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태권도를 배우면서포기하고 싶거나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나요? 태권도 수련을 하는 동안 느꼈던 몸과 마음의 변화는 무엇인가요? 다른 운동과 구별되는 태권도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태권도 수련과 관련한 특별한 목표가 있나요?를 질문하고 답을 들었다. 


마지막으로 여전히 태권도를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우리를 기다리는 작가의 바람이 담겨 있다. 9개 중 ‘다른것보다몸과 마음을 함께 단려하고 싶다.’는 문항에서 마음이 흔들리지만 시작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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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은 안전을 배달하지 않는다 - 배달 사고로 읽는 한국형 플랫폼노동
박정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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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은 안전을 배달하지 않는다』는 책의 제목부터 무시무시하다. 인간이 아닌 플랫폼( 콘텐츠나 아이디어를 배포하고 접근하거나, 이로 인한 경제활동이 가능한 하나의 디지털 토대이자 공간을 칭하는 용어) 이 인간의 행동을 제어하고 통제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 안전까지는 책임지지 않는다는 말이 지극히 현실적이라는 사실에 소름이 돋는다.

사람이 다치고 죽는 문제에 관해 쓰는 건 어려운 일이다. 어려운 일임에도 이 일을 해낸 작가 박정훈은 프롤로그에서 라이더온유니온 조합원들이 이 책의 살아있는 참고문헌이자, 현장이 증언자들이라고 말하면서 출근했다가 무사히 퇴근해 소중한 사람과 밥을 먹고 수다를 떠는 게 기적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언택트 시대의 개막과 함께 발달한 플랫폼 산업의 행동 집단인 라이더들을 ‘도로 위를 달리는 무법자’라고 생각했다. 책을 통해 그들이 당연히 제공받아야 할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음을 알았고, 갈등은 사고의 순간뿐만 아니라 배달 서비스를 생산, 유통, 소비하는 전 과정에서 일어난다(p39)는 사실도 알았다. 무지해서 오해했고 편협해서 곡해했다. 차가운 시선으로 편견을 가지고 그들을 바라보았던 시간들을 반성했다. 우리들 눈에 보이지 않는 배달 플랫폼 기업 대신 눈앞에 보이는 라이더를 비난할 수밖에 없는 지금의 구조가 안타까울 뿐이다.

배달 서비스라는 것은 말 그대로 서비스다. 서비스에는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고 합리적인 대우를 받고 존중해야 한다. 라이더들이 과속을 하고 신호위반을 하게 만드는 일차의 책임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나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사고의 순간은 찰나이지만 사고에는 맥락이 있고 이야기가 있다.(p11)

배달노동자들의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 초대 위원장이자 7년 차 배달 라이더인 박정훈 작가의 『플랫폼은 안전을 배달하지 않는다』에는

1장 초보, 사고의 흔적을 몸에 새기다.

‘번쩍’이라는 단어를 체험하게 한 첫 사고의 추억을 떠올리면 배달통에서 콜라가 피처럼 흘렀던 사건과 초보 라이더가 시동을 켜기까지의 시간이 떠오른다. 초보 시절을 무사히 넘기고 운명처럼 찾아온 사고로 두렵기만 했던 생애 첫 산재 신청을 하고 라이더들의 작업장이자 배달 기업의 공장, 도로를 다시 달렸다. 전쟁터 같은 배달대행의 현장에서 ‘주의’ 표지판이 없는 공장에서 안전하게 일하려면 스스로 긴장하며 온 세상에 ‘경고’ 스티커를 붙여놓고 달려야 한다.

시민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배달 플랫폼 기업이 아니라 눈앞에 보이는 라이더를 비난할 수밖에 없다. 도시가 일터인 라이더와 도시가 생활공간인 시민들 사이에 화해할 수 없는 갈등이 벌어지는 이유다.(p43)

2장 도로 위의 생존 게임- 전투 콜

총알택시와 총알 배송이 만날 때 오토바이 기사 강석구 씨는 하늘로 튕겨져 날아갔다. 아파서 병원에 누워 있어야 하지만 가만있어도 빠져나가는 돈 때문에 일어나 달려야 했다. 동네 배달대행사에서 일하는 강석구 씨는 진화 혹은 퇴화, 끊임없이 변하는 배달 산업의 3가지 형태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배달노동자들이 면허 없어도 OK, 동네 배달대행사 입사하기로 배달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것도 문제지만 아무런 진입 장벽 없이 배달대행사를 차릴 수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다. 현재의 배달 산업은 안전교육은커녕 산재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장이 돈을 버는 구조이고, 라이더들이 사고 이후 뼈가 부러져도 다시 오토바이에 오르는 이유를 제공하고 있는 형태이다.
라이더가 앱에 접속하는 순간, 전투가 시작된다. 일단 전투가 시작되면 제도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함에도 안전교육이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발생한다.

이윤호 안실련 정책본부장은 안전 운행을 유도하기 위한 최소한의 법, 제도적 시스템도 구축하지 않고 단속 등 단기적으로 이륜차 운전자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정책은 지양되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p97)

3장 AI 사장님이 라이더를 관리하는 방법

혁신의 아이콘 플랫폼 산업이 산재 신청 기업 배민과 쿠팡이츠가 1위와 9위의 사고 현장이 되었다. 라이더가 되기 위해 배달 라이더로 접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 5분이면 ‘배달 경험 없어도 누구든지 쉽게!’ 배달을 시작할 수 있다. 치타와 번쩍 배달의 비법을 익힌 초보 라이더가 도로 위를 질주하게 되는 것이다.

플랫폼의 알고리즘 도입으로 숙련된 관리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이제는 AI가 관리자를 대체한다. 이로써 더 이상 라이더를 위한 플랫폼은 없다: 플랫폼별 AI 알고리즘과 배달료는 각 플랫폼 기업마다 차이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알고리즘은 왜 모르고리즘이 됐을까에 대해서도 알 수가 없다. 알고리즘이 설계한 도박판, 배달료와 수수료 징수체계 등에 대한 투명한 정보 소통과 합의가 없으면 배달노동자의 산재사고로 그 비용이 전가되는 현실이 계속 이어질 것이다.

지금은 인간이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이 인간을 활용하고 손님을 관리자로 만드는 AI의 실시간 감시와 배달은 앱 속에서 이뤄지지 않는다. 실험을 통해 AI 배차를 따르면 노동 강도는 늘고 거리당 단가는 줄어들어 효율이 떨어진다는 결과를 얻었다. 실험이 끝난 뒤 도심을 가로지르는 라이더들의 동선을 보니 도시 위의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를 시찰한 모습을 본 듯했다.
이제 배달 플랫폼의 밸런스 게임: AI에 순응하고 임금 적게 받기 VS. AI에 저항하다가 잘리기의 선택과 날씨에 따라 변하는 작업장과 Al, 그리고 안전에 대해서 또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에서 “우리는 데이터가 아니다”로 외쳐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전태일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쳤지만, 오늘날 노동자들은 “우리는 데이터가 아니다. 우리는 캐릭터가 아니다”라고 외쳐야 할 것 같다.(p195)

4장 갑질 사건이 아니라 산재입니다.

손님이 배달노동자에게 폭언을 퍼부은 사건이 벌어졌다. 폭언으로 사건이 언론이 주목하는 사고, 혹은 언론이 외면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하고, 고급 아파트에서는 배달노동자들을 화물용 엘리베이터에 태워서 배달을 시켜 벌어지는 일들도 있다. 마음 위에서 벌어진 사고들로 ‘갑질 근절 및 처우나 인식 개선’에 대한 사항들을 요구하지만 잘 실행되고 있지는 않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라이더에게 헬멧만큼 블랙박스가 절실한 이유가 생겨나고 화장실 하나 둘 곳 없는, 모두가 비운 자리에 인권의 자리가 절실하다.

배달노동자의 마음속에 상처와 응어리를 남기지만 현실에서는 없던 일이 되는 것이 마음 위에서 벌어지는 사고의 가장 큰 특징이다.(p221)

5장 배달 공장의 혁신을 위한 5가지 제안

라이더를 위험으로 모는 5가지는 크게 위험한 작업장, 위험한 작업 도구, 과속을 유도하는 임금체계, 직업교육의 부재와 미숙련노동, 불충분한 법체계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우선 고용 형태와 임금체계가 오토바이 속도계를 조절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적절한 안전 배달료 체계의 실현이 필요하다. 문제는 법이 아니라 라이더를 위한 최저임금제도의 순차적 도입과 플랫폼 산업의 진짜 '혁신'을 위한 규제들: 이륜차 면허, 관리체계 정비로 안전한 노동환경 만들기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륜차 운전자의 눈으로 세상 보기로 도로, 안전장비 정비와 ‘벤더’라는 이름의 바지 사장인 실종된 사장님을 찾는 방법: 노조법(도주 법) 제2조의 개정으로 개별 라이더의 안전불감증을 잠재워야 한다.

배달노동자들이 천천히 안전하게 배달하는 것은 단순히 교통법규를 잘 지키는 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음식을 전달하는 과정은 도로 위의 주행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토바이를 타기 전과 내린 후에 벌어지는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해야 한다.(p242)

마지막으로 배달 라이더를 위한 산재보험 사용 설명서로 산재신청 과정과 방법을 부록으로 세세하게 다루고 있다.

#플랫폼은안전을배달하지않는다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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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운
티파니 D. 잭슨 지음, 김하현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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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8] 그로운

『그로운』의 주인공 챈티의 모습은 강렬하다. 그만큼 애달팠다. ‘꿈을 좇는 일이 악몽으로 변해버린 소녀의 핏빛 성장담’이라는 날 것의 표현과 챈티의 “어른들의 세상은 나를 널빤지 아래로 떠밀어 악어들의 먹잇감으로 만들었다.(p357)”는 문장이 세상을 향한 외롭고 뜨거운 외침으로 들렸다.

읽는 내내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게 만든다. 맬컴 엑스는 “미국에서 가장 무시받은 사람은 흑인 여성이다. 미국에서 가장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은 흑인 여성이다. 미국에서 가장 방치되는 사람은 흑인 여성이다.(p364)”라고 했다.

무시받고, 보호받지 못하며, 방치된 흑인 소녀는 빨리 성장해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노래할 수 있기만을 바랐다. 단지 그뿐이었다. 자신의 꿈을 위한 선택이 스스로를 나락으로 빠지게 만든 선택이 된 챈티는 세상으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함에도 피해자가 되어 미지의 세계로 밀려났다가 간신히 자신의 세계로 돌아온다.

2017년 청소년 범죄를 다룬 미스터리 스릴러 『혐의 Allegedly 』로 데뷔해 흑인 소녀 중심의 흥미진진한 서사로 각광받는 베스트셀러 작가 티파니 D. 잭슨은 월터 딘 마이 어스상, 코레타 스콧 킹-존 스텝토 신인작가 상을 수상했으며, 맬컴 엑스의 청년 시절을 다룬 소설 『맬컴 엑스의 각성 The Awakening of Malcolm X 』에 공저자로 참여할 만큼 필력을 인정받는 작가다.

그녀의 네 번째 장편소설인 『그로운』은 출간 즉시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기록했고 퍼블리셔스 위클리, 혼 북, 미국 도서관 협회 등에서 “신체적·성적·감정적 학대를 들여다보는 심장 뛰는 스릴러”이자 “이야기를 서서히 고통스럽게 쌓아나가며 충격적이고 오싹한 절정에 다다르게 하는 작품”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전생에 인어였다고 그래서 깊은 바닷속에서 살며 자유롭게 수영하며 갑각류를 먹고 다섯 옥타브의 발라드를 불렀다고 믿는 열일곱 살의 주인공 인챈티드는 학교 수영장 샤워실에서 노래 연습을 하는 가수 지망생이자 수영 선수다.

짧은 머리의 흑인이라는 이유로 억측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매사 바르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그녀다. 친구 갭의 추천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에 지원하게 된 오디션장에서 전설적인 R&B 가수 코리 필즈로부터 찬사의 말을 듣는다. 이후 코리의 무료 개인 레슨을 받게 된 그녀는 부모님의 불안과 친구 갭의 외면을 뒤로하고 코리와 투어를 떠나면서 가수로서 성공할 기회가 왔다고 믿었다. 하지만 코리는 꿈과 사랑 그리고 챈티 가족들의 생계를 미끼 삼아 그녀를 정신적으로 지배해 성적인 착취와 폭력을 일삼는다.

삶을 되찾으려는 용기와 노력으로 코리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와 가족들 곁으로 돌아온 것도 잠시 어느 날 코리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자 챈티는 유력한 살인 용의자가 된다.

2000만 장의 앨범을 팔아치운 슈퍼스타 코리 필즈는 오랜 기간 소녀들을 대상으로 강간, 폭행, 감금, 불법 촬영 등의 범죄를 저지르고도 법망을 피해 다니며 명성을 유지한다. 그는 일반인을 단숨에 유명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권력과 어마어마한 경제력, 감미로운 목소리와 성적 매력, 인챈티드가 가난한 집에서 꿈을 펼치지 못하는 열악한 상황, 부모에 대한 반항심, 성인 남성과 만난다는 사실을 감추게 하는 수치심을 이용해 그녀를 자신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게 만들고 사회로부터 고립시킨다.

이 소설은 그루밍 성폭력이 “가해자가 피해자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신뢰를 얻은 뒤” 행해지며 “피해자를 길들이고 가스라이팅을 일삼아 피해자의 정신 상태를 지배” 하는 범죄임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인챈티드는 특히 흑인 여성 피해자의 증언을 믿지 않는 미국 사회와 경찰, 코리에게서 이득을 보는 음악 업계의 묵인 때문에 코리의 폭력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피해자를 지원하며 코리의 실체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단체 ‘코리 어나니머스’의 노력과 흑인 커뮤니티 윌앤드윌로우의 뒷받침에도, 그녀는 코리가 살인으로 숨을 거두고서야 비로소 해방감을 느낀다.

챈티는 할머니가 말했던 얼빠진 왕자가 굼뜨게 찾아오기 훨씬 전에 바다에서 스스로를 구하고, 자기 삶을 꼭 붙잡고서 누가 뭐라 생각하고 말하든 개의치 않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했던(p391) 인어공주 에리얼처럼 다른 사람의 시선을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끝까지 밀고 나간다. 무대가 그리웠던, 무대 위에서 솟구치는 아드레날린이 그리웠던 그녀는 모든 일을 겪은 뒤에도 자유롭게 하늘을 난다.(p294) 챈티가 수치심에 빠져 숨지 않도록 용기 낼 수 있게 만든 가족들과 친구 갭의 도움으로 비로소 인생의 봄을 맞이한다.

챈티 아버지인 테리의 말처럼 첸티의 잘못은 하나도 없다. 아주 조금도 없다. 다 큰 어른의 행동을 아이가 책임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자신의 꿈을 위해 세상 밖으로 나간것을 두고 잘못했다고 질책의 말을 한다면 꿈을 향해 세상 밖으로 나갈 사람이 누가 있을까? 내일의 희망의 꿈꾸고 있는 아이들의 목을 그 희망의 끈으로 조르는 어른의 잘못일 뿐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믿어주는 한 사람만 있으면 『그로운』(GROWN)할 수 있다는 것을 『그로운』을 통해 본다.

#그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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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투박하고 서투르다면 갭은 모델같고 자신만만하다. 내가 불안과 걱정이 심하다면 갭은 나이에 비해 차분하고 현명하다. 그 무엇도 갭의 평정심을 깨트리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백합으로 가득한 들판에 몇 없는 두 유색인 소녀다. 갭은 학교를 통틀어 내 존재를 과도하게 설명하지 않고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p43)

내 상처는 눈에 보이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피가 흐른다.(p263)

삶을 되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물에 빠져 죽는 것과 무척 비슷하다. 물 위에 떠 있으려고 애쓰지만 옆으로 새로운 정보의 파도가 쓸려 와 나를 미지의 세계로 더 멀리 밀어낸다.(p280)

네 잘못은 하나도 없어. 아주 조금도 없어. 다 큰 어른의 행동을 아이가 책임져서는 안 되는 거야.(p284)

내 눈은 아주 또렷해. 다른 사람들이야말로 자기 눈앞에 있는 걸 못 보지.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단다.(p390)

코리는 내 가족과 친구에게서 나를 빼앗고, 내 자유를 빼앗고, 내 심장을 빼앗고, 내 노래를 빼앗았다! 몸속에 뜨거운 분노가 끓어오른다.(p418)

지금은 여름이지만, 나는 꼭 봄 같다. 다시 생기를 되찾고 꽃을 피우며 자라나는 식물 같다.(p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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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는 게 뭐 어때서 - 씩씩한 실패를 넘어 새로운 길을 만드는 모험
김수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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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 중 SBS에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열둘 살부터 그렸던 그림을 내려 놓았다. 스물다섯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스물여섯에 『도망치는 게 뭐 어때서』를 썼다. 


작가는 미술을 그만두고 아나운서 준비를 해보겠다고 다짐했던 것도, 아나운서가 되어서 다른 일을 해보겠다고 박차고나온 것도 더 잘할 수 있는 일이나 더 좋아하는 일을 발견해서가 아니라 ‘더 이상 할 수 없어서’ 도망친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막다른 길마다 도망치고 도망쳐서 여기까지 왔다고 말한다. 그런데 아니었다. 피하거나 쫓기어 달아났던 것이 아니라 막다른 길에 서 있는 자신을 스스로 구해 내어 새로운 길로 나아가게 전환을 했던 것이다.  


살면서 누구나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있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바라던 방향이 아니고 원하는것이 아니라고 느껴질 때 그래서 그 경로를 바꾸고 싶을 때 그 자리에 주저앉기도 하고, 그만두고 다른 길을 택하기도 한다. 그것이 누군가의 눈에는 도망으로 보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의 눈에는 용기 있는 변화일 수도 있다. 내 눈에 작가는 용기 있는 변화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방송인이고 PD인 재재의 말처럼 이 책은 ‘살아가는 대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갈 용기를 주는 책’이고 작가김수민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그 도전으로 변화할 줄 아는 영화 투모로우의  ‘애니’였다.


사유의 정원으로 단련된 그녀의 사유와 문장들이 놀랍다.  


CHAPTER 1 씩씩한 실패


그해 봄 나는 가난했다. 당시 내게는 융통할 애정도 나눌 온기도 기대되는 미래나 설레는 계획도 없었다. 궁상맞을 정도로 가난했던 나 자신을 견딜 수가 없어  결국 가난했던 봄의 사직서를 냈다. 


동경으로 가득했던 상상 속의 아나운서와 직업인인 아나운서라는 현실 사이에 괴리가 컸다. 일하면서 아픈 것이 죄스럽게 느껴진다는 것이 가장 괴로웠다. 당시 나의 불행은 쉬면 나아질 단순한 슬럼프가 아니었다. 견디고 버티는 삶이 꿈꾸던 모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가난을 극복할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불행은 슬럼프? 아님 실패? 고민이시작되었다. 내가 가장 쥐고 싶었던 것은 ‘나의’ 행복, ‘나의’ 일, ‘나의’ 삶이었다. 그래서 무수한 말들을 뒤로하고, 고집스럽게 퇴사를 결심했고, 감행했다. 


일을 완전히 그만두고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엄마에게 카톡이 왔다. ‘날개 달았을 때 하고 싶은 거 다 하렴’. 드디어 나에게자유의 날개가 생겼다.


 나의 퇴사를 두고 소문이 무성했다. 돌이켜보면 하늘의 무게를 함께 버티는 사이인 가족들에게 새롭게 선택한 아낭운서라는 나의  선택을 책임지기 위해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사는 어른으로 ‘홀로서기’가 아닌   ‘함께 서기’를 하는 것으로 나를 지키려고 노력했다. 


나를 지키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코미디언 박미선 씨가 양희은 씨에게  ‘그렇게 즐겁지 않았으니까’라고 한 답글을 보고서야 나를 지키는 일의 기본은 내 기분을 지키는 일이고 즐거운 일은 즐겁게, 즐겁지 않은 일은 즐겁지 않게 하면 됨을 알았다. 그럼에도 미래의 긍정까지 끌어다 쓴 나는 결국 ‘긍정 파산’을 했고 긍정을 대신할 것으로 분노와 슬픔, 기쁨과 강함이 필요했다. 이러한 감정으로 변화무쌍한 세상을 살기로 했다. 


나는 팔자가 말해주는 것으로 아나운서가 된 것도 아니고 퇴사를 한 것도 아니다. 일을 그만둔 지금 입사 초기 나를 가장괴롭혔던 라디오 뉴스가 가장 그리운 업무가 되었다. 지나고 보면 별일이 아니다. 모든 것은 반드시 지나간다. 과거가 된실패를 목도하면 ‘멀리서 보니 다 작아 보이는 게 웃기네.’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CHAPTER 2 원하는 삶의 궤도


아나운서 일을 그만둔 지금도 여전히 나는 내가 살아내고자 하는 궤도를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매일 내가 원하는방향으로 걷다 보면 어딘가에 도착해 있을 거라는 건 안다. 자격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하루하루 내가 원하는 모양새로 노력하며 살아낼 수 있다면 잘 사는 것이다. 나의 하루하루는 곧 ‘궤도’가 될 것이다. 


돌이켜보면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내가 했던 열정의 쌩쇼들이 있었고, 예원학교 시절 독서모임이었던 ‘사유의 정원’으로퇴사 후 다시 충만해질 수 있었다. 쓸모없음을 견디는 일과 도비와 노비 사이에 어느 것으로  시간의 주인이 될지를 고민하며 내 꿈이 현실적인 꿈인지 아닌지를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 신입사원 시절 애기와 외계인 사이를 오가며 살았던 시간을 되짚어 보며 삶의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 관계된 ‘의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의미는물건이나 대상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내가 만드는 일이다. 새삼 의미의 재정의를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함을깨닫는다. 


CHAPTER 3 무언가가 될 나이


퇴사 후 남은 대학 생활을 마무리했다. 진로를 바꾸는 것은 서식지 옮기기와 유사하다. 곁에 무엇을 두고 살아가는 지가내가 삶에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알리는 지표라고 들었다. 그리고 언제든 뭘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신에게 맞는 옷을 찾으려면 옷을 갈아입어야 하고 누구나 옷 갈아입을 땐 잠시 나체다. 우리는 언제나 답이 있는 물음보다 답 없는 물음을 더 많이 안고 산다. 때가 되면 안다. 지금이 한창 배울 나이인지 아니면 무언가가 될 나이인지. 그때의 나는 무언가가 될 나이가 아니었다. 사실 무언가가 될 나이 같은 건 없다. 


이제 나는 ‘리트(LEET, 법학 적성검사)’를 공부하는 수험생이다. 그렇게 공부를 시작한 지 석 달 만에 임신을 했다. 내 세상이 끝나는 기분을 맞 본 임신 초기를 보냈다. 그렇게 두 번의 리트를 통해 스스로에게 무엇을 욕망하는가에 대해 묻고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내 실패가 쪽팔렸다. 나와는 달리 남편은 창피해하지 않았다. 어려운 시험이니 떨어지는 거라는 말에 수긍이 갔다. 당장의 결과가 나의 가치를 정하지는 않는다. 결과는 값으로 표현될 뿐 가치는 내 안에서 나온다. 가격과 가치를 분리해 생각해야 한다. 견고한 기준은 편협함을 초래한다. 무언가가 될 나이라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 어른과 성인의 차이가 뭘까?  요즘 부쩍 어른이란 ‘이해’+‘력’이 길러진 성인, 성숙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CHAPTER 4 완벽하진 않아도 충분한 우리


태어나서 이렇게 마른 남자를 처음 봐서, 처음 보는 남자라 당황했다. 신랑하고 결혼하게 된 건 어쩌면 삼프터는 국룰인나라에서 만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세 번만 더 보려고 했는데 평생 보게 됐다. 영원히 살 것처럼 안일하게 굴다가는 타이밍을 놓친다. 진짜로 가지고 싶은 걸 가지면 그만이다. 기회는 한 번뿐이니 진짜로 원하는 것을 또렷이 해야 한다. 남편은 누군가의 그림자처럼 내 옆에 있어주었다.  내 결혼의 이유는 결핍된 부분이 달라서였다. 서로의 구멍 난 부분이 달라서 두 사람을 포개면 왠지 구멍이 전부 가려질 것 같았다. 완벽한 결혼이 아니라 ‘충분한’ 관계였다. 


살아보니 ‘사는 게 별게 없어’라는 말은 ‘사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말로 들린다. 임신으로 엄마로 산다는 건 인간을제대로 인간으로 살아보게 하는 뼛속부터 가지고 태어났던 태초의 고난을 꺼내보는 담금질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받는 것에서 사랑의 능력을 더 키우고 싶게 만드는 반려견 똥꼬을 만나고 나서 주는 사랑의 기쁨을 배우고, 어린 시절부터 키우던 사랑이로 메멘토 모리, 시간의 유한함과 삶의 가능성의 무한함을 상기하고 있다. 삶에는 적절한 속도가 있다. 그리고 당장의 속도보다 중요한 것이 삶에는 분명히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일은 온다. 어김없이 또 다시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새로운 기회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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