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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페이지 저자, 송섬별 역자 / 반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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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다양한 경험을 쓰고, 읽고, 나누는 행위는 우리를 침묵시키려는 이들에게 맞서기 위한 중요한 일이다. / p.11

초등학교 다닐 시절에 뉴스에 크게 이슈가 되었던 일이 있었다. 대한민국 최초로 트랜스젠더로 커밍아웃을 한 하리수 씨가 매체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부모님을 비롯한 어른들께서는 세상이 말세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고,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크게 의견이 양측으로 갈린 것으로 알고 있다. 트랜스젠더라는 개념 자체를 모르던 어린 아이였던 나는 남자가 어떻게 여자로 바뀔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표를 띄우면서 그 이슈를 보았던 것 같다.

지금은 트랜스젠더라고 당당하게 밝히면서 인터넷 방송을 하다가 입소문을 탄 이들이 공중파 매체로 자연스럽게 넘어온다. 얼마 전에 비슷한 나이 또래의 한 트랜스젠더 방송인의 일상을 담은 예능 프로그램을 지나가다 본 기억이 있는데 하리수 씨가 떠올랐다. 그래도 대한민국이 조금씩 개방적인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실감하면서도 이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인다거나 혐오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

이 책은 엘리엇 페이지의 에세이이다. 사실 할리우드의 외국 배우들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다. 요즈음 인기 있는 배우인 티모시 샬라메, 예전부터 인기가 많았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등의 이름만 인지할 뿐 외국 배우의 얼굴을 인식하는 것은 휴 그랜트, 줄리아 로버츠 딱 그 정도 선에서 멈춰 있는 사람이다. 그렇다 보니 엘리엇 페이지 역시도 아예 이름조차 모르는 배우였는데 트랜스젠더로 커밍아웃을 했던 사람에 초점을 맞추어 선택하게 되었다.

처음에 책을 읽기 전에 가졌던 편견은 서구 사회는 적어도 동양권의 대한민국 사회보다는 개방적이라는 점이었다. 거기에 엘리엇 페이지는 캐나다 태생의 배우라는 점에서 더욱 강하게 가졌다. 캐나다가 이민 정책으로 보더라도 다른 나라들이 롤모델로 삼는다는 점에서 성 다양성 측면에서도 포용할 수 있는 사회이지 않을까 싶었다. 서구 사회에서 보통의 성 정체성이 아닌 조금 다른 성 정체성을 가진 이들을 바라보는 측면이 흥미로웠다.

저자의 부모님께서는 이혼하셨는데 아버지는 새로운 배우자와 함께 가정을 꾸몄다. 엘리엇 페이지는 어머니와 거주하다 자주 아버지의 집에 놀러가 의붓 남매들과 시간을 보냈던 듯하다. 새어머니로부터 학대를 받았는데 아버지는 이를 묵인하는 것도 모자라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이해를 바랐다. 심지어 아버지의 집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엘리엇 페이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정서적인 상처를 주었다는 점에서 이기적으로 보였다.

거기에 학창시절 역시도 외롭고 고독하게 보낸 듯하다. 다이크라는 여성 동성애자 혐오 표현과 패것이라는 동성애자 차별 표현을 마치 별명처럼 듣고 살았다는데 나의 입장으로 상상해 보자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버거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 정체성이 다른 이들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가족으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하고, 학교에서도 오히려 혐오의 대상이 된다는 게 개인적으로는 너무 답답했다. 이 지점이 언급했던 편견을 깨지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인상 깊었던 점은 트랜스젠더와 동성애자라는 키워드에 맞춰진 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엘리엇 페이지라는 인간 자체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이름과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루었다. 성 다양성에 차별하는 사회에서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한 노력들이 너무 마음 깊게 와닿았다. 아마 사전에 알고 있는 정보를 지우고 다른 소재로 맞춰 본다면 그 맥락으로도 읽혀질 수 있었다. 정체성이라는 게 꼭 성적인 측면에서만 혼란을 겪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직장과 일상 속에서 많은 고민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도 많은 여운이 남았다.

성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이 책을 읽었지만 결론적으로 책을 덮고 나니 스스로를 잃지 않으면서 살아야겠다는 용기를 얻었던 책이었다. 그만큼 주는 것보다 받은 것이 훨씬 많았다. 아마 트랜스젠더나 동성애자에 부정적고도 차별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그냥 지나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외부적인 정보를 정보 걷어내고 열린 시각을 가지고 이 에세이를 골라 읽게 된다면 큰 울림을 줄 책임이 분명하기에 많은 이들에게 자신 있게 추천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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