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인열전 2 (반양장) - 고독의 나날속에도 붓을 놓지 않고
유홍준 지음 / 역사비평사 / 2001년 3월
평점 :
절판


 


 

 

 

 

전생, 한번쯤 가져보았을 의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윤회와 전생을 믿고 인연설에 동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꿈에서 전생의 기억을 본 신비한 경험이 있다거나, 전생체험을 위해 최면에 뛰어들만큼의 용기는 없다. 그런데도 전생에 대한 호기심은 저버릴 수 없다. 나는 전생에 무엇이었을까? 현세에 있는 어떤 일이 전생의 영향을 받은 것일까? 이 사람은 전생에 나와 어떤 관계였을까?

어릴적 나는 그림을 그렸다. 입시미술을 준비할지 말지 그 기로에서 결국 핸들을 돌렸다. 오로지 그림만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살아갈 자신이 없었고, 삶에서 곁에두고 즐길만한 벗으로 삼는 것이 더 낫겠다는 것이 그때의 생각이었다. 지금은 다른 길을 꿈꾸며 하루하루 나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그때의 기억이 하나의 미련으로 남아있다. 아마 그림과 거리를 둔 계기가 그리 유쾌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그런지 나는 내 전생이 그림과 밀접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확률적으로 따져보면 무수한 전생 중에 하나 쯤은 그림 그리는 사람이 있지 않았을까? 유명한 화가가 아니더라도,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전생이 있다면 나는 봉건사회나 신분제 사회 속의 미천한 신분이었을 확률이 더 높다. 조선시대만 보더라도 일반 농민과 노비의 비율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전생은 그림과 관련되어있으면 좋겠다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화인열전을 보며 그런 허무맹랑한 바람이 더욱 커졌다. 화인들의 삶 속에 언제나 그림이 있었고, 그것을 나눌 벗들이 있었다. 예술적 교감을 한다는 것, 그것은 정말 영혼과 영혼이 만나는 일이다. 이 책을 보면서 그런 화인들의 삶에 심취했는지도 모른다. 현재 내가 바라는 삶이 그런 삶이기 때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화인열전 제2권에서는 제1권과 마찬가지로 네 명의 화인을 만나게 된다. 현재 심사정, 능호관 이인상, 호생관 최북 그리고 단원 김홍도. 사실 제1권을 읽으면서도 화인으로서의 삶이 멋지게 느껴지긴 했지만, 쓸쓸한 느낌도 피할 수 없었다. 제2권 역시 그렇다. 집안과 개인을 떼어 생각하기 더욱 어렵던 그 때에 더욱 힘들었을 현재, 당대에도 호불호가 갈렸지만 문인화의 정석을 보여준 능호관, 그림 그리고 팔아 하루 먹고 살던 호생관 그리고 불세출의 화가 단원.

 

 

 

심사정 <황취박토도> 

 

 

단편적인 그림은 본 적이 있어도 그 화가에 대한 이야기는 잘 알지 못했다. 가장 유명한 화가인 김홍도에 대해서도 풍속화로 유명하다고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그런 얇팍한 지식과 관심에 부끄러워 절로 고개가 숙여질 따름이었다.

제1권에서 겸재 정선의 이야기가 책의 반에 할애한 만큼, 제2권에서는 김홍도의 이야기를 반권에 담았다. 김홍도가 이렇게 놀라운 화가인줄 몰랐다. 단순히 풍속화에 능한 것이 아니라 기록화, 인물화, 산수화 모든 분야에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개인적으로 단원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그것이 본능적이건 아니면 노력을 해서 알았던간에 그림을 화폭에 아릅답게 담았다는 것이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남겼다고 생각한다. 

 

 

 

 

김홍도 <군선도>

 

 

많은 작품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군선도>가 마음에 든다. 군선도는 도교 신선들을 그린 그림이다. 그림을 보면 이야기가 들리는 듯한 살아있는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보는 재미가 있고, 계속 궁금해지는 작품이다. 이 책에는 또 다른 신선 그림이 있다. 유교가 전반적인 이념이었지만, 도교 역시 깊숙이 영향을 미치고 있었기 때문인 듯 하다. 

 

 

 

심사정 <하마선인도>

 

이 그림 역시 신선도 중 하나이다. 심사정의 작품으로 <하마선인도>이다. 저자는 이 그림을 보고 심사정의 자전적인 느낌이 담겨있다고 했다. 세상을 향한 울분을 내뱉는 모습을 투영해서 그린 것이 아닐까라고 추측한 것이다. 이 그림은 손가락에 먹을 묻혀 그린 것이라 그런지 왠지 모르게 더 독특한 구석이 있다. 이 그림이 마음에 드는 건, 신선의 표정도 리얼하지만 개구리의 모습이 정말 깜짝 놀란 것처럼 살아있는 것 처럼 느껴진다. 심지어 귀엽게 까지 느껴진다. 이야기가 있는 그림은 참 매력적이다.

 

 

 

 

 

 

김홍도는 천재성을 발휘하면서도 성품이 올곧고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냈다고 한다. 반면 최북은 날카로운 구석이 있어 사람들에게 직언을 하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 일화들이 굉장히 재밌는 것이 많아서 보는 내내 웃었다. 만약 나에게 그런 직언을 했다면 조금은 마음이 상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는 이야기이다보니 재밌게 읽게 되었다.

 

최북 또한 재능이 있었지만, 김홍도와는 다른 천재성이었다. 하지만 여러가지 일화나 그림을 봐도 성품 자체가 꼬여있다기보다 굉장히 솔직하여 그 시대에 맞지 않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최북의 그림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왼쪽의 <풍설야귀인>이다. 분위기도 그렇고 중간에 그려진 나무가 참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아마 조금은 무섭지만 매력적인 최북을 드러내주기도 하는 것 같다.

저자는 '술'과 인연이 깊은 두 화가, 김명국과 최북을 비교해서 설명하기도 했다. 나에겐 참 흥미로운 비교가 아닐 수 없었다. 김명국은 술의 힘을 빌어 멋진 작품을 그려냈는가 하면, 최북은 평소 술을 입에 달고 살아도 그림을 그릴 때에는 절대로 술을 입에 대지 아니했다고 한다. 참 재밌는 비교인 것 같다.

화인열전에 소개된 화인들 외에도 정말 많은 화인들이 있을 터. 조선시대의 예술세계를 보다 더 많이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욕심이 든다. 아마 이 책에서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하듯이 생생하게 그들의 모습을 그려준 덕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감탄스러운 것은 과연 이런 분이 석학이구나 싶은 것이었다. 유홍준 교수 덕에 즐거운 여행을 한 기분이 든다. 특히 예술에 대해, 화인들에 대해 애정이 느껴져서 굉장히 미소를 짓게 하는 부분이 많았다.

서문에 나와있는 것 처럼, 나는 우리 미술보다 서양 미술 그리고 반 고흐, 피카소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었다. 화인 열전을 통해서 우리 미술과 우리 화인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해서, 우리 미술이 그들보다 더 우위에 있다고 여기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미술만을 좋아하고 사랑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다른 민족과 국가의 사람들과 구별되는 우리만의 그 무엇을 알게 되어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내 삶에서 반 고흐의 작품이나, 김홍도의 작품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한 것 같아 뿌듯하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미술에 대해 보다 깊이 있고 풍성하게 즐기며 사랑할 수 있을 자신이 생긴다.

화인열전 속 그들의 삶을 보며, 그리고 그들의 그림을 보며 나는 다시금 붓을 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훗날 그림을 벗으로 삼을 것이라는 기약없는 다짐보다, 메모지 한 쪽 귀퉁이에라도 그림을 통해 나를 표현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꼭 명작이 아니어도 좋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그 과정을 즐기는 것이니까. 전생에 그림과 연관있는 사람이었으면 하고 비현실적으로 꿈꿀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작은 공간에도 그림을 그리고 그 과정에서 행복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것이 아닐까? 조선시대 화인들은 직업도, 시대도, 형편도 다 달랐지만 그들의 가장 큰 교집합은 그림 그리는 것을 사랑했다는 점이다. 나도 지금 내가 사랑하는 것을 하며 즐겨야겠다. 마치 화인들이 그랬던 것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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