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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서 - 제1회 보림창작스튜디오 수상작 ㅣ 보림 창작 그림책
권정민 글.그림 / 보림 / 2016년 8월
평점 :
분홍빛 보드라운 표지가 새끼돼지를 떠올리게 한다.
멧돼지는 만져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주인공이 멧돼지인 만큼 표지를 멧돼지 색깔과 촉감으로 하는 건 어땠을까'
혼자 생각해본다.
핑크빛 바탕의 표지 중앙에는 커다란 어미 멧돼지가
아파트 입구에서 높은 아파트를 응시하고 있는 사진 한 컷이 있다.
과연 무슨 일일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표지를 넘기자마자 보이는 면지부터 바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표지의 멧돼지 가족이 궁지에 몰렸다.
언덕 꼭대기에서 불도저 앞에 놓인 어미 멧돼지는
새끼에게 젖을 먹이면서 참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어쩔??’
저자에 의하면
이 책은 <집을 잃어버린 모든 멧돼지들에게 바치는 책>이라고 한다.
어느 날 저녁, 텔레비전 뉴스 속의 멧돼지 한 마리와 눈이 마주친 작가는
그 짐승의 처지에 공감을 하고 응원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것이 이 책이 나오게 된 계기이다.
작가는“되도록이면 살아남아 이왕이면 행복해지고 싶은
이 땅의 모든 종족들에게 유용한 지침서가 되기를!”바란다고 하니
이 글에서 작가의 의도를 볼 수 있다.
시작은 멧돼지지만 집을 잃어버리고 살 곳이 없어진 모든 종족들을 위로하기 위함,
그 군집에 갈 곳 없이 헤매는 인간도 포함되겠구나 싶다.
속표지에는 어미 멧돼지가 책상에 앉아 뭔가를 끄적이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본 지침서이리라..
갑자기 집 잃고 새끼 셋을 먹여 살려야 했던 산전수전 겪은
어미멧돼지의 성공담에서 비롯된 잠언을 읽어보자!
1. 하루아침에 집이 없어져도 당황하지 말고 새 집을 찾아 나설 것.
‘당황하지 말고’에 ‘노하거나 슬퍼하지 말고’가 내포되어 있는 듯하다.
현실의 고난에 감정동요 없이 문제해결로 바로 접근 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고수라고 본다.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기술은 아니나
‘지혜로운’자가 되고 싶다면 이 지침을 따라보자.
2. 힘들면 쉬어 갈 것.
무리하다보면 병나고, 몸이 병들면 정신도 약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
시련의 선배는 적당~히 요령도 피우면서 살라고 한다.
3. 이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아닌 것에 감사할 것.
글보다 더 많은 내용을 보여주는 것이 그림책이다.
이 장면에서 그림책의 이러한 성격이 더욱 더 잘 드러나는 듯하다.
우리 안에 2~3층으로 적재된 돼지들이 트럭에 실려 이송되고,
그 옆에는 웃프게도 ‘뚱땡이 왕족발’ 배달 오토바이가 달린다.
힘든 상황에 처할 때 우리는 종종 이보다 더 힘든 이들을 바라보며
위로를 얻고 또 새 힘을 낸다.
작가는 이런 웃픈상황을 연출시키며 지금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이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를 기억하기를 바라는 것 같다.
4. 먹을 수 있을 때 충분히 먹어 둘 것. 너무 무리하지는 말 것.
이 대목에서는‘금강산도 식후경.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라는 말이
떠오르는데, 힘들다고 굶지 말고, 체력을 위해 기회가 왔을 때
잘 먹어두라는 것이겠지.
인간에 의해 살 곳을 잃어버린 야생 멧돼지들이
인간이 버린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있는 것을 보면,
때로는 체면도 잠시 접어두라는 의미이기도 한 것 같다.
단, 과욕은 금물. 중용을 지켜야지.
5. 새로운 동네에 왔으면 분위기를 파악할 것.
어디를 가나 기존멤버와 새로운 멤버간의 관계가 뽀인트가 된다.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이 생존에 더 유리하다는 점 역시 진리.
6. 그렇다고 분위기에 취하지는 말 것.
분위기 파악을 잘~해서 시류에 잘 따라야 하지만, 그 가운데 자신의 가치관과 소신 그리고 본래의 목적 등은 잊지 말라는 유머러스한 그림에서 다소 무거운 메시지로 해석해본다. 무궁무진한 해석이 그림책의 매력이니깐.
한 편 나는 이 장면에서 일곱 살 아들에게 엄마이기에 할 수 밖에 없는
주의를 준다.
“멧돼지와 마주쳤을 때 이렇게 사진을 찍을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바로 몸을 피해야 해. 야생 멧돼지는 굉장히 위험한 동물이야.”
내 자식의 안전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엄마 멘트.
이는 일곱 번째 잠언과 통한다.
7. 수상한 녀석들이 나타나면 일단 피할 것.
그리고 녀석들의 지능을 시험해 볼 것.
모험도 중요하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안전이 우선이다.
수상한 녀석들의 정체를 알아낼 때까지 간을 봐야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수상한 녀석 = 낯선 문제’로 대입해본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청계천 다리와 조형물 스프링의 모습을 스케치 한
이 면의 그림이 좋다.
8.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한 가지만 기억할 것.
추운 계절이 오기 전에 반드시 집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
이 부분에서는 멧돼지 어미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살짝 울컥했다.
나는 내 새끼들과 살 집을 찾고 있을 뿐인데,
서울 한복판의 전광판에는 ‘멧돼지 도심출몰’이라는 뉴스속보가 나오며
의도치 않게 사건이 커졌다. 사람들은 떠들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만 기억할 것.
추워지기 전에 집을 구해야 한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그렇지 않으면 나와 내 새끼들은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서 얼어 죽을 수 있다.
이렇게 힘든 하루를 겪었음에도 어미 멧돼지는 밤에 새끼들에게 젖을 내준다. 그녀의 표정에선 서서히 걱정과 근심이 보인다.
9. 밤새 다시 파이팅한 어머는 보금자리의 구체적 조건을 생각해본다.
즉 조용하고 살기 좋은 곳. 그리고 표지의 장면이 나온다.
지상에 주차장이 없는 아파트. 내가 봐도 아이들 키우기 좋아 보인다.
10. 느낌이 왔다면 머뭇거리지 말 것. 너무 서두르지도 말 것.
행동개시!
드디어 자리를 잡았다면, 이제 뭘 하면 좋을까요?
드디어 목적을 이뤘다. 나와 새끼들은 위한 아늑한 보금자리.. 집.
친구들을 초대해도 좋음!
그렇다면 누려라~! 그리고 이웃과 나눠라. 나눔에는 공간과 지혜가 다 해당된다.
없는 사람의 마음은 없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어미 멧돼지는 비둘기를 통해 집을 잃은 다른 멧돼지 동료들에게
초대장을 전달한다. 여기서 그림책은 끝나고 나의 상상은 이어진다.
이 일로 인해 그녀는 야생멧돼지계의 성공신화로 기록되고,
그녀의 「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서」는 멧돼지 사회에서 필 도서로 읽히게 될 것이란 상상 말이다.
우리의 삶에서처럼..
왜냐하면 우리는 늘 어려움을 이겨낸 영웅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일곱 살 아들이 굉장히 웃기다고 나에게 소개한 그림책을 나 혼자 찬찬히 보면서 많은 생각을 끄집어내본다. 먹을 것 혹은 살 곳이 없어 도심에 출몰한 멧돼지와
눈 마주친 후 감정을 이입한 작가의 그림책을 통해서 서른 중반의 나는 험난한
세상에서 나 자신이 살고 또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어미의 심정으로 여러가지를
떠올려봤다. 자연을 떠나 낯서디 낯선 도심에서 터전을 찾아 헤멘 어미 멧돼지 마냥 피곤하다. ^^;;
감히 그 심정을 다 느꼈다고는 말 못하지만..
제1회 보림창작스튜디오 수상작 「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서」
이야기 거리가 많은 도서로 모든 연령에게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