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들'로 믿고 보는 감독이 된 윤가은님의 신작 '세계의 주인'을 보고 너무 감동받아서 입소문을 내고 다녔다.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호평하고 있지만. 진심 천만관객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다.영화를 보았기에 각본집을 읽으니 복습을 하는 기분이었다. 먹먹하고 감동적인 장면이 많지만 몇 개 뽑아보자면극중 대사 "아니- 나 진짜 많이 노력하는데 아직도 용서가 잘 안돼. 나 자신이. 더 노력해야겠지? 아직 살아 있으니까......"에서 눈물이 났다.세차장 장면에서 "한 바퀴 더 돌까?"에서는 숨을 골랐다.마지막 장면에서 주인이 읽은 문장들은 받아적고 싶었는데 책으로, 활자로 읽을 수 있어서 그저 좋았다. 소개한 대사 말고도 지문이 살가우면서 치밀하다. 지문을 읽을 때는 소설을 읽는 느낌도 들어서 영화를 봤는데도 또 다른 울림을 준다.지금까지 살면서 무수한 타인들을 보았다. 모든 사람이 안고 있는 각자의 서사는 그 무게가 다 다르다는 걸 알았다.사람들이 자신의 일에 반응하며 살아가는 방식 또한 다르다. 이걸 엿보며 살기에 남들과 함께 산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이것을 힘있게 전달해서 힘을 준다. 억지로 밝지도 않고, 회피하지도 않는다. 무거운 소재를 적절한 거리두기, 알맞은 온도로 풀어냈다. 각본집을 읽고나니 또 뭉클하다.우리의 주인공 주인이의 세계에 풍덩 빠지게 한 '세계의 주인' 각본집 강력추천한다.* 서평단에 선정되어 안온북스에서 책을 받아서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정육점 주인들의 노래클럽> 제목이 호기심을 끌었다. 제목대로 미국에 정착한 정육점 주인들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소설에 나온다. 읽으면서 들어보고 싶었다. 아마도 씩씩한 멜로디지만 묘하게 고달픈 느낌이 배어 나는 노래가 아닐까 싶다.굴곡진 역사에 휘말린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소설이다. 굵직한 역사적 사실이 몇 군데 나오지만 개인과 가족의 서사에 촛점이 맞춰져 있다. 마지막에 이르면 예상치 못한 반전이 나오기도 해서 끝까지 눈을 뗄 수 없었다.배경묘사와 음식에 대한 묘사가 훌륭하다. 진중한 문장은 단 하나도 허투로 읽으면 안 돼서 책장이 더디게 넘겨졌다. 벽돌책이기도 해서 오래 읽었다. 1차 세계대전에서 살아남은 독일인 '피델리스'는 전사한 동료의 약혼녀 '에바'를 찾아가서 결혼한다. 둘은 미국으로 이주한다. 아거스에 정착하여 독일 소시지를 만들며 아이들을 낳아 기르며 산다. 에바는 '델핀'이라는 서커스를 하는 여성과 친해진다. 이야기의 중심은 델핀과 그녀의 파트너 '시프리언'으로 넘어간다. 델핀에게는 알콜중독인 아버지와 친구가 있다. 이들은 살인사건에도 연루되기도 한다. 이 부분은 꼭 추리소설 같아서 읽는 재미가 더해졌다.소설은 피델리스의 가족과 델핀이 자리잡은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리고 있다. 이들이 겪는 일들은 일상적이지 않고 굴곡이 많다. 모든 캐릭터에는 엄청난 사연이 숨겨져 있고 얽혀있다. 이는 작위적이지 않고 현실적이다. 이민자들과 종족이 다른 민족들이 개척하는 삶은 험난하고 고달프기에.에바가 죽고 델핀의 파트너 시프리언이 떠나고 피델리스는 델핀과 이어진다. 이 소설에서 남녀간의 사랑은 로맨틱한 사랑이라기 보다는 동지애에 가깝다. 살아남기 위한 결합 같다는 느낌도 든다.이어서 피델리스의 아이들 중에 독일로 돌아간 아이들도 생기며 조금은 안정에 드나 싶었는데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 피델리스의 자녀들이 참전하게 되는데 기가 막힐 정도로 참전한 나라들을 대변한다. 역사적 사실, 개인과 민족의 정체성, 이에 따른 가치관이 깊이 심어진 소설이다. 뒤에 옮긴이의 말에 나온 멋진 구절을 옮겨본다....문학이 역사를 논평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에 속한 개개인을, 승자의 역사 이면의 진실을, 그 역사에 휘말린 개인을 통찰하는 것이라면, 어드리크는 그 역할을 너무도 멋지게 해내고 있다...p.581*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서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의 부제는 '서툰 엄마의 어떤 고백'이다. 부제를 보니 마음이 짠해졌다. 엄마 역할을 비롯하여 누구나 인생의 모든 경험은 다 처음이다. 처음이기에 노련하게 시작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엄마'라는 단어 앞에 '서툰'이 붙으니 엄마가 주는 존재감과 무게감, 책임과 희생이 느껴져서 뭉클해졌다.제목대로 지은이 황다경 님이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모은 단상을 엮은 책이다.책을 읽어나가는데 공감백배였다. 역시 사람 사는 게 다 같구나 싶었다. 잠을 못 자며 신생아를 먹이고 재우는 일이 얼마나 힘든 건지..이건 뭐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이때 처음으로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며 참회의 눈물을 흘렸던 날들이 떠올랐다. 그림책 <고함쟁이 엄마>가 나오는 부분은 정말 깜짝 놀랐다. 이 책 읽고 내 주위의 몇몇 엄마들이 실제로 눈물을 흘리는 걸 봐서. 나 역시 좋아하는 그림책이다. 부모와 자식이 아니더라도 어른과 어린이에 대입해도 좋은 그림책.아래는 본문 134쪽이다. 📖...특별히 대단한 걸 해준 것도 없는데 아이는 무한한 사랑을 표현했다. 내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에는 어느 정도의 책임감과 의무감이 섞여 있지만, 아이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은 다른 어떤 것도 섞여 있지 않은, 순수한 사랑 그 자체다....아무리 생각해 봐도 살면서 누군가를 이토록 순수하게 사랑해 본 적은 없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사랑을 했을 때도 항상 어떤 전제 조건과 얄팍한 계산이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첨가물이 단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은 사랑이란 바로 이런 거다.'넓어진 세계' 역시 공감. 어린이들이 쏟아뱉는 단어와 시선을 보며 일일이 기록하고 싶었던 적이 많았다. 낯설게 하기도 생각났고.'이야기가 많아졌다' 역시 어린이들에게 다가가고 설명하기 위해 언어를 순화하며 많은 말을 해야 했던 경험들이 생각났다.술술 읽히면서도 묵직한 이 책을 완독하고 나니 세상의 모든 엄마님들과 낯선 세상 적응하느라 애쓰는 어린이님들을 더욱 응원하게 되었다.
코로나가 창궐한 후 코로나를 소재로 내지는 연상하게 하는 동화가 좀 있는 걸로 안다. 이 작품은 동물들에게 전염병이 도는데 감염된 동물은 사람의 말을 할 수 있게 된다는 설정이다. 동물이 사람의 말을 하는 설정 역시 꽤 있다. 조금은 흔하지만 기대가 되는 설정이라 이 소재를 어떻게 펼쳤는지 궁금해졌다. 제목이 도전적이라 더 흥미를 끌기도 했고.먼저 초록이와 반려견 초코와의 연대가 훈훈했다. 반려동물이 있는 어린이라면 더욱 공감할 것이다. 둘의 연대로 감염된 동물을 처분하려는 지침과 싸우는 여정은 든든하다. 빠른 전개와 생생한 묘사로 마치 스릴러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작가의 약력을 보니 역시나 영화 연출을 한 이력이 있었다.초코가 감염이 되자 초록이는 수의사 할머니에게 초코를 데려가려고 몰래 동네를 빠져나간다. 어린이가 삼엄한 경비를 어떻게 뚫을까 손에 땀을 쥐게 했다. 동네에 생수를 공급하려고 온 차를 이용해서 대담하게 탈출을 한다. 그 과정에서 말을 하는 다른 동물들을 만난다. 동화에서 어린이가 탈출을 하거나 큰 세력에 저항할 때 그 과정이 억지스러워서 핍진성이 떨어지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이 동화의 가장 큰 장점은 어린이의 탈출이 기발하고 현실적라는 거다. 사건의 전모를 추리해가는 과정 역시 탄탄하고 자연스러웠다. 굉장히 쓰기 힘든 지점을 잘 살렸다. 동물이 말한다는 설정 역시 그 뒷배경이 정교하게 짜여 있어서 근미래를 예견했다는 느낌도 들었다. 감염 동물에게 퍼진 바이러스를 다른 병이라고 선전, 선동하는 행태를 보니 요즘 세태도 연상이 되었고, 마구잡이로 동물을 죽이는 장면은 마치 나치의 만행을 보는 것 같았다. 동물들이 동물권을 주장하는 장면에 이르면 단순히 동물의 시선에서 인간의 이기심을 고발한 것을 넘어서 역차별을 연상하게 하는 깊이 또한 있다.굵직한 서사는 속도감을 내며 달려가는데 중간중간 자잘한 반전과 웃음을 주는 작은 에피소드 또한 많다. 수의사 할머니의 전사, 모모와 꾸리의 사연, 변박의 등장, 초록이의 인질 위장 등등. 구석구석 세심하게 살핀 시선이 따듯하다.숨 가쁘게 결말로 향하는데... 결말 전까지는 판타지에 약간의 SF가 섞인 동화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했던 시간 여행이 나온다. 초록이와 어른들와의 대면은 오즈의 마법사가 살짝 생각나서 놀라우면서도 친근했다. 어린이와 어른의 대화는 만담처럼 재치있어서 웃음이 난다.최종선택은 초록이가 하게 되는데.. 여기서 또 한 번의 반전이 나온다. 반전이라는 것이 전혀 추측하지 못했기에 반전이라고 하지만 이 작품에서의 반전은 뭐랄까. 뒤통수를 치는 반전이라기 보다 관점의 차이에서 나온 반전이라 곱씹게 되었다. 반전에 이어지는 마지막 문장도 간결하고 담백했다. 다 읽고 나니 주위에 책을 잘 안 읽는 어린이가 생각났다. 그 아이가 읽어도 완독을 할 거라고 예상한다. 그만큼 재미있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빠져들지만 책장을 덮어도 여운이 남을 만큼 깊이가 있다.수작을 만나서 흐뭇하다. 밥 안 먹어도 배부른 느낌. 곂에 두고 자주 펼쳐볼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