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하는 일상 - 삶과 앎과 함을 위한 철학 에세이
이경신 지음 / 이매진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책을 구입하는 데 있어서 나는 유독 냉철한 편이다. 한 번 읽고 말 책인지, 책꽂이에 꽂아둘 가치가 있는지 꼼꼼하게 따져본다. 아무래도 책 한 권 값이 결코 만만치않고, 집에 쌓아둘 공간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외부 상황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충동적 책 구매를 하지 않는 탓인지, 언젠가 중고서점에서 책을 충동적으로 구매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지난 부산여행에서 보수동 책방골목에서도 그런 서연을 기대했다. 하지만 충동적으로 구입하고 싶다고 마음에 들지도 않는 책을 살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린 나는,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 샅샅이 책꽂이를 수색했다. 그러다 발견한 이 한 권의 책. 재생지로 만들어져 가볍기도 하고, 중고책인데도 상태가 좋았다. 속의 내용은 읽어보지 않고 목차만 보았는데, 꽤 좋아보였다. 반 값도 안 되게 구입해서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게다가 기차 안에서 읽을 요량으로 구입한 터라, 긴 시간 내내 좋은 동무가 되어줄 거란 기대 역시 하게 되었다.

 

 

 

 

하지만 사실 내용적인 면에서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문체가 개인적 취향과 맞지 않았다. 내 첫인상과 실제가 다르기 때문에 오는 실망이었다. 예를 들자면 저자가 쓰는 글 중에 마치 무릎을 꿇고 들어야 할 것처럼, 간혹 잔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저자가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계기까지 넣었으면 조금 더 전개가 부드럽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그건 나의 바람일뿐. 모든 작가가 내 입맛에 맞춰 글을 쓸 쑨 없지 않은가. 이 또한 저자의 개성인것을!

 

아이러니하게도, 문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느끼면서도 글은 술술 읽혔다는 것이다. 개중에는 정말 생각해볼만한 이야기를 만나기도 했다. 이 책의 좋은 점은, 책을 읽고 있는 그 순간뿐만 아니라, 읽고 난 후에도 계속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저자가 던져준 그 물음표를 한동안 나의 일상 속에서도 계속 띄운 채 살아가게 된다는 것. 그것이야 말로 이 책의 제목처럼 '철학하는 일상'이 아닐까 싶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맨 마지막 순서인 에필로그를 보니, 내가 느낀 저자의 이미지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저자가 철학을 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철학과에서 겪은 일들 등을 보니, 저자를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비록 책을 통해 만난 저자와 독자이지만, 한 걸음 더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낯선 만큼 다르기 때문에, 생각지 못했던 물음들을 던져주어 나를 성장시켜주기도 했다. 그래서 책을 덮은 순간, 이 책을 읽기를 정말 잘했구나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이 책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주제 몇가지와 나의 감상을 소개해본다.

 

16. 집안일, 자립적 삶의 시작

25. 죽음을 견디게 하는 기억의 힘

30. 생존에 필요한, 깨끗한 물을 마실 권리

37. 변화하는 가족

  

- 집안일, 자립적 삶의 시작

 

우리 집도 역시 집안일을 전적으로 엄마가 하신다. 나는 작은 도움을 드릴 뿐이다. 도움을 드린다고 생각했지, 집안일이 내가 자립적인 삶을 살기 위해 해야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단순히 집안일을 담당하는 엄마의 짐을 덜고자 돕는 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이 이야기를 접하면서, 보다 자립적인 삶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집안 일에 대해 좀 더 고민해보게 되었다.

  

- 죽음을 견디게 하는 기억의 힘

  

죽음은 두렵다. 그래서 죽음에 관한 글을 읽으면 안심이 되기도 한다. 불확실성에 확실성을 더하 듯이 말이다. 이 책에는 죽음에 관한 생각이 많이 담겨있다. 그 중에서 이 글이 인상적이었다. 죽음 직전의 일을 생물학적 근거로 설명해준다. 생물학적으로 본다면, 죽음 직전에 엔드로핀이 분비되면서 통증을 완화하고 감각을 둔화시킨다고 한다. 그러면서 차분한 기분을 갖게 만들어주고 의식 상실에 이르게 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고통과 공포가 아니라 고요와 평화 속에 떠나는 것이라 저자는 그렇게 믿고 싶다고 한다. 나에게 새로운 정보여서 놀라웠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도 무거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는 것 같다. 

 

- 생존에 필요한, 깨끗한 물을 마실 권리

  

초등학교 5학년 때였나? 일기를 써서 선생님께 제출하고 코멘트를 받는 것이 하나의 일과였던 그 때. 가끔 일기장을 펴보면 인상깊은 일기가 있다. 잘은 기억이 안 나는데, 동네 약수터에 물을 길러 갔던 일을 썼었다. 선생님의 코멘트가 '나중에는 물을 사먹어야 할지도 모른대' 이랬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때만 해도 누구나 물을 마실 수 있었기 때문에, 마치 공기처럼 그것에 대한 권리가 필요한지 생각해보지 못한 것 같다. 지금은 어딜 가도 생수를 구입할 수 있어서 물을 사먹는다는 개념이 당연해졌다. 곧 돈이 있어야 물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이 당연해진 것이다.

 

지구의 생명체라면, 생존에 필요한 물을 마실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특히 요즘은 물 사업이니, 수도 민영화니 물을 수익기반으로 삼으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하는 정부가, 국민을 위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 같다.

 

어쨌거나 이 주제는 단순히 물을 마실 수 있는 권리가 인간 누구에게나 평등하다라는 이야기를 넘어서, 생명체라면 생존에 필요한 물을 먹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생각의 저변을 넓혀준 주제였다.

  

- 변화하는 가족 

 

가족에 대한 개념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글이었다. 저자는 부모님과 자식으로 구성된 가족의 개념이 아닌, 함께 살고 고민하는 공동체 느낌의 가족과 함께 산다고 했다. 더 넓은 의미에서 가족을 정의하며, 가족이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 최근 드라마 <여왕의 교실>을 보며 가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극중 '오동구'라는 캐릭터는 자칭타칭 오여사라는 할아버지에게 입양되어 함께 살아간다. 동구와 오여사에게 서로에게 단 하나뿐인 가족이다. 그런걸 보면, 가족에 대한 정해진 개념을 배우고 또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는 일인 것 같다. 가족의 형태가 변화하고 다양해지는 만큼, 우리는 그것에 대해 다시 배우고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이 밖에도 다양한 생각해볼 거리가 많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내 머리 속을 맴돌던 이야기들을 꼽아보았다. <책은 도끼다>에서 자신의 머리에 도끼를 내리치는 듯한 충격을 주지 않는 책은 읽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충분했다. 내가 놓친 일상의 문제에도 귀를 기울여 봐야겠다. 이 책 자체가 주는 가르침은 일상에서 철학하는 것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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