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슈의 발소리 히가 자매 시리즈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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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소리를 울리며 아내가 멈춰 섰다. / p.11

이 책은 사와무라 이치의 소설집이다. 전에 읽었던 사와무라 이치의 장편소설 작품이 생각보다 깊게 임팩트가 남았다. 호러 장르를 크게 선호하지 않는 편이지만 사회적인 이슈나 문제점과 맞물려 생각할 수 있다는 지점이 좋게 와닿았기 때문이다. 그런 지점에서 사와무라 이치라는 작가 자체가 호러 장르의 대가라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적으로는 사회파가 잘 어울리게 느껴진다는 점에서 이번 작품을 선택하게 되었다.

소설집에는 첫 시작을 여는 <거울>로부터 표제작인 <젠슈의 발소리>까지 크게 다섯 작품이 실려 있다. 어떤 작품은 현실적으로 와닿은 작품이 있는 반면, 한번 꼬아서 생각을 해야 호러의 진정한 서늘함이 느껴지는 작품도 있었다. 흥미로운 작품들도 있기는 했지만 일본이 배경이다 보니 일본 문화의 이해가 높았을 때 이해할 수 있는 단어나 내용들이 등장해서 그 부분은 조금 어렵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두 작품이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첫 번째 작품은 <거울>이라는 작품이다. 주인공은 곧 아이의 아빠가 될 예정인 남성인데 지인의 결혼식에 초대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지인은 누가 봐도 미남이라고 불릴 정도의 외모를 가지고 있으며, 재력 또한 괜찮은 편인데 신부의 모습을 보자마자 실망감을 가진다. 작은 키에 덩치가 있는 편의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그전에 결혼식장에 있는 거울을 통해 조금은 불길한 경험을 했었는데 신부를 보면서 부모는 얼마나 실망했을지에 대한 이런저런 상상에 빠진다.

결론적으로 속이 시원해서 머릿속에 남았던 작품이었다. 일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서도 흔히 비만 체형의 여성에 대한 편견이나 인식이 부정적으로 비춰지는 이야기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평소에 인간을 구성하는 게 꼭 외양뿐인 것도 아닌데 유독 각박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외양이 누가 봐도 미인이지만 상식과 개념이 없는 사람과 외양은 많이 부족할지언정 상식을 지킬 줄 아는 사람 중 한 사람을 고르자면 망설임없이 후자를 택할 것이고, 개인적으로도 후자의 사람이 되고자 더욱 노력하고 있다. 초반에는 주인공의 생각에 답답함을 많이 느꼈는데 중후반부에 이르러 통쾌했다. 주인공과 같은 편협적인 생각은 지양해야 될 부분이 아닌가 싶다.

두 번째 작품은 <요괴는 요괴를 낳는다>이다. 주인공 기요코 씨의 남편은 어렸을 때에 쌍둥이 형을 잃었다. 형이 사망한 것은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을 행방불명 상태로 지내왔기 때문에 거의 죽었다는 생각으로 살아간 듯하다. 그런데 기요코는 그 상황을 모르고 있다가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와 실직 상태로 보내는 남편으로 힘든 와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다. 30여 년을 실종 상태로 있던 쌍둥이 형이 돌아온 것인데 남편 대신에 일을 한다거나 여러모로 도움을 준다. 그런데 쌍둥이 형은 성실하게 근무하면서도 갑자기 사라졌다 돌아오는 등 이상한 행동을 보이고, 남편은 이런 쌍둥이 형을 피한다.

씁쓸함과 답답함을 가장 크게 느꼈던 작품이었다. <거울>이라는 작품이 고구마로 시작해 사이다로 끝났다면 이 작품은 마지막에 카카오 99%의 초콜릿을 먹은 것처럼 느껴졌다. 우선,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본분에 충실하지 않은 남편의 태도에 분노했다. 회사에 다니면서도 불성실한 태도로 금방 직장을 잃는다는 것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기준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은 행동이었다. 오죽하면 30여 년만에 돌아온 형의 이야기보다 더욱 어이가 없다고 느꼈다. 그러면서 결말에 이르러 이야기의 진실이 드러나는데 남편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배가 되어 명치를 꾹 누르는 듯했다.

전체적으로 전작의 장편소설에 비해 인상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사와무라 이치 작품의 큰 매력을 여전히 느낄 수 있었다. 호러라는 이미지보다는 현실감 있게 와닿으면서 그에 대한 공포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여름에 읽었다면 무더위를 날릴 수 있었겠지만 늦여름에서 초가을로 진행되는 이 시기에 읽다 보니 그 서늘함이 배로 느껴져 오히려 추워졌던 소설집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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