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싫어한다. 하지만 부탁받으면 또 거절은 못한다. 욕을 하면서 할건 다 해준다.
오베는 츤데레다.


그는 7살짜리 생일편지를 법률 보듯 한다. 오베는 그런 사람이다. 사소한 것에도 진지하고 진중하다. 이런 면은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동시에 신뢰감을 준다. 물론 무고한 사람들에게 (주로 외제차를 몬다는 이유로) 달려드는 건 분명히 잘못된 행동이다. 오베는 생각한다. `뭘 제대로 아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국내산 차를 몰아야 한다고. 그리고 그에 따르면 차는 3년에 한번씩 바꿔야 돈을 절약할 수 있다. 오베는 이 면에서 권위자로 존중받길 원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척 기분상한 얼굴을 할 것이다.


˝오베와 고양이가 처음 만난 건 6시 5분 전이었다. 고양이는 오베를 만나자마자 무지막지하게 싫어했다. 그건 오베도 마찬가지였다.˝

고양이를 만난 건 6시 5분 전이지만 오베가 일어나는 시각은 6시 15분 전이다. 기억해두자. 그는 이걸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니까. 오베는 그저 말보다 행동이 더 중요했던 세대를 살아온 것 뿐이다. 본인은 자신이 세대로 치부된다는 걸 부정하지만 어쨌든 그렇다. 세상은 점점 행동보다 말이 중요해져 가는데, 오베는 멍청이같은 아이패드매장 직원에게 얌전히 말을 건내는 것보다 집 짓기를 더 잘한다. 그는 모두가 점심식사 이야기밖에 안 하는 현대를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전반적으로 오베는 짜증을 낸다. (멍청이, 멍청이, 멍청이들!) 어느 순간, 불현듯 오베의 짜증은 의도와 달리 선한 일들을 만든다. 오베는 주위로부터 약간 인기 비슷한 걸 얻는다.
물론 본인은 인정하지 않는다.


오베는 화학공장 헤비 스모커와 철도회사 과묵남 사이에서 태어났다. 분명히 태어났을 때는 귀여웠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건 책에 없었다. 어쨌든 오베가 처음부터 이렇게 츤츤댔던 건 아니란 거다. 그는 아버지를 닮은, 과묵하고 답답할 정도로 착한 사브애호가일 뿐 거주자 지역에 자동차 좀 들어간다고 빽빽 소리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톰이라는 견자(犬者)가 미끄러지는 바람에 병원에 실려간 다음 날부터 조금씩 변화되어갔다. 톰이랑 오베 사이의 일은 책의 재미를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겠다. 이 변화의 과정에서 오베는 로맨시스트의 기질을 보이기도 했는데, 이 성향은 오베의 평생 중 이 순간에만 나타났다. 이때 오베는 푸른 눈과 밤색 머리칼을 가진 여자에게 홀딱 반해서 순박한 표정으로 미래의 장인어른과 식사를 하기도 한다. 훗날 오베는 이 여자와 한 집에서 살며 소냐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오베가 세상을 흑백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색깔이었다. 그녀는 오베가 볼 수 있는 색깔의 전부였다.˝

정말이지 그랬다. 소냐는 오베가 볼 수 있는 유일한 색이었다.

하지만 그 색은 (오베의 말을 빌리자면)빌어먹을 것들 때문에 옅어져 갔다.

이 책은 색을 가졌던 남자가 다시 그것을 잃은 뒤 어떻게 스스로 크레파스를 쥐는 지에 대한 이야기다. 좀 덜 추상적이게 말하자면 자살하려던 오베가 어떻게 다시 행복해지는 지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본인은 인정하지 않는다.

상상해 보라. 당신은 자살을 준비하고 있다. 천장에 고리를 걸려 한다. 그때 초인종 소리가 울린다. 없는 척 한다. 끊임없이 울린다. 문을 연다. 조그마한 이란 여자와 전봇대만한 멀대가 먹을 걸 가져왔다. 이웃에 머저리들이 이사온 거다. 그들이 활짝 웃는다. 따라서 웃어주었는가? 상상을 멈춰라. 당신이라면 모르겠지만 오베는 이웃에게 억지미소를 지어 줄 정도로 순순한 사람이 아니다. 심지어 자신의 우체통을 찌그러지게 한 장본인에겐 더욱 그렇다. 그는 그들을 거주자지역에 싸질러놓은 개똥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그 개똥들 덕분에 오베의 삶과 이 책은 좀 더 재밌어진다. 오베는 자살을 시도하고, 또 시도한다. 그가 성공할 수 있을까?
책을 읽어 보길 바란다.
재밌는 책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집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요.˝
소냐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처음에는 새 물건들 전부와 사랑에 빠져요. 매일 아침마다 이 모든 게 자기 거라는 사실에 경탄하지요. 마치 누가 갑자기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와서 끔찍한 실수가 벌어졌다고, 사실 당신은 이런 훌륭한 곳에 살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말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그러다 세월이 지나면서 벽은 빛바래고 나무는 여기저기 쪼개져요. 그러면 집이 완벽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불완전해서 사랑하기 시작해요. 온갖 구석진 곳과 갈라진 틈에 통달하게 되는 거죠. 바깥이 추울 때 열쇠가 자물쇠에 꽉 끼어버리는 상황을 피하는 법을 알아요. 발을 디딜 때 어느 바닥 널이 살짝 휘는지 알고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옷장 문을 여는 법도 정확히 알죠. 집을 자기 집처럼 만드는 건 이런 작은 비밀들이에요.˝
물론 오베는 예시로 든 옷장 문이 혹시 자기를 가리키는 건 아닌지 의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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