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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바디 인 더 미러 ㅣ 도트 시리즈 3
황모과 지음 / 아작 / 2023년 1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작' 도트 시리즈 세 번째 이야기. 황모과 작가의 『노바디 인 더 미러』(2024)를 읽었다. 흠, 황모과 작가의 이름은 내게 익숙한 편이다. 『서브플롯』(2023)이나 『말 없는 자들의 목소리』(2023) 등 다양한 SF적 실험을 한 작가로 알고 있다. 이것을 '실험'이라고 재단해도 될는지 알 길은 없겠으나…… 황모과 식의 SF는 과감할 정도로 '약한 것들'의 편이라서 재미있다.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였다. 왜 영문(텍스트 자체는 그렇지 않지만) 제목을 선택했는지에의 의문은 일지만. 아무튼. 표지부터 끌렸던 작품이고 내용 역시 범상치 않았다.
많은 이야기가 나눠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다중 인격 서사일까 의심하기도 했는데 내 기대 이상으로 복합적인 서사를 다루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렇게까지 많은 이야기를 200페이지 안으로 할 수 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명료하고 흥미진진했다.
여성 서사로 읽을 수 있다. 작품은 삶에의 의욕을 잃은 연구원 '이혜'의 시선으로 시작한다. 뇌사 판정 이후 기적처럼 살아 돌아온 남편 '영일'을 달가워하지 않는 듯 보이는 이 여성은 뒤로 갈수록 대담한 행보를 보인다. '영일'의 뇌사 판정에 연구원으로서 그녀가 개입되었다는 점도 등골이 으스스해지는데 나는 그게 싫지 않았다. 뇌사 이전의 '영일'은 작품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타인과 '공존'하기로 결심한 '이혜'의 그릇과 회복 이후 '제삼'이 된 '영일'이다. 정확히는 '영일'이었던 '제삼'이겠지만.
나는 작품이 '존재'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다. 거울에 있는 내가 '나'가 아닌 어떤 것, 어쩌면 내가 선택한 '다른 모든 존재'라면? 나의 인격은 사본에 불과하다면? 어지러운 문제다. 사실 실제로 작품 속 사건과 닮은 일이 벌어진다면 사회는 당연히 엉망진창이 될 테지만 소설 속에서나마 그릴 수 있다면 상황은-관망하기로서는-재미있다. 작품이 자꾸만 중요하다고 짚어주는 것을 우리는 놓치면 안 되는데, 소설이 짚어주는 '중요함'에는 이런 것도 있다. '사본과 원본으로서의 인격'이 그렇다. 복잡하지만 이건 꽤 생각할거리인 것 같다. '독립된 사본'이라는 개념이 영 낯설긴 해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삶을 '선택'하는 과정이 사본의 주체적 의지로 작용한다는 설정이 괜찮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혜'처럼 누군가와 공존하며 살아가기를 선택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시작은 어땠을지 몰라도 '내가 무엇이 됨'은 내가 정할수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이혜'와 '주희'의 관계가 좋았다. '제삼'의 선택들을 관찰하는 여정 역시 재미있었지만 작디작은 설정들은 뒤로하고…… 나는 연구원이었던 '이혜'와 버려진 카데바였던 '주희'가 맺는 연결감이 인상적이었다. '이혜'는 내적으로 자아가 버려진 상태였고 '주희'는 외적으로 그것이 버려진 상태였다는 점, 둘은 서로의 의지로 인해 연결되었고 종내 '공존'하기를 선택했다는 점이 말이다. 이렇게 따뜻한 여자들의 이야기라니. 자아를 공유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건 독자인 나 역시 이들과 함께 무언가를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착취하지 않고 그릇됨 없는 테두리 안에 존재하며 서로의 존재를 독립적으로 인정하는 것. 그렇게 공존하기를 약속하는 사회. 약자들이 꿈꾸는 세상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