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보림 창작 그림책
윤동주 시, 이성표 그림 / 보림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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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년

윤동주 시 / 이성표 그림

 

 

대학시절 미술에 문외한 이었던 나는 우연히 미대를 다니는 학생들과 동석한 적이 있었다. 나에게는 워낙 새로운 분야였던지라 그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졸업 후 어떤 일을 할 수 있고, 또 하고 싶은지물었는데, 그들 중 한 명이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작가요? 글 쓰는 작가요?” 내가 의외라는 말투로 되물으니, 그녀는 그림 그리는 사람도 작가라고 해요.”라고 살짝 언짢아하며 대답했다.

 

글쓰는 작가작가로 알고 있던 나의 무식에 얼굴이 화끈거렸던 기억이 보림출판사 신간 소년을 접했을 때, 맨 처음 떠올랐던 기억이다. 故人의 시가 그림책이 될 때는 그림 작가의 해석이 많이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이는 대학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게 무식한 내가 알고 있는 그림 작가의 역할과 다르다. 나에게 그림 작가는 삽화를 그리는 사람으로 소설, 동화, 수필, 때로는 시..등의 문학내용을 보충하거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넣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다. 그림 작업에 어느 정도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이야기 전체를 끌고 간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림책 소년을 처음 접한 나는 당황스러웠다.

그냥 읽어도 난해한 시 소년에 작가만의 해석을 입혀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기존의 시를 넘어선 완전히 새로운 창작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것은 윤동주의 소년이 아니고 이성표의 소년이었다.

 

이성표의 소년은 내가 글로만 읽고 마음에 그리고 있었던 윤동주의 소년과 다른 그림이었다. 시어 하나하나와 그림을 연결 지으려고 하니 시 감상은 꼬여만 갔다.

란 장르가 주관적인 해석이 무궁무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잡한 머리로 며칠을 보냈다.

 

그리고 내가 갖고 있는 시상을 다 비우고, ‘이성표의 소년을 다시 펼쳤다. 며칠 전과 다르게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듯 했다. 나의 감상 역시 작가의 의도와 다른 완전 새로운 창작물이 될 수 있겠지만 예술에 정답은 없으니 감상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는다.

 

내가 느낀 이성표 그림의 소년은 아래와 같다.

전체적으로 파~란 느낌의 소년은 가을을 맞는다.

그에게 가을은 외로움이고 그리움이다. 소년은 낙엽을 통해 파란 하늘을 보고, 그 하늘은 그에게 짙은 그리움으로 내린다. 온 몸에 내린 그리움은 눈물이 되어 볼을 타고 흐르고, 두 손으로 눈물어린 얼굴을 감싸 쥔 소년은 고향에 두고 사랑했던 연인 순이를 황홀하게 떠올린다. 황홀함은 곧 슬픔이 되어 가슴에 상처를 남기고, 소년은 다시 외로운 현실로 돌아온다.

 

분석하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시 감상은 쉬운 일이 아니나, 감상에는 정답이 없다는 핑계로 감히 감상평을 적었다.

 

 

소 년

윤동주 시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위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쓸어 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 -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 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 -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은 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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