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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런어웨이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이나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책을 읽기 전 보이는 표지는 아름답고 예쁘기만 했다. 그런데 다 읽은 후의 느낌은 좀 달랐다. 노을이 붉게 타고 있는 듯한 배경을 뒤로하고 들판 위에 홀로 서 있는 여인의 모습이,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라 가만히 서 있는 그 모습이 이 소설의 주인공 '아너'의 마음을 표현한 듯했다.
약혼자의 배신으로 언니를 따라 도망치듯 떠나온 영국, 새로운 곳에서 새 출발을 하겠다는 희망도 잠시, 언니가 세상을 떠나고 '아너'는 이 낯선 곳에서 철저하게 혼자가 되어버린다. 결혼이라는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미국으로 온 언니와는 달리 아너는 특별한 계획이 없었다. 우연히 알게 된 모자상점주인 '벨'의 집에서 한동안 머물렀고, 벨의 동생이자 노예 사냥꾼인 '도너번'과 묘한 관계로 얽히기 시작한다. 얼마 후 언니의 약혼자 '애덤'의 도움으로 애덤의 집에서 살 수 있게 되고, 곧 헤이메이커 집안에 시집을 가게 된다. 물론 남편을 좋아하는 마음도 있었겠지만, 100% 그녀의 의지라기보다는 상황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내린 결론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곳에서 정착하기 위해서는 결혼을 해야만 했으므로.
결혼한 이후에도 그녀는 가족과 완전히 섞일 수 없는 물에 뜬 기름 같은 존재로 살아간다. 노예제도에 관한 가족과의 의견대립은 그녀의 상황에 크게 한몫을 한다. 노예가 없던 영국에서 자란 그녀에게는 노예제도가 비인간적 자태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그녀는 남들 모르게 조금씩 지하철도라 불리는 사람들을 도우며 노예들을 숨겨주고, 그 일을 알게 된 집안사람들과의 갈등을 겪게 된다. 그런 그녀가 유일하게 위안으로 삼는 것은 바로 '퀼트'였다. 이 소설에서는 특이하게 퀼트를 소재로 썼는데, 죽은 언니의 이불 조각을 잘라 퀼트에 덧붙이는 그녀의 모습에서 그것은 단순히 취미가 아니라 '사람들과의 이야기와 추억'을 담아두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과의 갈등이 심해지고 아너는 결국 '침묵'하게 된다. 입을 닫아버린 그녀의 행동은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양심에 반하는 행동도 하고 싶지 않았던 그녀의 작은 시위였을 것이다. 결국, 못 견디고 집을 나온 아너는 유일하게 마음을 붙일 수 있는 벨의 집에 머무르며 딸을 출산하고 그곳에서 생활한다. 아너의 선택이 궁금했다. 이대로 잭과의 결혼생활을 끝내는 걸까...
결국, 그녀의 선택은 남편 '잭'과 함께 딸을 데리고 이곳을 떠나는 것이었다. 용기를 내어 서부로 떠나 그곳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도망치듯 떠나온 영국, 그리고 상황에 떠밀리듯 한 결혼.그것들은 그녀가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용기를 내었고, 드디어 진정한 자신을 찾아 떠난 것이다. 차가운 현실 앞에 무너지지 않고, 꿋꿋이 맞서는 그녀의 모습은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