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의 음악 - 날마다 춤추는 한반도 날씨 이야기
이우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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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 날씨의 음악

<한겨레>에 <이우진의 햇빛>이라는 칼럼을 쓴 기상학자 이우진 님의 신간 『날씨의 음악』을 읽을 때는 꼭 음악과 함께 읽기를 권한다. 책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을 따라 어울리는 곡을 고르고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이 책만큼은 연주곡을 찾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말하고 싶다. 

춤추는 한반도의 날씨 이야기를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맞는 연주곡이나 책에 나오는 곡과 함께 읽다 보면 계절에 따른 날씨가 내 기분을 좌우하게 만드는 이유가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과 비가 내리면 누군가가 떠오르고 바람이 불면 왜 지나간 것이 그리워지는지 들을 수 있다. 거기에 기압이 낮으면 공기의 떨림이 둔해져 소리가 평소보다 저음으로 들리게 되는 것도 알게 되고, 대기가 너무 깨끗하면 구름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과 공기가 없다면 소리도 들을 수 없다는 지식도 얻게 된다. 

오페라 하우스에서 연주곡을 듣기 전에 팸플릿으로 그날 연주할 음악과 음악가에 대해 알려주는 것처럼 날씨를 만들어 내는 요소들인 바람과 구름과 비가 나타내는 여러 상관관계를 계절 별로 오케스트라가 곡을 연주하듯 우리에게 들려준다. 

1악장 
햇빛에 깨어나는 봄은 그 시작이 매번 다르고 날씨 또한 변덕이 심하다. 최근 온난화가 가속되면서 봄을 노래하는 1악장이 짧아지고 대신 2악장인 여름이 점점 길어진다. 꽃샘추위는 햇빛이 대지를 깨우는 계절의 흐름과 때를 맞춰 발달한 온대저기압의 주기가 맞아떨어지며 나타난다.(p23) 매년 봄이 오고 때가 되면 여름에게 자리를 넘겨주지만 봄 날씨는 매일이 다르고 매년 다르다. 그리고 날씨에 따라 그날의 옷차림과 기분이 달라지듯 삶의 즐거움과 애환을 표현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봄의 흙에는 지구가 탄생할 때부터의 깊은 세월이 녹아 있고 지구의 역사가 침전되어 있다. 이 흙이 있기에 물은 흙과 대기를  오가며 순환할 수 있고, 이 땅도 생명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p59) 봄의 소리는 비발디 <사계> ‘봄’의 1악장에서 들을 수 있다. 

2악장 
물길 따라 젖어드는 여름은 으레 더운 계절이지만 유난히 더위가 심해지는 것은 대기의 흐름이 막혀서이다.(p83) 그리고 요즘 같은 장마철에 북태평양 고기압의 가장자리를 따라 남서풍을 타고 수증기의 물길이 한반도로 밀려오면 여기저기 집중호우가 쏟아진다.(p65) 비가 온다는 것은 어디에선가 증발한 수증기가 물이 되어 내린다는 것으로 기후변화는 온도를 높이는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기에 한 곳에 집중 호우가 내린다면 다른 지역에는 폭염과 가뭄을 동시에 불러오는 양면성을 지닌다.(p89) 장맛비는 평소 내리는 비와 다르게 주룩주룩 내린다.(p131) 내리는 비를 보며 작가의 추천인 연인 조르주 상드를 걱정하며 작곡한 쇼팽의<빗방울 전주곡>이나 베토벤이 여름에 오스트리아의 하일리겐슈타트에 머물던 시절을 회상하며 작곡한 <교향곡 6번>‘전원’을 들으면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있으면 주룩주룩 내리는 비가 지겹지 않게 보이기도 한다. 

3악장 
구름 사이로 흘러가는 가을이 되면 세상이 색으로 뒤덮인다.(p150) 풍파를 만나야 덕이 드러나듯이 낙엽도 으스러질 때마다 지나온 세월의 향기를 내어 놓는다.(p152) 정말 단풍잎 하나하나에는 지난 한 해 동안 날씨와 함께 살아온 이파리의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 년간 흘린 땀의 대가가 이파리의 색을 통해 드러난다.(p153) 드러난 낙엽의 색을 바라보며 내가 평이한 날씨의 혜택을 누리는 동안 누군가는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으로 힘든 시간을 보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가을날 높은 하늘의 구름이 달라 보이기도 한다. 그 달라지는 가을의 중후한 표정을 장 밥티스트 바리에의 <소나타 2번> G단조에서 두 대의 첼로 선율로 느껴볼 수 있다. 

4악장 
밤과 꿈에 빠져드는 겨울의 밤은 더욱 길다. 겨울의 차가운 공기는 무거운 만큼 남하 속도가 빨라 강풍을 동반한다. 살을 에는 추위가 피부에 전해진다. 피부는 바람이 강할수록 더 춥게 느껴진다.(p232) 겨울이면 북구의 바다는 얼어붙는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머지않아 북극해의 얼음이 여름철마다 모두 녹을 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들려온다.(p233) 기온이 임계점을 넘어서면 빠른 속도로 극지의 얼음층이 사라지고 급격한 기후변화가 일어날 거라는 불운한 전망이 현실화가 될까 두렵다. 4악장을 읽으면서 찾아 두었던 음악인 Jeong Park(박정훈)의 음반 <Deep Sunset>의 마지막 곡 ‘Between Winter and Winter’의 무념무상의 기타 음률을 따라가다 보면  바다 위를 떠다니는 유빙으로 침몰한 <타이타닉>의 악몽이 현실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속 불안함이 잦아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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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상담소 - 뇌과학과 정신의학을 통해 예민함을 나만의 능력으로
전홍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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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상담소』의 작가 전홍진은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이나 배우자 친구, 가족의 예민성에 대해 바라보는 시각을 넓히면 좋겠다.’(p10)고 말하며 ‘매우 예민한 사람들은 특이한 사람들이 아니고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며, 예민한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의 예민성을 잘 다루고 조절할 수만 있으면 오히려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p16)고 말한다.

타고난 예민한 기질은 사람마다 다르다. 민감성은 자극에 고 반응성을 하는 아이와 저 반응성을 나타내는 아이가 민감과 둔감의 성향으로 나타는 것일 뿐이다. p14에 있는 표 1을 이용해 자신이 매우 예민한 사람인지 아닌지 평가를 해 볼 수 있는 것처럼 스스로 자신의 민감성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평가한 것으로 나의 예민성을 염두에 두고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잠이 안 와요”라는 불안 편,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라는 우울 편,
“잊고 싶은 기억이 자꾸 떠올라요”라는 트라우마 편,
“이유 없이 화가 나고 감정 조절이 안돼요”라는 분노 편을 읽어가다 보면, 예민하지 않는 사람은 매우 예민한 사람들이 예민성을 조절하려는 스스로의 노력만큼 가족, 친구, 동료들을 포함한 주변인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 예민한 사람들은 내가 가진 예민함이 나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상담 치료를 통해 치료된다는 사실에 위로받을 수 있다.

각각의 사례들 중에서도
불안 편의 스트레스만 받으면 어지러운 주부 지영씨.
우울 편의 50대 기러기 아빠인 주영씨의 우울의 원인이 된 허탈감과 배신감 그리고 식물인간이 된 동생 민우씨와 함께 살아가는 민식씨의 불안에서 야기된 우울.
트라우마 편의 어린 시절 엄격한 아버지로부터 맞고 자라 이제 30대가 된 청년 철영씨가 치료를 통해 트라우마를 극복해가고 있는 사연과 극단적인 선택을 한 아들로 힘겨움의 시간을 겪었던 영주씨가 가족들의 도움으로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사례.
분노 편의 어린 시절 폭언을 많이 듣고 자란 청년 동주씨에게 담당의가 안전 기지가 되면서 분노감이 줄어들면서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부터 자유로워져가는 사연과 매사 어떤 일이 생기면 자신을 비난하는 성향을 가진 민숙씨와 자녀들에게 좋은 기억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에 무조건 참기만 했던 영도씨의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모든 것이 어린 시절 자란 환경에서 만들어진 우울이라는 감정에서 야기된 일임을 알 수 있었다.

책의 마지막 “예민함을 나만의 장점으로 만들어 보자” 실전 편에서 작가는 ‘예민한 성격은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니니 자신의 예민성에 강박을 가지지 말고, 그 예민성의 방향을 조절해 보자’(p334)고 말한다. 예민성이 어느 부분에서 장점이 되고 단점이 되는지를 파악해 에너지의 방향을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실전 편에서 자신의 예민성을 관리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나만의 좋은 자동적 사고를 만들어 불편한 자극을 없애고, 나만의 에너지 관리를 방전보다는 충전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여러 상황으로 부모가 안전 기지가 되어주지 못한다면 나에게 맞는 자신만의 안전 지기를 구축하고, 나쁜 기억을 대신할 좋은 기억과 자신의 환경과 생활 리듬에 맞는 좋은 생활 리듬을 만들라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방어기제를 알아보고 가족과 분리 개별화를 하는 것으로 스스로 긴장완화 훈련을 해보길 권한다.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상담소』를 읽는다고 예민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불안과 우울, 트라우마와 분노로부터 분리되어 그 예민함이 사라지게 하지는 않는다. 다만 예민함이 특별한 것이 아님을 알게 하고, 예민함으로 우울, 불면증, 공황장애, 불안장애 등 정신적인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미리 자신을 발견하고 잘 다룰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면 예민한 특성은 장점으로 발현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누구에게나 예민함이 있다. 그 예민함을 방전시켜 무력한 사람이 될지 아니면 잘 활용해서 특별한 능력이 되도록 만들지는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으며 찾을 수도 있고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상담소』를 통해 찾을 수도 있다. 좀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읽기에서 그치지 말고 직접 상담소를 방문해 보는 것도 예민함을 나만의 능력으로 장점화시키는 좋은 방법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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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보는 인류의 흑역사 - 세상에서 가장 불가사의하고 매혹적인 폐허 40
트래비스 엘버러 지음, 성소희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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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트래비스 엘버러 Travis Blborough는 대중문화의 거의 모든 것을 아우르는 전방위적 글쓰기의 대가이다. <가디언 The duardian>이 선정한 ‘영국 최고의 대중문화역사가 중 한 명’으로 웨스트민스터대학교에서 문예 창작을 가르치고 있는 그는 낯선 장소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통해 지식과 교훈을 전달하는 데 탁월하다. 그런 그가 우리가 잊어버리고 내버려 두고, 버림받고, 소외되고, 사람이 살지 않고, 사람이 살수 없는 폐허의 장소에 대한 마흔 개의 이야기를 『지도로 보는 인류의 흑역사』라는 제목으로 묶어 책을 출간했다.

‘버려진 장소라고 해서 전부 애도할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어떤 장소는 기억하기조차 싫거나 방문이 꺼려질 수도 있고, 또 어떤 장소는 너무도 끔찍해서 잊지 못할 수도 있다.’(p11)고 작가는 말했다.

작가의 말처럼 고대와 현대의 폐허들은 아름답기도 하고, 추하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했다. 책 속이 그 장소와 건물들은 진가를 인정받아 복원된 곳도 있고, 완전히 황폐 해진 곳도 있다. 잊혀서 완전히 사라진 대상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하지만 방치는 희망을 모두 포기해야 할 근거가 아니라 그 반대다. 버려진 장소는 다가올 세상을, 잔해에서 구할 가치가 있는 것들을 더 오래 더 열심히 생각해 보라고 격려(p13)하듯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쓸쓸한 최후를 암시하는 징조가 있었지만 끝내 파국을 맞은 장소로 <예정된 운명이 이루어진 곳> 중의 하나인 튀르키예, 이스탄불의 뷔위카다 보육원은 1898년 유라시아에서 세워진 목조 건물 가운데 가장 큰 건물로 1903년 콘스탄티노풀 총대주교청에서 아이들의 안식처인 보육원과 학교로 쓰였으나, 1964년 문이 닫힌 후 유기와 방치라는 가장 잔인한 운명을 겪고 있다. 예정된 운명이 예정치 못한 운명으로 살아오다 결국 방치되어 유물이라는 흉물로 남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징조가 파국이 된 건물은 음흉함보다 스산함으로 남아있다.

변하는 세상을 따라잡지 못해 폐허가 된 공간들을 기록한 <세상의 변화에서 끝내 도태되다>에서 독일의 뷘스도르프는 한때 소련 바깥에서 가장 규모가 큰 붉은 군대의 주둔지였다.(67) 그러나 종전과 함께 독일의 군사력이 감축되면서 뷘스도르프 군사기지는 쓸모를 잃었다. 이후 다시 잠시 부활했으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뷘스도르프 기지는 과거의 한 조각으로 그 존재가 도태되었다. 그럼에도 뷘스도르프는 현재 지난날의 어두운 사건들에서 벗어나고자 ‘책의 도시’로 이미지를 바꾸려고 최선의 노력하고 있다.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허물어진 건물은 분단이라는 과거를 선명하게 일깨워주고 있지만 한편 역사에 대한 본능적 감각을 추구하는 도시 탐험가와 밀리터리 마니아를 끌어모으(p73)는 것으로 세상의 변화에 맞서고 있다.

한때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관광지였지만, 지금은 누구도 찾지 않는 곳이 된 <시간의 무게에 잠식되다> 중의 한 곳인 미국 애리조나의 샌티클래스는 ‘크리스마스의 수호성인’에서 ‘크리스마스 유령’이 되었다. 캘리포니아의 부동산 중개인 니나 탤벗에 의해 만들어진 이곳은 1950년대 66번 국도 운전자들에게는 인기 명소였으나 1985년 66번 국도 전체가 공식 폐쇄되(p151)면서 시간의 무게에 잠식당했다. 결국 샌티클로스 리조트는 공식 지도에서 지워졌고, 1955년을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건물이 문을 닫으면서 허물어지고 망가진 처량한 유령의 모습이 되었다. 시간의 무게로 무너진 이곳은 이제 독사를 조심하라는 경고가 붙어 있는 폐허의 장소가 되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되었다.

과거 눈부신 번영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쇠락한 장소로 <찬란한 영광의 잔해>가 된 미국 뉴욕 대표 지하철역인 시청 지하철역은 오스만제국의 파빌리온 양식을 본떠서 지은 것으로 주철과 유리로 만든 키오스크와 돔 지붕을 자랑했다. 경사진 계단으로 곧장 이어지는 멋들어진 입구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이어질 것만 같았다. (p238) 그러나 지하철의 성공과 철도망의 확장, 신규 노선의 추가로 결국 가장 유명한 시청역(p241)은 1945년 12월 31일에 마지막 승객을 맞이한 뒤 문을 닫았다. 시청역의 환상선은 여전히 살아남아 6호선 열차의 방향을 바꾸는데 이용되고 있다. (p242) 찬란한 영광의 잔해로 남아있는 시청 지하철역은 공공건물로 대중들에게 널리 개방되어 그 찬란함의 영광을 다시 찾게 되기를 지금도 꿈꾸며 지금도 기다리고 있다.

차별과 혐오, 시대의 어둠을 증언하는 공간들이 모여 있는 <오래된 이야기의 마침표> 중의 하나로 미국 ‘복지의 섬’인 루스벨트섬에 세워진 천연두 병원이 있다. 음산한 건물인 이 병원은 렌윅에 의해 1856년 섬의 기반암인 편암으로 지어졌다. 이후 1870년대 초까지 수명을 이어오다 문을 닫았던 병원은 1879년 뉴욕시 간호학교로 사용되었다. 이후 1956년 간호학교와 교내 산과 병동이 문을 닫으면서 건물은 그대로 버려졌다.(p265) 1921년 공식적으로 ‘복지의 섬’이라고 불린 이곳은 1973년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이름을 따서 루스벨트섬이 되었다. 렉윅이 남긴 이 괴기스러운 괴물은 뉴욕에서 최초의 폐허 명소가 되었고, 1976년 미국 국립 사적 목록에 오르면서 상당한 명성을 얻었다.(p266) 차별과 혐오의 공간이었던 이곳은 여전히 담쟁이덩굴이 뒤덮인 으스스 한 폐허로 남아 과거 전염병의 확산을 막는데 그 역할을 톡톡히 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자신의 건재함을 뉴욕의 명소로 자리잡은 것으로 역사의 마침표가 되어 굳건히 존재함을 당당하게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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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 끝에 사람이
전혜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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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진 작가의 신작 『바늘 끝에 사람이』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현대를 살아가는 ‘나’고, ‘너’고, ‘우리’였다. 작가는 아프고 어두운 그래서 과중할 수 있는 주제를 무겁지 않게 세상에 내놓았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억울하게 고통받은 사람들의 슬픔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5천 명이 죽었다는 것을 ‘5천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라고 한데 묶어 말하는 것은 모독이다. 그게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5천 건 일어났다’가 맞다"라고 했던 기타노 다케시 말이 떠올랐다. 여기에 일어나는 죽음 역시 그러하다. 

사죄하고 반성한다고 해서 그 모든 것이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별일 없이 사는 듯하다가도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작가처럼 책을 읽다 보면 부끄러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신의 힘을 빌려서라도 복수하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바늘 끝에 사람이
기계가 몸의 75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지만, 나와 내 동료들은 여전히 사람이라고. 짓밟고, 무시하고, 때려잡고, 굶겨 죽이고, 사람을 절망의 궁지로 몰아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들어도 우리 모두는 너희와 같은 사람이라고.(p53)
-지상에서 7만 2천 킬로미터 위, 카운터웨이터 꼭대기에 내가 남아 있다. 기계가 몸의 75퍼센트를 차지한 몸으로 부당 해고에 맞서 농성 중인 내가 8개월째 있다.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말라죽어가지 않기 위해, 떨어지고 깔리고 끼이고 부서지며 그렇게 죽어가는 일이 없도록 살기 위해 지구 밖에서 궤도 엘리베이터 공사현장에서 일했던 내가 버티고 누워 있다. 무언가의 상징이 되는 일에는 흥미가 없었다.(p49) 그럼에도 세상이 투사로 만든 내가 이곳에 있다. 

안나푸르나
인도나 네팔이나 다른 성지에서 인생의 해답을 찾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 같은 것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지만, 적어도 어떤 안부는 이런 식으로라도 전해 야만 한다고, 윤선은 생각했다.(p101)
- “닫힌 교문을 열며”라는 모토로 참교육을 하고자 하는 초등학교 선생님인 윤선에게 자신의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카라비러를 건네며 안나푸르나에 가겠다던 선생님이 계셨다. 안나푸르나에는 갔으나 등반에 성공하지 못했던 참 교육자였던 선생님들이 안나푸르나에는 계시다. 

할망의 귀환
살아라, 살아, 살아라, 혼아, 살아라, 그렇게 저승꽃 뿌리면서 일으켜 세우면 이 섬이며 해군 기지며 뭍놈들이며, 피로 얼룩진 땅 위로 새하얗게 바닷물이 뒤덮을 거야."(p136)
-돌부처가 피를 흘리니 홍수가 나고 해일이 일었다는 설이 제주에 있다. 가난해서 치마 한 벌 해 입을 수 없었던 설문대할망. 오백 명의 아들들을 먹여 살리려고 죽을 끓이다가 죽 솥에 빠져 죽은 할망을 살리려던 설문대할망의 오백 명 아들 중 한 명을 자처한 고주사. 저세상으로 돌아간 거대한 존재를 이승으로 불러내려했던 고주사를 말리려던 박 경장이 제주에 있다. 

단지
막 동이 트는 아침 햇살 아래, 썩어가는 피비린내가 진동하던 마을을 집이란 집은 전부 불타 무너지고 길가 아무 데나 사람들이 피와 내장을 쏟은 채 죽어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을 한복판에 소화가 있었다. 작은 단지 하나를 품에 꼭 안은 채로.(p189)
-제주 살이를 하고 있는 주연과 하린이 계곡에서 호기심에 열어 본 단지에는 제주 4.3 사태 때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혼이 있었다. 세린의 이모할머니 순희. 만신 송자의 신 딸인 순희가 겪었던 이야기가 단지에 있다. 

내가 만난 신의 모습은
삼준은 마치 이날까지 마음속에 품고 있던 비밀을 다 풀어놓고 빈 껍데기가 된 것처럼 보였다. 이제는 아무도 믿지 않을 그 신의 비밀을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해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p241)
-자신이 학도병 시절 만났던 죽령의 산신 다자구 할머니 이야기를 며느리 진숙에게 들려주는 여든다섯의 노구의 몸을 한 삼준이 있다. 

창백한 눈송이들
그 눈에 닿을 때마다 여자들 하나하나가 마치 눈송이처럼 녹아내렸다. 유진 은 그 눈을 맞으며 울었다. 그들 한 명 한 명이 바로 자신이 고 자신의 친구들 같았다. 아주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들 같았다.(p304)
-달빛 아래 하늘에 뜬 달보다도 더 희고 창백한 얼굴로 활주로 위 군복을 입고 나타난 여자들과 단발머리의 김소위.  젊은 나이에 억울한 일을 당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울부짖음이 차가운 아스팔트 위의 눈송이가 되어 흩뿌리는 곳에 유진은 서 있었다. 

너의 손을 잡고서
누군가 손을 잡아주어야 하는 일이 생기면 그저 한 사람이라도 더 보탠다는 마음으로 찾아가 나란히 섰다. 손을 잡았다.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그리고 수현을 다시 만났다.(p340)
-간호사 출신 양호 교사 미경과 꾀병을 부리며 양호실로 쉬겠다고 오는 수현이 있다. 일련의 일로 학교를 그만두고 부지런히 살면서 쉬는 날엔 거리로 나갔다. 누군가 손을 잡아주어야 하는 일이 생기면 그저 한 사람이라도 더 보태다는 마음으로  찾아가 나란히 섰다. 손을 잡았다. 할 수 있을 했다. 그리고 다시 수현을 만났다. 세월호 추모 집회에서, 강남역 추모 집회에서, 홍콩 민주화 지지자 집회에서 그리고 또 다른 집회에서 손을 잡은 그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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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람 - 뒤흔들거나 균열을 내거나
김도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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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람』의 작가 김도훈은 희미해져가는 물건, 사람, 사건을 수집하는 사람이다. 영화 잡지 <씨네 21> 기자, 남성 패션지 <GEEK> 디렉터, <허핑턴포스트> 편집장을 거쳐 지금은 프리랜서 글쟁이로 오만가지 글을 쓴다. 현재 유튜브 영화 채널 <무비건조>에 출연 중이다. 

작가의 말처럼 그에게는 낯선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익숙한 사람일 수 있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눈에 익은 이름 네 명을 빼고는 이름도 생소한 낯선 사람들뿐이었다. 책에 수록된 사람들은 그들이 행했던 일들로 추앙받거나 지탄을 받았다. 기행으로 사회에서 배척도 당하지만 이들이 했던 행동과 행위를 선악의 잣대로 가볍게 판단할 수는 없었다. 

부제가 ‘뒤흔들거나 균열을 내거나’인 이유도 책 속의 낯선 사람들의 삶으로 독자인 우리의 의식의 흐름이 뒤흔들리거나 균열이 생기게 만들기 때문이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 것으로, 또 논쟁거리가 넘쳐나는 인물들의 삶으로  주관적 견해를 갖게 해 준것만으로 작가에게 감사하고 싶어진다. 세상에는 낯설지만 보고 있다보면 눈이 가는 남다른 사람이 참 많다. 그 이름마저 『낯선 사람』 속에 위대한 사람들이 곳곳에 있었다. 

다이앤 포시: 고릴라 사회가 받아들인 첫 인간
에르네스트 보: 30초에 한 병씩 팔리는 향수 만든 ‘예술가’
치치올리나: 보수적인 이탈리아에서 국회의원이 된 포르노 스타
에드워드 로: 고양이를 도시형 반려동물로 만든 위대함
레니 리펜슈탈: 불순한, 그러나 미학적인 히틀러의 치어리더
애덤 드라이버: 영화가 끝난 뒤 더 잘생겨 보이는 남자, 대체 왜?
린제이 로한: 오락거리로 소비된 짧은 전성기를 누린 하이틴 스타
곤도 마사히코: 일본 버블(거품) 경제의 상징
타미 페이: 미국 기독교에 가한 흥미로운 균열
롭 핼퍼드: ‘남성적 소세계’ 때려 부순 혁명적 커밍아웃
스텔라 테넌트: 살아 있었던, 누구보다도 살아 있었던 세기의 모델
로이스 맥매스터 부졸드의 보르코시건: ‘장애는 극복 대상’이라는 편견을 깨부수다
모나 헤이더: 히잡을 ‘쓸’ 자유를 노래한 미국의 힙합가수
프랭크 게리: 몰락하던 공업 도시를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든 건축계 거장
호세 페르난데스: 우주복 디자인하는 할리우드 특수의상 디자이너
미셸 우엘베크: 극도로 존경받고 극도로 미움받는 남자
테리 리처드슨: 누구도 입에 올리기 쉽지 않은 패션계의 볼드모트
벤 코언과 제리 그린필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아이스크림을 이용하다
라나 델 레이: 힙스터 비평가들이 사랑하는 ‘문제적’ 가수
디터 람스: 미니멀리즘 제품 디자인의 시작
로버트 저메키스: 〈아바타〉 신화 이전에 〈폴라 익스프레스〉가 있었다
네이선 미어볼드: 공룡 덕후인 억만장자
맥스 마틴: 30년간 팝시장을 장악한 독재자
유리 겔러: 한때 전 세계를 홀렸던 현대적 미신 그 자체
김지연: 단 한 번, 그러나 절대 사라지지 않을 절정의 순간을 산 가수
조이 밀른: 파킨슨병을 냄새로 아는 슈퍼파워의 소유자

고릴라 사회가 받아들인 첫 인간이었던 다이앤 포시
영국에 침팬지 연구가이자 환경운동가인 제인 구달이 있다면 미국에는 ‘고릴라에 미친년’ 다이앤 포시가 있다. 그녀는 고릴라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마녀’가 되기를 자처했다. 포시가 가장 아끼던 수컷 고릴라 디지트가 밀렵꾼에 대항해 무리를 지키려다 죽었다. 내전이 계속되는 그곳에서 많은 고릴라가 학살당하고 새끼 고릴라는 판매용으로 잡혀갔다. 르완다 사람들은 먹고살아야 했고 그녀는 그런 르완다 사람들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과격한 방식의 보호운동을 펼치던 포시는 입국 금지 대상자가 되었다. 

미국으로 돌아와 있는 동안 그녀가 집필한  『안개 속의 고릴라』는 멸종해가는 고릴라를 보호해야 한다는 전 인류적인 인식을 처음으로 만들어 냈다. 하나의 책이 한 분야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느냐 묻는다면, 나는 『안개 속의 고릴라』를  내밀 것이다.(p21)라고 작가는 말했다. 포시의 책이 출간된 후 밀렵은 조금씩 줄었다. 대신 고릴라 관광으로 르완다 정부는 수익을 창출했다. 포시는 관광 코스 때문에 고릴라들이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르완다 정부에 끊임없이 항의했다. 그러다 결국 1985년 12월 26일 다이앤 포시는 캠프에서 잠을 자다 살해당했다. 

그녀가 사라진 세상에서 아직 고릴라 밀렵은 계속되고 있다. 이제 남은 고릴라가 1000마리가 채 못된다고 한다. 포시의 전쟁은 아직 끝나선 안된다. 

몰락하던 공업 도시를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든 건축계 거장 프랭크 게리
건축이 인간의 심미안을 만족시키고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한국의 전설적인 건축가 김중업 걸작으로부터 배웠다.(p152) 우리는 김중업의 위대한 랜드마크를 놓쳤다. 그에 반해 빌바오는 가지고 있다.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건축한 프랭크 게리는 건축계의 오스카인 ‘프리츠커 상’을 수상한 거대한 슈퍼스타다. 스페인 북구 바스크 지역의 중심 도시 빌바오는 몰락하던 공업 도시였다. 생기를 잃어가던 도시를 살리기를 위해 문화를 이식하기로 한 바스크 정부의 계획이 적중했다. 

미술관은 건축계의 혁명을 불러일으키며 현재까지도 100만 명이라는 숫자의 관광객들이 방문한다. 건설 초기 지역 언론은 프랭크의 설계안이 도시의 역사성을 파괴할 것이며 엄청난 적자를 안겨줄 거라며 격렬하게 반대했으나 개의치 않고 건설을 강행한 모험이 성공을 한 것이다. 그의 건물을 두고 설계적 문제를 무시하고 독특하게 뒤틀린 외양에만 집착했다는 비판이 있지만 그의 건축론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2019년에 오픈 한 루이 비통 메종 서울이 그의 작품이다. 

파킨슨병을 냄새로 아는 슈퍼파워의 소유자 조이 밀른
인간에게는 슈퍼파워가 없다. 인간은 슈퍼히어로가 될 수 없다. (p273) 그럼에도 인간에게 원인 모를 이유로 슈퍼파워 능력이 발현되는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타인의 병을 냄새로 진단하는 일흔두 살의 영국 여성 조이 밀론이 그 증거다. 다른 인종보다 한국인에게 발병이 더 잦은 파킨슨병. 그 병에 걸린 남편에게서 사향(musk)의 냄새가 난다는 것을 조이 밀론은 알게 되었다. 이후 대학의 연구팀들과의 공동연구로 인공지능 후각 시스템이 개발되었고 점점 더 발전해가고 있다. 그녀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능력을 ‘저주’인 동시에 ‘축복’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녀의 말처럼 그가 가진 ‘큰 파워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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