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도트 시리즈 5
육선민 지음 / 아작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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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작' 도트 시리즈, 다섯 번째 이야기. 육선민 작가의 『비에』(2024)를 읽었다. 쨍한 보라색 표지에 담긴 기계 심장과 부러진 팔 그리고 앙증맞은 안드로이드 한 '사람'의 이야기. "낡은 안드로이드와 그를 깨운 하나의 하나뿐인 삶을 찾는 이야기. 그들의 삶은 어디에 있을까?"라는 시놉시스를 보고 읽지 않을 사람이 있긴 할까? 우리는 안드로이드 이야기가 품는 모종의 노스텔지어가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A.I.』(2001)과 『바이센테니얼 맨』(2000) 들이 그렇다. 이런 작품을 보면 늘 마음이 안 좋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봇에게도 마음이 있을까?" 사실 이런 질문은 일종의 소망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당연하게도, 어떤 로봇이 등장하든 그것은 모두 인간의 이야기로 치환되기 때문이다. 마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기원. 점차 살갗이 맨들맨들해지고 딱딱해지는 우리들이 목전에 둔 가공할 이야기라서 그렇다.

보모형 안드로이드에게 갖는 기대는 용도에 준할 뿐이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에서 우리는 언제나처럼 그 이상을 원한다. 더 사람처럼 굴었으면 좋겠다. 더 희망했으면 좋겠다. 어떤 세계를 찢고, 태어났으면 좋겠다. 보모형 안드로이드 '비에'의 이야기는 태어나는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인간인 우리로선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삶의 서사다. '비에'는 '하나'가 지어준 유일무이한 이름이다. 나는 처음에 '비에'라는 이름이 '다를 별'(別)의 중국어 발음이라고 생각했다. 특별하다, 대충 그런 뜻으로 말이다. 그렇게 해석했어도 나쁘지 않았겠지만 소설은 정확하게 나의 기대가 오류였음을 지적해주었다. '비에'는 프랑스어로 '삶'이란 뜻이었다.

'비에'는 자신을 개조한 '하나'에게 무조건적인 애정을 품는다. 그것이 애정인 줄도 모르고 내뿜는 애정으로서 '비에'는 그것을 감출 줄 모른다. 그렇게 태어났다는 것인데, 여기서 '그렇게 태어났다'는 말은 다소 묵시론적이면서도 잔인하게 들린다. 실제로 '하나'는 원본 개체의 '보관함'으로 살도록-그녀의 유일한 재능까지-설계된 복제인간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비에'가 새로운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비에'는 그러한 삶을 모른다. '비에'에게 새로운 삶은 곧 '하나'였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예견된 미래다. 안드로이드와 인간이 공존하여 행복해지는 이야기는 거의 없다. 그럴 이유가 드물기 때문일까? 이야기가 꼭 슬퍼야 하는 법은 없지만 슬프지 않을 이유도 없다.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마음이 안 좋았던 이유는 작가의 사변적 문체가 마음을 내내 긁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비에'의 삶이 '하나'와 결코 어울릴 수 없다는 미래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누구도 행복할 수 없고 누군가는 그것을 안고 지지부진한 삶을 이어가야 하지만 이야기는 계속된다. 페이지 넘김이 계속된다. 이것은 인간의 이야기라서. 버려진 사람들이 '파이프' 속에서 근근히 살아남으려 애쓰는 이야기라서.

로봇의 마음에 천착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로봇의 심연, 그러니까 '비에'와 대상자인 '하나'와의 거리가 다소 가깝다는 인상을 지울 순 없었지만, 좋았다. 그리고 또 하나 좋았던 점은 이들이 향한 곳이 '기계들의 무덤'이었다는 것이다. "비에야. 이건 삶이야. 비록 우리는 소모적인 존재였지만, 이 공간에는 모든 것들이 죽어 있지만, 여기에 우리의 삶이 있어. 살아 있어."라는 '하나'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모두가 죽어버린, 말 그대로 '죽은 공간'에서 이들이 발걸음을 옮기지 않았다는 게 이상하게 좋았다. 이곳이 자신들의 삶이라 믿는 애처로움이 마음에 들었다. 쓸모를 다해 죽은 공간에 처박혀도 그곳에서라도 어떤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 '하나'는 '비에'에게 이름을 지어줌으로써 탄생을 가르친다. '비에'에게 그녀는 잠시 신이었던 걸까?

'하나'뿐인 '하나'가 되고 싶어 스스로 '하나'가 된 복제인간은 '하나뿐인 자아'에 회의를 느낀다. 유일성에의 도덕적 혼란을 빚으며 역설적이게도 개조 안드로이드 '비에'와 그녀는 연결된다. 이런 이야기는 감정적으로 힘들지만…… 언제까지고 계속해서 보게 된다. 버려져 죽을 지도 모른다는 원초적인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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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깨비 신이 돌아오도다 도트 시리즈 4
위래 지음 / 아작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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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작' 도트 시리즈! 네 번째 이야기. 위래 작가의 『허깨비 신이 돌아오도다』(2024)를 읽었다. 서평단으로 참여하면서 가장 궁금했던 작품이기도 했는데 일단 표지부터 노란색이라 마음에 들었다. 귀여운 도깨비 픽셀까지. 사실 이 작품이 궁금했던 이유는 아무래도 '허깨비 신'이라는 게 대체 무엇일까, 감조차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제목은 참 발랄한데 내용은 심오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노란색에 안심하지 말걸 그랬나! 생가할 거리가 많은 작품이었다.

작가의 말을 보면 '되먹음 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내용 상에 등장하는 바가 있으나…… 작가가 다소간 신경을 쓴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사실 '되먹음 말'에 관해 구체적으로 아는 바가 없었는데 그래서인지 소설 속에서 '감응관'으로 등장하는 초점 화자 '시운'의 기능이 더욱 흥미롭게 다가왔다. 시공간의 기억을 읽는다는 설정의 '감응관'이라는 존재부터 재미있다. 어쩐지 '치트키'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도 놓칠 수 없는 재미 포인트. '시운'은 이것으로 인해 처음부터 끝까지 고통받기 때문이다.

'시운'이 감응할 때마다 묘사되는 장면이 재미있었다. 작가의 작법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미리 장면을 전개해놓고 그것을 뒤엎는 방식으로 썼을까? 그것이 아니면 처음부터 뒤엎어 놓은 채로 쓰기 시작했을까? 읽는 데에 약간의 수고로움이 있기는 하지만 불편한 독서 경험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었다. 되먹음 말처럼 문자를 되감아 읽는 신선함 때문일까? 읽고 싶은 텍스트의 향연이었다.

'시운'과 '나연'이 쫓기는 대목은-과장 보태서-숨을 헐떡거리며 볼 정도로 흥미진진했다. 여기저기서 총성이 울려 퍼지고 공안들이 픽픽 쓰러지는 장면을 상상하니까 현장감이 느껴져서 좋았다. 다 좋았지만…… 나에겐 딱 한 가지 아쉬움이 남았다. 나는 '이도'라는 캐릭터가 너무 좋았는데. '나연'과 비슷한 방식으로 '이도'가 사라지고 말았다는 점 때문이었다. 앞서 '이도'와 '시운'이 쌓아온 유대감이 무색할 정도로 일순간 일이 발생했던 터라 어떻게 수습할 수는 없겠으나 개인적인 감정으로는 헛헛함이 들었던 캐릭터 갈무리였던 것 같다.

여러 인상적인 장면들이 머리칼을 스치고 지나간다. 소설의 결말 부분이 특히나 강렬하게 여운을 남겼다. 소설에서 '되먹음 말'이 중요한 수단이었던 것처럼 그렇게 '시운'과 상황과 다른 인물들이 수거되며 자리를 찾아가는 마무리가 인상적이었다. 아주 오래 고민하여 쓴 느낌이 들어서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비록 이 소설을 100%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조금 더 길게 소설을 볼 수 있었으면 충분히 그렇게 했을 것 같다는 생각 역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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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바디 인 더 미러 도트 시리즈 3
황모과 지음 / 아작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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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작' 도트 시리즈 세 번째 이야기. 황모과 작가의 『노바디 인 더 미러』(2024)를 읽었다. 흠, 황모과 작가의 이름은 내게 익숙한 편이다. 『서브플롯』(2023)이나 『말 없는 자들의 목소리』(2023) 등 다양한 SF적 실험을 한 작가로 알고 있다. 이것을 '실험'이라고 재단해도 될는지 알 길은 없겠으나…… 황모과 식의 SF는 과감할 정도로 '약한 것들'의 편이라서 재미있다.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였다. 왜 영문(텍스트 자체는 그렇지 않지만) 제목을 선택했는지에의 의문은 일지만. 아무튼. 표지부터 끌렸던 작품이고 내용 역시 범상치 않았다.

많은 이야기가 나눠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다중 인격 서사일까 의심하기도 했는데 내 기대 이상으로 복합적인 서사를 다루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렇게까지 많은 이야기를 200페이지 안으로 할 수 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명료하고 흥미진진했다.

여성 서사로 읽을 수 있다. 작품은 삶에의 의욕을 잃은 연구원 '이혜'의 시선으로 시작한다. 뇌사 판정 이후 기적처럼 살아 돌아온 남편 '영일'을 달가워하지 않는 듯 보이는 이 여성은 뒤로 갈수록 대담한 행보를 보인다. '영일'의 뇌사 판정에 연구원으로서 그녀가 개입되었다는 점도 등골이 으스스해지는데 나는 그게 싫지 않았다. 뇌사 이전의 '영일'은 작품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타인과 '공존'하기로 결심한 '이혜'의 그릇과 회복 이후 '제삼'이 된 '영일'이다. 정확히는 '영일'이었던 '제삼'이겠지만.

나는 작품이 '존재'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다. 거울에 있는 내가 '나'가 아닌 어떤 것, 어쩌면 내가 선택한 '다른 모든 존재'라면? 나의 인격은 사본에 불과하다면? 어지러운 문제다. 사실 실제로 작품 속 사건과 닮은 일이 벌어진다면 사회는 당연히 엉망진창이 될 테지만 소설 속에서나마 그릴 수 있다면 상황은-관망하기로서는-재미있다. 작품이 자꾸만 중요하다고 짚어주는 것을 우리는 놓치면 안 되는데, 소설이 짚어주는 '중요함'에는 이런 것도 있다. '사본과 원본으로서의 인격'이 그렇다. 복잡하지만 이건 꽤 생각할거리인 것 같다. '독립된 사본'이라는 개념이 영 낯설긴 해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삶을 '선택'하는 과정이 사본의 주체적 의지로 작용한다는 설정이 괜찮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혜'처럼 누군가와 공존하며 살아가기를 선택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시작은 어땠을지 몰라도 '내가 무엇이 됨'은 내가 정할수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이혜'와 '주희'의 관계가 좋았다. '제삼'의 선택들을 관찰하는 여정 역시 재미있었지만 작디작은 설정들은 뒤로하고…… 나는 연구원이었던 '이혜'와 버려진 카데바였던 '주희'가 맺는 연결감이 인상적이었다. '이혜'는 내적으로 자아가 버려진 상태였고 '주희'는 외적으로 그것이 버려진 상태였다는 점, 둘은 서로의 의지로 인해 연결되었고 종내 '공존'하기를 선택했다는 점이 말이다. 이렇게 따뜻한 여자들의 이야기라니. 자아를 공유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건 독자인 나 역시 이들과 함께 무언가를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착취하지 않고 그릇됨 없는 테두리 안에 존재하며 서로의 존재를 독립적으로 인정하는 것. 그렇게 공존하기를 약속하는 사회. 약자들이 꿈꾸는 세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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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턴 익스프레스 실버 딜리버리 도트 시리즈 1
이경 지음 / 아작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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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작' 도트 시리즈 첫 번째 이야기. 이경 작가의 『웨스턴 익스프레스 실버 딜리버리』(2024)를 읽었다. 한눈에 들어오는 형광 컬러의 표지가 인상적이다. 처음에는 몰랐다. 우측 상단의 픽셀이 손전등이 아니라 '분유'였다는 사실을! 책을 뒤집어 시놉시스를 보면 더 재미있다. "의족을 끼고 매일 저녁 필라테스를 수강하는 71세 실버 택배원. 24년 무사고 택배 경력을 자랑하는 귀자는 과연 오늘 밤 아기를 무사히 배달할 수 있을까?"라니. 생뚱맞다고 느껴질 정도로 읽기 전에는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귀자'는 같은 마을에 사는 친구 '선희'의 손녀 '다인'가 아프자 갓난아기인 '다인'을 가까운 도심 병원으로 데려다 주기로 한다. 문제는 오늘이 '마적'들이 활개를 칠 정도로 어두운 '그믐'인데다 경찰 인력이며 소방 인력이며 도심에서 발생한 모종의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그들 중 누구도 두메 산골의 응급 사건에는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없었다는 점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귀자'는 대기업 '웨스턴 익스프레스'의 '실버 딜리버리' 배달 기사로서 자신의 트럭을 한 대 보유하고 있었다. 비록 할부가 남아 있기는 했지만! '귀자'는 대기업의 기술로 안전을 보장하는 트럭 안에 '다인'을 싣고 멀고 험난한 길을 떠난다. 그러던 중 '귀자'는 각종 사건 사고에 휘말리게 된다.

'귀자'의 스펙타클한 모험이 누군가에게는 게임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싶다. 실제로 소설은 그녀의 험난한 여정을 매우 아찔하게 묘사하곤 했다. 그렇다고 작품이 마냥 유희적이기만 한 건 아니었다. 노인 화자 '귀자'가 어떤 방식으로든 아기 '다인'을 응급실로 데려가고자 노력한 과정에서 인물의 집요함이 휴먼 다큐처럼 억척스럽기도 했기 때문이다.

'귀자'는 '다인'이 자신의 손녀라도 되는 것처럼 그의 생존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자신이 맡은 소임을 다하려는 '귀자'의 모습은 어쩐지 약자를 보호하려는 약자의 표상처럼 느껴져 애처롭다. 그렇다면 '귀자'는 무엇을 지키려고 이렇게 애를 썼던 걸까? 색이 바래고 물렁해질 정도로 줄기차게 쓰고 다닌 '귀자'의 웨스턴 익스프레스 빨간 모자를 떠올려 본다. 그녀가 지키고자 한 것은 쓸모를 위한 삶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교육 강사가 내던진 토끼를 안쓰러워한 시점부터 그것은 시작되었다고.

'귀자'는 직접적으로 그러한 상황을 겪기도 한다. 난데없이 야생 동물을 만나거나 마적의 공격을 받는 장면을 보면 알 수 있다. 작가의 말에서 보았는데 작가는 '영웅'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한다. 소설을 다 읽고 보니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귀자'는 약자들의 영웅이었다. 본인도 약자이면서 말이다. 목숨을 다 바쳐서라도 얻어내고 싶은 최소한의 삶. 스포츠 스타 '톰 고든'의 사인이 담긴 모자는 '귀자'가 누군가를 구할 새로운 영웅임을 예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에게 당도했다.

노인 화자를 내세워 이야기를 쓰는 건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해당 소설은 노인 화자 영웅담을 잘 담아내려고 노력한 작품이라 생각한다. 정확히 평가하기는 힘들지만…… 확실한 건 독자인 내가 '귀자'의 위험천만한 여정을 함께 걱정하고 동행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 정도. 안전하게 '다인'을 병원에 데려가겠다는 '귀자'의 의지와 함께하게 되었다는 것. 이미 거기서부터 나는 '귀자'의 팬이 되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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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지 마! 왕재미 1 - 지구 온난화는 진짜야? 가짜야? 속지 마! 왕재미 1
다영 지음, 유영근 그림 / 창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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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우리 집에는 창비 청소년 소설 시리즈로 가득 채워진 책장이 있었다. 조금씩 그것들을 읽어 나가면서 나는 이야기에 흠뻑 빠지곤 했다. 세상에는 참 많은 이야기가 존재한다고. 그렇게 깨닫게 되면서 나는 그보다 더 큰 세계와 조우할 준비를 마쳤던 것 같다. 어른이 된 지금 그것들은 가물가물한 기억으로나마 겨우 내 머릿속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잘은 모르겠지만 나는 창비를 떠올릴 때마다 알듯 말듯 한 애틋함으로 반가워지곤 한다.

내가 어릴 때에도 어린이를 겨냥한 동화 시리즈가 많았다. 가령 『윔피키드』 시리즈가 그런데 점심을 먹고 난 뒤 도서관에 가면 아이들이 이미 다 빌려 가고 내가 볼 것은 남아 있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이후로 시간이 지났다. 나는 어른이 되었고 어른이 쓴 '그냥 소설'을 읽는다. 엄밀히 말하자면 동화는 읽을 일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대다수의 어른이라면 나와 같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어른인 내게 동화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재미'의 영역이다.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아마도 심각하게 받아들일 내용들도 많겠지만. 책을 읽으면서 책이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곤 했는데 이렇게 단순한 이야기 구조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선했기 때문이다.

『속지 마! 왕재미』(2024)는 실제로 초등학교 교사인 작가가 쓴 신작 동화 시리즈다. 학습 만화와 줄글 형식이 혼합되어 있어 아이들의 관심을 모으기 꽤 적합한 것 같다. 유영근 작가의 그림체도 정말이지 아기자기하고 글에서 뿜어져 나오는 유머러스함도 책의 재미에 한몫을 한 것 같다. 적재적소에 배치된 학습 만화와 '왕재미의 수사 일지'와 같은 특별 정보문은 '왕재미가 악당 개구라를 찾아 떠난다'라는 단순한 스토리텔링이 가지는 구조적 단순성에 구멍을 메워 이야기의 완성도를 높였다. 아이들은 탄탄한 스토리 라인과 인물 특성 그리고 곳곳에 배치된 정보문과 카툰을 보면서 작가가 전달하고픈 내용인 '지구 온난화에 관한 가짜 뉴스 파헤치기'를 유심히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비판적 사고력과 과학적 탐구력은 물론 기후 변화에 관한 구체적 정보를 자연스럽게 습득하여 크고 작은 정보들로 혼탁해진 시대에서 스스로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게 될 것이다.


『속지 마! 왕재미』에는 인간이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동물과 곤충의 일이다. 다만 모든 사물과 현상이 인간 사회의 그것으로 치환할 수 있을 정도로 적나라하게 표현된다. 이를테면 라이어 시티 경찰서를 살펴볼 수 있다. 라이어 시티 경찰서에는 주로 몸집이 큰 동물들이 많다. 하마, 코끼리가 그렇다. 이들은 환경 문제에 둔감하고 사무 공간을 청소해 주는 곤충 청소부에게 일말의 고마운 감정 따위 느끼지 않는다. 그러니까 라이어 시티에서도 위계가 있다는 논지인데, '왕재미'가 불시착한 지구에는 인간이 아닌 동물과 곤충들만이 실거주민이었고 곤충은 하층민에 불과한 설정인 것이다. 곤충은 작아도 너무 작아서 그들의 민원은 제대로 접소조차 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몸짓은 경찰서 소속 청소부가 되어 동물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것뿐이다.

'왕재미'라는 캐릭터는 강인한 캐릭터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개구라'에게 우주 반지를 빼앗기는 모욕을 당하는 것도 모자라 늠름했던 신체가 작고 볼품없는 '개미'로 바뀌어 버리는 굴욕까지 당한다. 그러나 '왕재미'는 전혀 굴하지 않는다. 노을을 보며 새롭게 다짐한다. 작아진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무엇이든 해내겠다고. 이 대목은 여러모로 중요해 보인다. 어른인 나로선 몸집이 작아진 '왕재미'가 얼른 몸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게 전부지만 아이들은 조금 다르게 생각할 것 같아서였다. 작아진 신체는 아이들과 닮아 보인다. 작은 몸으로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일깨워주는 것이다.

'왕재미'가 라이어 협정을 파기시키기 전 경찰서에서 여느 날과 다름없이 사무실에 가득 쌓인 먼지를 터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이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왕재미'가 구름처럼 일어난 먼지 떼에 둘러싸여 빗자루를 떨어트리고 주저앉아 연신 기침을 하는 장면이 후속할 사건을 예견하는 복선으로 등장했다는 점은 물론 그러한 장면에서 인간 사회의 단면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왕재미'는 동물 경찰들이 떨어트린 과자 부스러기 하나에도 목숨을 부지하기 힘든 위태로운 작업을 하고 있다. 어른들은 이미 지나왔기에 이해할 수 없는 어린이들의 세계처럼 복잡하다. 동물 경찰들은 곤충들에게 아무 관심이 없다. 자신들에게 아무런 위해를 끼치지 않기 때문이다. 알아도 못 본 척할 뿐이다. 다만 작은 곤충들에게는 커다란 사건이다. 아이들이 자신들만의 위태로운 세계를 가지고 있듯 '왕재미'와 곤충 친구들 역시 전쟁 같은 사무실 안에서 매일같이 모래바람을 맞으며 소임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누구도 칭찬해 주지 않는 세상에서 말이다.

강인한 정신력에 더해 '왕재미'라는 캐릭터의 매력을 완성하는 또 하나의 면모가 있다면 바로 '다정함'일 것이다. '왕재미'는 사기꾼 '개구라'의 피해자임과 동시에 가해자인 연구원 '청설모'와 동물청렴위원회장 '고영희'로부터 개구리 반지를 회수한다. 개구리 반지가 벗겨지면 번뜩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살피게 되는데 이것은 이들이 '개구라'의 꼬임과 세뇌로 정신이 조종되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건 '왕재미'의 태도다. '왕재미'는 반지가 벗겨지는 과정에서 이들이 다치지 않았는지 살피며 자신의 재킷을 벗어 그들의 식은땀을 닦아 주기까지 한다. 나아가서 '왕재미'는 자책하는 그들에게 사기 피해가 그들의 잘못이 아님을 똑똑히 일러준다. 같은 방식으로 '개구라'에게 사기당한 자신의 모습을 그들을 통해 엿보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소설은 화자 '왕재미'의 말과 행동(태도)으로써 진실을 향해 전진하는 용감함을 가르쳐 주면서 그와 동시에 어떤 태도로 사건의 피해자를 다루어야 하는지까지 잘 보여주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소설의 가장자리에 있는 이름 모를 캐릭터에 관해서도 언급하고 싶다. 바로 '친절한 (버스) 운전기사'의 일면이다. 버스 기사는 동물들로 꽉 찬 버스 안에서 교통카드가 없어 어쩔 줄 몰라 두리번거리 '왕재미'를 위해 무료로 탑승을 허용하는 것은 물론 두 번씩이나 그만을 위해 안전한 좌석을 마련해 주는 등 선행을 베푼다. 소소하지만 버스 기사의 친절함이 묻어 나온 대목을 읽으며 나는 조금이나마 편안해졌다. 이 글을 읽는 아이들이 어둠 속에서도 햇살 같은 누군가의 친절을 발견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속지 마! 왕재미』는 흥미로운 과학 동화 시리즈이다. 아직 첫 번째 이야기를 읽은 게 전부지만 기회만 된다면 후속 편까지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술술 읽히는 문장들과 위트 넘치는 묘사 그리고 재미있는 만화까지 놓칠 게 없는 과학 동화 『속지 마! 왕재미』를 강력 추천하며 서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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