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이 실패로 끝나고, 로마는 군사를 거느린 장군들이 정치의 실권을 잡게 되었다. 그 중에서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크라수스가 기원전60년에 정권을 잡기위하여 서로 손을 잡은것이 제1차 삼두 저치였다. 폼페이우스는 로마를 끈질기게 괴롭히던 대규모 해적단을 단 40일만에 소탕하는 공로를 세움으로써 크라수스와 함께 로마 최고의 민물로 떠오르게 되었다. 크라수스와 폼페이우스, 둘다 권력의 야망을 품고있었지만, 원로원의 견제로 뜻을 못 펴고 있었다. 이때 에스파냐에서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공을 세우고 돌아왔다. 카이사르는 크라수스와 폼페이우스는 서로 손을 잡고 원로원으로부터 로마가 이 세사람의 손아귀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제1차 삼두정치였다. 하지만 이세사람의 약속은 카이사르가 연이어 공을 세운 탓에 다른 두사람이 시기하게 되었다. 이것이 삼두정치의 종말을 불러왔다. 폼페이우스가 카이사르를 대적하러 갔지만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를 물리쳤다. 이로써 카이사르는 로마의 절대적인 사람이 되었다.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를 제압하고 하는 명언이있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도라! 카이사르가 이 기쁨을 즐기고 있을때 브루투스는 카이사르를 죽일계획을 짰고 실행에 옴겨 카이사르는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