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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보는 인류의 흑역사 - 세상에서 가장 불가사의하고 매혹적인 폐허 40
트래비스 엘버러 지음, 성소희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평점 :
작가 트래비스 엘버러 Travis Blborough는 대중문화의 거의 모든 것을 아우르는 전방위적 글쓰기의 대가이다. <가디언 The duardian>이 선정한 ‘영국 최고의 대중문화역사가 중 한 명’으로 웨스트민스터대학교에서 문예 창작을 가르치고 있는 그는 낯선 장소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통해 지식과 교훈을 전달하는 데 탁월하다. 그런 그가 우리가 잊어버리고 내버려 두고, 버림받고, 소외되고, 사람이 살지 않고, 사람이 살수 없는 폐허의 장소에 대한 마흔 개의 이야기를 『지도로 보는 인류의 흑역사』라는 제목으로 묶어 책을 출간했다.
‘버려진 장소라고 해서 전부 애도할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어떤 장소는 기억하기조차 싫거나 방문이 꺼려질 수도 있고, 또 어떤 장소는 너무도 끔찍해서 잊지 못할 수도 있다.’(p11)고 작가는 말했다.
작가의 말처럼 고대와 현대의 폐허들은 아름답기도 하고, 추하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했다. 책 속이 그 장소와 건물들은 진가를 인정받아 복원된 곳도 있고, 완전히 황폐 해진 곳도 있다. 잊혀서 완전히 사라진 대상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하지만 방치는 희망을 모두 포기해야 할 근거가 아니라 그 반대다. 버려진 장소는 다가올 세상을, 잔해에서 구할 가치가 있는 것들을 더 오래 더 열심히 생각해 보라고 격려(p13)하듯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쓸쓸한 최후를 암시하는 징조가 있었지만 끝내 파국을 맞은 장소로 <예정된 운명이 이루어진 곳> 중의 하나인 튀르키예, 이스탄불의 뷔위카다 보육원은 1898년 유라시아에서 세워진 목조 건물 가운데 가장 큰 건물로 1903년 콘스탄티노풀 총대주교청에서 아이들의 안식처인 보육원과 학교로 쓰였으나, 1964년 문이 닫힌 후 유기와 방치라는 가장 잔인한 운명을 겪고 있다. 예정된 운명이 예정치 못한 운명으로 살아오다 결국 방치되어 유물이라는 흉물로 남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징조가 파국이 된 건물은 음흉함보다 스산함으로 남아있다.
변하는 세상을 따라잡지 못해 폐허가 된 공간들을 기록한 <세상의 변화에서 끝내 도태되다>에서 독일의 뷘스도르프는 한때 소련 바깥에서 가장 규모가 큰 붉은 군대의 주둔지였다.(67) 그러나 종전과 함께 독일의 군사력이 감축되면서 뷘스도르프 군사기지는 쓸모를 잃었다. 이후 다시 잠시 부활했으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뷘스도르프 기지는 과거의 한 조각으로 그 존재가 도태되었다. 그럼에도 뷘스도르프는 현재 지난날의 어두운 사건들에서 벗어나고자 ‘책의 도시’로 이미지를 바꾸려고 최선의 노력하고 있다.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허물어진 건물은 분단이라는 과거를 선명하게 일깨워주고 있지만 한편 역사에 대한 본능적 감각을 추구하는 도시 탐험가와 밀리터리 마니아를 끌어모으(p73)는 것으로 세상의 변화에 맞서고 있다.
한때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관광지였지만, 지금은 누구도 찾지 않는 곳이 된 <시간의 무게에 잠식되다> 중의 한 곳인 미국 애리조나의 샌티클래스는 ‘크리스마스의 수호성인’에서 ‘크리스마스 유령’이 되었다. 캘리포니아의 부동산 중개인 니나 탤벗에 의해 만들어진 이곳은 1950년대 66번 국도 운전자들에게는 인기 명소였으나 1985년 66번 국도 전체가 공식 폐쇄되(p151)면서 시간의 무게에 잠식당했다. 결국 샌티클로스 리조트는 공식 지도에서 지워졌고, 1955년을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건물이 문을 닫으면서 허물어지고 망가진 처량한 유령의 모습이 되었다. 시간의 무게로 무너진 이곳은 이제 독사를 조심하라는 경고가 붙어 있는 폐허의 장소가 되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되었다.
과거 눈부신 번영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쇠락한 장소로 <찬란한 영광의 잔해>가 된 미국 뉴욕 대표 지하철역인 시청 지하철역은 오스만제국의 파빌리온 양식을 본떠서 지은 것으로 주철과 유리로 만든 키오스크와 돔 지붕을 자랑했다. 경사진 계단으로 곧장 이어지는 멋들어진 입구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이어질 것만 같았다. (p238) 그러나 지하철의 성공과 철도망의 확장, 신규 노선의 추가로 결국 가장 유명한 시청역(p241)은 1945년 12월 31일에 마지막 승객을 맞이한 뒤 문을 닫았다. 시청역의 환상선은 여전히 살아남아 6호선 열차의 방향을 바꾸는데 이용되고 있다. (p242) 찬란한 영광의 잔해로 남아있는 시청 지하철역은 공공건물로 대중들에게 널리 개방되어 그 찬란함의 영광을 다시 찾게 되기를 지금도 꿈꾸며 지금도 기다리고 있다.
차별과 혐오, 시대의 어둠을 증언하는 공간들이 모여 있는 <오래된 이야기의 마침표> 중의 하나로 미국 ‘복지의 섬’인 루스벨트섬에 세워진 천연두 병원이 있다. 음산한 건물인 이 병원은 렌윅에 의해 1856년 섬의 기반암인 편암으로 지어졌다. 이후 1870년대 초까지 수명을 이어오다 문을 닫았던 병원은 1879년 뉴욕시 간호학교로 사용되었다. 이후 1956년 간호학교와 교내 산과 병동이 문을 닫으면서 건물은 그대로 버려졌다.(p265) 1921년 공식적으로 ‘복지의 섬’이라고 불린 이곳은 1973년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이름을 따서 루스벨트섬이 되었다. 렉윅이 남긴 이 괴기스러운 괴물은 뉴욕에서 최초의 폐허 명소가 되었고, 1976년 미국 국립 사적 목록에 오르면서 상당한 명성을 얻었다.(p266) 차별과 혐오의 공간이었던 이곳은 여전히 담쟁이덩굴이 뒤덮인 으스스 한 폐허로 남아 과거 전염병의 확산을 막는데 그 역할을 톡톡히 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자신의 건재함을 뉴욕의 명소로 자리잡은 것으로 역사의 마침표가 되어 굳건히 존재함을 당당하게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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