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턴 익스프레스 실버 딜리버리 도트 시리즈 1
이경 지음 / 아작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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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작' 도트 시리즈 첫 번째 이야기. 이경 작가의 『웨스턴 익스프레스 실버 딜리버리』(2024)를 읽었다. 한눈에 들어오는 형광 컬러의 표지가 인상적이다. 처음에는 몰랐다. 우측 상단의 픽셀이 손전등이 아니라 '분유'였다는 사실을! 책을 뒤집어 시놉시스를 보면 더 재미있다. "의족을 끼고 매일 저녁 필라테스를 수강하는 71세 실버 택배원. 24년 무사고 택배 경력을 자랑하는 귀자는 과연 오늘 밤 아기를 무사히 배달할 수 있을까?"라니. 생뚱맞다고 느껴질 정도로 읽기 전에는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귀자'는 같은 마을에 사는 친구 '선희'의 손녀 '다인'가 아프자 갓난아기인 '다인'을 가까운 도심 병원으로 데려다 주기로 한다. 문제는 오늘이 '마적'들이 활개를 칠 정도로 어두운 '그믐'인데다 경찰 인력이며 소방 인력이며 도심에서 발생한 모종의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그들 중 누구도 두메 산골의 응급 사건에는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없었다는 점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귀자'는 대기업 '웨스턴 익스프레스'의 '실버 딜리버리' 배달 기사로서 자신의 트럭을 한 대 보유하고 있었다. 비록 할부가 남아 있기는 했지만! '귀자'는 대기업의 기술로 안전을 보장하는 트럭 안에 '다인'을 싣고 멀고 험난한 길을 떠난다. 그러던 중 '귀자'는 각종 사건 사고에 휘말리게 된다.

'귀자'의 스펙타클한 모험이 누군가에게는 게임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싶다. 실제로 소설은 그녀의 험난한 여정을 매우 아찔하게 묘사하곤 했다. 그렇다고 작품이 마냥 유희적이기만 한 건 아니었다. 노인 화자 '귀자'가 어떤 방식으로든 아기 '다인'을 응급실로 데려가고자 노력한 과정에서 인물의 집요함이 휴먼 다큐처럼 억척스럽기도 했기 때문이다.

'귀자'는 '다인'이 자신의 손녀라도 되는 것처럼 그의 생존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자신이 맡은 소임을 다하려는 '귀자'의 모습은 어쩐지 약자를 보호하려는 약자의 표상처럼 느껴져 애처롭다. 그렇다면 '귀자'는 무엇을 지키려고 이렇게 애를 썼던 걸까? 색이 바래고 물렁해질 정도로 줄기차게 쓰고 다닌 '귀자'의 웨스턴 익스프레스 빨간 모자를 떠올려 본다. 그녀가 지키고자 한 것은 쓸모를 위한 삶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교육 강사가 내던진 토끼를 안쓰러워한 시점부터 그것은 시작되었다고.

'귀자'는 직접적으로 그러한 상황을 겪기도 한다. 난데없이 야생 동물을 만나거나 마적의 공격을 받는 장면을 보면 알 수 있다. 작가의 말에서 보았는데 작가는 '영웅'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한다. 소설을 다 읽고 보니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귀자'는 약자들의 영웅이었다. 본인도 약자이면서 말이다. 목숨을 다 바쳐서라도 얻어내고 싶은 최소한의 삶. 스포츠 스타 '톰 고든'의 사인이 담긴 모자는 '귀자'가 누군가를 구할 새로운 영웅임을 예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에게 당도했다.

노인 화자를 내세워 이야기를 쓰는 건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해당 소설은 노인 화자 영웅담을 잘 담아내려고 노력한 작품이라 생각한다. 정확히 평가하기는 힘들지만…… 확실한 건 독자인 내가 '귀자'의 위험천만한 여정을 함께 걱정하고 동행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 정도. 안전하게 '다인'을 병원에 데려가겠다는 '귀자'의 의지와 함께하게 되었다는 것. 이미 거기서부터 나는 '귀자'의 팬이 되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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