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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수염의 다섯 번째 아내 ㅣ 블랙 로맨스 클럽
제인 니커선 지음, 이윤진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 푸른수염 동화는 정독한 적은 없지만 설렁설렁 읽은 적이 있다. 그때도 경악했던 것 같다. 푸른 수염의 잔인함, 집착은 물론 그것이 동화라는 것에 가장 큰 충격을 받지 않았을까. 이 책의 주인공 소피아는 후견인의 자격인 드 크레삭 씨의 집에 초대된다. 그는 커다란 저택을 가졌고, 아주 잘생긴 데다 매너도 좋다. 사실 이 책 초반부엔 소피아에게 환상적인 선물을 퍼부으며 꿀이 떨어지는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는 것이, 진짜 소피아를 사랑하는 건가 싶기도 했다. 저런 완벽한 남자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에게 점점 빠져가는 소피아를 당연하게 여겼다. 하지만 이렇게 소피아가 저택의 안주인이 되며 끝난다면 너무 재미가 없지 않은가. 소피아는 푸른 수염과 관련된 여자들의 흔적을 하나하나 쫓아간다. 소피아와 쏙 빼닮은 붉은 머리칼을 갖고 하나 둘 씩 사라져버린 그녀들은 버나드 씨의 전 부인이다.
-북부소녀 소피아가 남부의 노예제도를 보고 받은 현실적인 충격이 인상적이었다. '노예 12년'이란 책에서 이미 확인했듯 남부의 노예들은 현금으로 거래되는 상품이었다. 갑과 을의 관계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말 못하고 속으로 삼키며 다가가는 소피아에게도 경계심을 품는 그들, 그리고 그들이 짜고있는 남다른 계획들까지 모든 일들이 현실과 동떨어진 일 같았다. 실제로 사람이 저렇게 대우받고 살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남부의 노예 제도는 이야기의 중요한 장치로서 배치되어 있기도 하다. 하인들이 소피아의 친구가 되어주지 못하는 곳, 버나드의 사유지에서 그녀는 오롯이 혼자가 된 것이다.
- 선한 사람인 줄만 알았던 버나드 씨의 면모가 드러나는 과정이 어색하지 않다.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자신의 본심을 드러내며 옥죄어 오는 그가 역겹게 느껴졌다. 현실의 잣대로 판단해 보자면 한참 어린 애를 꾀는 게 아닌가. 그럼에도 마냥 미워할 순 없다는 것 역시 비통했다. 매력적인 악인은 항상 내게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
- 시종일관 긴장된 분위기 역시 마음에 들었다. 너무도 기복이 심한 소설은 읽다 보면 감정을 잡기도 힘들뿐더러 힘이 쏙 빠지는데, 더운 날씨에 섬뜩한 이 소설은 가독성이 좋았다. 얇지 않은 두께인데도 금방 읽은 것 같다. 고풍스러운 드레스를 눈으로 쫓으며 소피아의 옷이 바뀌는 데 동행하다 보면 이미 마지막 장을 덮고 있다. 오랜만에 페이지가 잘 넘어가는 책을 만나서 좋았다.
- 다만 프랑스 소녀 오데뜨의 비중이 아쉽다. 그녀를 좀 더 활용해 본다면 소설이 좀 더 재밌어지지 않았을지. 그다지도 차갑게 낯을 가리기 보단 주인공 소피아와 쑥덕쑥덕 한다던지 그런 방향도 좋았을 것 같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푸른 수염을 모티브로 쓴 책이기 때문에 저택과 관련된 반전은 새로울 것 없었지만 이 소녀의 존재는 흥미로웠는데 말이다. 오데뜨의 특이성에 관한 단서가 책의 곳곳, 눈에 띄게 배치되어 있어 대체 뭐하는 소녀일지 추측해보는 과정도 재미있었다.
- 캐릭터들 하나하나가 개성이 강하다. 너무 순진한 나머지 겪어도 되지 않은 걸 겪은 소녀 소피아, 완벽하기만 한 버나드 씨, 이렇게 주연 두명을 포함해 소피아의 가족들, 하인 한명 한명에 대한 설정이 세세해서 놀랐다. 캐릭터를 짜놓으면 줄거리를 따라 그들이 알아서 움직이는 경우도 있다던데, 개성 강한 등장인물을 좋아하는 나로썬 마음에 드는 부분들 중 하나였다.
-다정다감한 청년 '스톤'의 등장이 블랙 로맨스, 그 중에서도 '로맨스'의 비중을 채워준다. 모든 면에서 버나드와 반대되는 그를 만난 소피아는 그와 자유와 사랑을 택할 것인가, 혹은 저택에서 부와 명예를 택할 것인가. 마냥 이상적이진 않은 그들의 삶이 어떻게 이어질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