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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유산
미즈무라 미나에 지음, 송태욱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6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겨워서 꺼리는 이야기 중의 하나가 모녀신파극이다. 이를테면 이런 거. 애증의 모녀 관계가 있다, 대부분 아버지는 죽거나 아니면 폭력적이거나 바람이 나서 이혼한 상태, 어머니와 딸 단둘이 사는데 어머니는 딸에게 헌신하며 집착한다, 성인이 된 딸은 어머니에게 대놓고 ‘엄마처럼 안 살 거야.’라고 하며 엄마의 기대를 꺾으며 싸운다, 다툼이 절정에 치달으면 딸과 어머니는 절연을 하고 시간이 흐른다, 딸은 어머니를 이해하고 뒤늦게 화해를 하는데 어머니는 불치병에 걸린 상태고 눈물로 마지막을 장식한다. 이런 내용의 소설, 연극, 영화 너무 많다.
물론 이 소설 <어머니의 유산>은 기대대로, 예상대로 모녀신파극이 아니다. ‘미즈무라 미나에’가 변주한 모녀 이야기가 궁금해서 냉큼 서평단을 신청하고 부지런히 읽었다.
나는 배경 묘사가 화려하고 수식이 많은 문장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면 묘사 역시 필요 이상으로 세밀하게 파고든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 소설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알맞은 묘사가 일품이었다. 벽돌책이지만 막히지 않게 읽히면서도, 책장이 넘어가는 속도가 빠르지 만은 않다. 즐거움에만 치중되지 않고, 진중함도 갖춘 적절한 독서를 한다는 기분이었다. 소설 안에서 학력이 부족한 외할머니가 소설 읽는 걸 좋아하는데 어머니가 이를 보며 놀라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처럼 이 소설은, 소설을 읽는다는 건 진입장벽이 낮아서 즐겁고, 진중한 면까지 갖춘 문화적 혜택이라는 걸 알려준다. 더불어 3대에 걸친 이야기에서 또 다른 소설 제목이 많이 나오기도 한다. 주인공과 언니가 어머니를 ‘그 사람’이라 통칭하며 <이방인>을 언급하고, 외할머니의 삶과 <금색야차>를 연관 짓는다. 주인공은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마담 보바리>를 들고 다니며 읽고 결말에 이르러 언니에게 <세설>을 하자고 말하기도 한다. 인생은 곧 소설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거다. 또한 많은 이들이 자기 인생을 소설로 쓰면 책 한 권은 될 거라는 말을 한다. 이 소설은 이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3대의 모녀 이야기는 다른 이들과 비슷한 듯 독특하기에 두툼한 소설 한 권 분량이 된다. 읽는데 꼭 누구네 집 딸이 그랬다더라 하는 말을 눈앞에서 듣는 느낌도 들었다.
소설의 절반 분량인 1부는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며 막내딸 ‘미쓰코’가 회상을 하는 내용이다. 어머니 ‘노리코’는 당시 시대상에 맞는 희생적인 어머니가 아니다. 상류층에 대한 동경과 외모 지상주의에 물들어 있다. 친딸들에게도 차별을 한다. 이혼을 했고 심지어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난 딸을 가차 없이 버리고 이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캐릭터다. 주인공이 어머니를 경멸하고 진상이라고 여기는 부분이 초반부터 나오지만 임종이 남지 않은 어머니의 심리는 이해가 갔다. 죽음을 받아들이기는 누구나 힘들기에. 되레 어머니의 최후가 사치스럽길 바라는 주인공의 심리에 공감하기 어려웠다.
주인공과 어머니가 주인공 언니의 남편과 집안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가 결혼 후 폄하하는 부분에서, 속으로 미워하고 인정하지 않아도 결국 함께 산 가족의 가치관은 비슷하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2부는 장례식을 마친 주인공이 여행을 가서 호텔에서 장기 체류하는 사람들과의 일화, 이혼 강행, 외할머니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여행을 와서 장기 체류를 하는 사람들 중에 자살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주시하는 사람, 이혼을 하게 되면 맞닥뜨릴 재산 분할 문제, 사랑과 전쟁 뺨치는 외할머니의 가정생활 등은 극적이기에 1부보다 더 흥미진진했고 빠르게 읽었다. 다만 호칭과 이름 때문에 조금 헷갈리기도 했다. 꼭 이 소설만이 아니라 일본 소설에서 격식을 차리는 부분에서 성을 쓰고, 다른 곳에서는 이름을 써서 헷갈릴 때가 있다. 이 소설은 이름뿐만 아니라 딸의 입장에서 어머니, 조부모를 언급하는 호칭, 어머니 입장에서 그 어머니를 언급하는 호칭 때문에 더 헷갈렸다.
소설은 일일드라마 보듯 가정사와 개인사만 던지지 않는다. 아버지를 회상하며 아버지가 설날에 불쾌해한 이유는 패전이라는 시대적 배경도 있었다는 부분에서 국가가 가계에 미치는 영향을 알 수 있었다.
어머니가 병든 아버지를 돌보지 않고 샹송 선생과 바람이 나고, 주인공이 프랑스 유학 시절 만난 남편과의 사연, 호텔에서 본 일본식 영어에 대한 기이함 등에서 일본 사람들의 프랑스( 및 외국)에 대한 환상을 꼬집어주기도 한다.
또한 언니의 입을 빌려 어머니의 관심을 덜 받은 동생(주인공 미쓰코)보다 본인이 더 피해자라고 하는 대목과 더불어 결말까지 가면 이 소설은 모녀 이야기, 가족 이야기를 표방한 결국 인간군상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다.
3대에 걸친 이야기는 보편적이라 와 닿는 지점이 많고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사연은 자극적으로 느껴질 만큼 흥미진진했다. 일본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시대상을 알아가는 재미 또한 쏠쏠하기에 읽고 추천할 가치가 충분한 소설이다.
*복복서가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서 읽고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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