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별일은 없고요?
이주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4월
평점 :
2012년 <세계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선물』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작가 이주란의 세 번째 소설집 『별일은 없고요?』에서 그녀는 조각나고 부서지고 무너져버린 일상을 살았던 사람에게 지금을 견디게 해주는 ‘다음’이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어제의 힘듦을 지켜봐주고 묵묵한 오늘이 되어 담담한 내일로 걸어 가게 한다.
책 속의 인물들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산다. 사람들의 잣대로 보면 조금 다르고, 외롭게 살고 있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삶에 진심을 다해 충실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평범이라든가 보기 좋다, 괜찮다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 다름에서 오는 인식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봐 줘야 할 사람들이 친구이고 가족이어야 함을 책으로 본다.
8편의 단편-별일은 없고요?, 사람들은, 어른, 여름밤, 위해, 이 세상 사람, 서울의 저녁, 파주에 있는중 처음에 등장하는 ‘별일은 없고요?’는
수연이 살던 다가구 주택에서 발생한 화재 이야기로 시작한다. 방화로 발생한 화재 탓에 직장동료의 집에서 신세를 지며 멍한 상태로 다니던 직장을 정리하고 고요한 풍경의 소도시의 삶을 살고 있는 엄마 곁으로 온다. 멀리 왔지만 너무 멀리 온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엄마가 끓여주는 된장찌개를 먹고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난 그녀는 “그동안 고생했으니 당분간은 좀 쉬어”(p13)라는 엄마의 말에 숨을 쉬게 된다. 그렇게 전보다 덜 울고 더 자면서 지낸다. 가끔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기억과 잊고 싶지 않지만 잊히는 기억들로 조각난 마음을 조금씩 맞춰가며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는다. 어느 날 밤엔 갑자기 외롭거나 불안하기도 하지만 별다른 노력 없이도 아침엔 괜찮아진다. 남들 눈에 평범한 삶을 살았던 시간 동안 지고 있었던 무거운 짐이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으로 견딜만하다. ‘별일은 없고요?’라는 문자에 ‘별일은요’라고 담담하게 답하는 그녀가 되었다.
-무너져도 다시 일으켜 세울 곳이 있다면 괜찮다. 그곳이 가족이 있는 곳이면 괜찮다. 아무 말 하지 않고 안아주는 엄마가 있는 곳이라면 더 괜찮다. 가끔 “별일은 없지?”라고 물어주는 친구가 곁에 있다면 한결 더 괜찮다. 조각나도 괜찮아진 마음이 생겨나면 정말 다 괜찮다.
사람들은
나는 친구들에게 계속 시시한 사람으로 남아 있다. 아무 이야기가 있을 리 없는 그런 사람이다. 그럼에도 엄마와 좋은 시간을 보냈다. 늪에 빠졌다고 생각했는데 늪에 빠지는 일에도 좋은 점이 있었다. 엄마가 내게 시간이 나기를 기다렸다가 아픈 것 같았다. 살아온 날들 가운데 가장 슬펐지만 가장 행복한 날들이었다. 서로에게 최선을 다한 시간이었다. ‘다행이다, 너무 좋다, 지금은 정말 행복하다, 그런 말을 엄마가 아주 많이 하는 게 마음 아팠지만 정말 좋았다, 나 역시 그 생각으로 버텼던 것 같다.’(p54)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고 2년을 보냈다. 은영 씨가 가고 나는 전과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다. 외롭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사람들의 삶은 다 거기서 거기다. 그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나의 생각이고 의지다. 사람들의 마음이 변해가듯이 삶은 각자가 만들어가는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지의 선택 역시 내 몫이다.
어른
장례를 치르고도 아줌마는 서울로 올라가지 않았다. 다음 날 아줌마가 서울로 올라가고 내겐 시간이 필요했다. 할머니의 짐들을 정리하는 대로 이 집도 정리가 될 것이다. 그러고 나면 나도 정리가 좀 되겠지. 내게는 애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할머니 집을 정리했다. 나는 할머니의 옷 한 벌과 일기장 그리고 수저 한 벌을 남겼다. 몇 장 없는 사진도 일기장 사이에 끼워 두었다. 서울에선 아줌마 덕분에 외로울 일이 없었다. 아줌마는 늘 행동으로 내게 말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아줌마가 정직하다고 생각한다.(p110)
-『불편한 편의점』의 염여사를 이곳에서 만났다. 경아에겐 아줌마 박경미가 어른이다. 딸 은비와 아들 승호에게도 엄마로 자신의 시간을 살고 있는 엄마 경미는 어른이다.
위해
수현아, 조용히 살 거라. 아무래도 그게 좋지 않겠니. 어릴 적에 그 말을 해준 사람은 수현의 할머니였다. 감정을 발설한 적은 없다. 감정이란 건 비밀로 해야 좋다. 억울하다고 말해선 안된다고 배웠다.(p153) 수현은 그 선을 지키려고 노력했고 할머니의 지침대로 최대한 조용히 살아왔다.
-조용히 산다는 것이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것은 아닐 텐데.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않고 담아만 두는 수현이 안쓰럽다. 열 살의 유리는 앞으로 만날 자신과 서로를 위해 좀 달라졌으면 싶다.
이 세상 사람
사람이 다 다르다는 것이 가끔은 무섭게, 그래서 외롭다고 느껴질 때가 있었습니다.(p184) 늘 반쪽 인간인 것처럼 살아온 기분. 제 마음인데도 제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았지만 또 어떨 때는 그 사람과 함께 산 시간들을 잊고 사는 것이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란 걸 잠시나마 깨닫는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남겨둔 빚을 다 갚은 후에도 사는 것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사는 게 지겨웠음에도 살았습니다. 그 사람과 같이 사는 동안엔 단 하루도 평범한 날은 없었습니다. 태어나 보니 그 사람의 딸이었습니다. 아무 일이 없는 하루 그냥 살면 되는 수많은 하루일 뿐인데. 왜 난 그게 어렵지. 왜 난 그게 안 되지. 살면서 받은 대부분의 상처를 견뎌왔고 자주 웃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 사람만은 끝내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그러나 어릴 때도 커서도 엄마에게 그런 기분들을 말한 적은 없습니다.
-태어나서 온전하게 행복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사람에게 집은 늘 불안한 곳이다. 이제라도 모녀가 서로에게 짐이 되는 집이 아니라 안식이 되는 집에서 “좋은 꿈 꿨어?”라는 물음에 “아니야 아무것도.”가 아니라 “응” 하며 시작하는 하루가 되길 바란다.
#별일은없고요
#이주란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6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