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본 없음 - 삶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기 위해 쓴 것들
아비 모건 지음, 이유림 옮김 / 현암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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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만 다시 숨을 쉴 수 있다. / p.16

이 책은 아비 모건이라는 영국 작가의 에세이다. 제목에 흥미롭게 느껴져서 읽게 된 책이다. 에세이를 읽으면서 위안을 받거나 생각을 달리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예전보다 에세이를 읽는 비중을 조금씩 높이려고 계획하는 중인데 그 사이에 만나게 된 신작이다. 거기에 극작가의 에세이라면 조금 더 깊이가 있지 않을까 하는 나름의 편견도 한몫했다.

저자인 아비 모건이라는 분에게는 남편 제이콥이 있다. 다정하고 가정적인 분으로 보이는데 희귀병으로 갑자기 쓰러지면서부터 긴 투병 생활이 시작된다. 심지어 초반에는 어떠한 병명조차 듣지 못한 상태로 지내다 뇌신경 쪽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치료를 병행하지만 쉽지 않았다. 심지어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사의 말까지 듣게 됐다. 그러다 작가님께도 암이 발생하면서부터 더욱 안 좋은 방향으로 진행된다. 에세이는 남편의 간병과 작가님의 투병으로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무거운 일상을 다루고 있는 내용이어서 처음에는 더디게 읽혀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아무래도 감정적으로 많은 공감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술술 읽혀졌다. 그만큼 작가님의 문체가 술술 와닿았고, 번역 자체도 크게 불편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 물론, 번역체에 크게 예민한 편이 아니다 보니 이해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금방 완독할 수 있었다.

읽으면서 감정적이지 않아서 오히려 더 크게 와닿았다. 사실 가족의 구성원이 희귀병에 걸린 상황이라면, 그것도 자신이 간병을 할 상황이라면 절망적이었을 텐데 작가님께서는 암으로 절제술과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되는 상황에서도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으셨다. 속은 썩어 문드러질지언정 적어도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문체만큼 건조하고 담담하게 느껴졌다. 아픈 남편에게 자신의 암 선고 사실을 전달하는 것조차도 그냥 일상을 말하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남편이 증상이 악화되면서 작가님을 부정하는 부분은 마음이 아팠다. 앞에 있는 사람은 '아비 모건'이 아니라는 사실. 만약 내 가족이 같은 상황에서 나를 그렇게 부정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그야말로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을 일, 아니 그것보다 더 강렬한 느낌을 주었을 것 같다. 남편 제이콥은 계속적으로 작가님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작가님께서는 절망하지 않고 증상 중 하나로 이해하고자 노력하셨다. 참 인상적이었다.

나의 어머니께서도 작가님과 같은 암으로 투병하셨기에 더욱 크게 와닿았다. 그것보다 불과 어제 같은 핏줄인 동생과 전화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어머니께서는 종종 동생에게 죽을 병을 이겨냈다는 이야기를 말씀하시지만 정작 동생은 어머니의 이야기에 70~80% 정도만 와닿는다는 말. 나도 공감을 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어머니의 그 말씀이 허풍이 아닌 사실이라는 게 실감이 되었다.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여러모로 깊이 남을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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