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나 아티스트
알카 조시 지음, 정연희 옮김 / 청미래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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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이상이 높으면 대가가 따랐다. / p.101

부모님 세대의 시절에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통용되었을지 몰라도 요즈음 시대에는 안 맞다는 생각이 든다. 유행어로 자리 잡은 흙수저와 금수저를 보아도 그렇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집안의 경제적 능력도 하나의 스펙이라는 말까지 우스갯소리로 할 때가 많은데 들으면 뭔가 모를 씁쓸함이 머리를 맴돈다.

이 책은 알카 조시의 장편 소설이다. 한 여성이 시대의 편견을 깨고 나아가는 설정이 마음에 들었다. 현대 배경이라고 해도 눈길이 갔을 텐데 1950 년대의 인도라고 하니 더욱 관심이 갔다. 특히, 인도가 가부장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나라로 알고 있다. 거기에 지금은 폐지되었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카스트 제도의 흔적이 남아 있기에 계급과 성별을 이겨낸 성공의 이야기가 궁금해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락슈미는 어린 나이에 결혼했지만 지속적인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고향을 탈출해 자이푸르라는 도시에 정착한다. 그곳의 높은 계급의 부인들을 상대하면서 헤나를 그려 주는데 락슈미가 그린 이후에 생명이 잉태하게 되면서 소문이 터져 헤나 아티스트로서 부를 얻는다. 거기에 중매를 비롯해 다양한 일을 하면서 고급 인맥들과 지속적으로 교류를 하면서 명성 또한 떨친다. 집을 구매해 완전히 정착하겠다는 생각으로 부지런히 금전을 모으던 중 자신이 고향을 떠난 이후 태어난 여동생이 찾아오는 등 계획과 다른 사건들이 펼쳐진다.

궁금해서 선택한 책이지만 설렘과 함께 걱정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책의 페이지 수가 조금 두꺼운 편인데 거기다 잘 모르는 인도 역사를 다루고 있기에 이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스스로의 의심이 생겼다. 헤나, 인도, 역사 등 어느 하나 제대로 알고 있는 분야가 아니어서 자신이 없었다. 줄거리 하나만 믿고 보게 되었지만 중간에 덮으면 어떻게 할지에 대한 생각으로 읽게 되었던 책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쓸데없는 걱정에 불과했다. 이유는 차차 설명하겠지만 우선 개인적으로 읽으면서 세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락슈미의 가치관이었다. 소설에서 락슈미는 집을 지어 살아가겠다는 욕구가 강했다. 빚을 내서 하나씩 집을 짓는 모습들이 등장하는데 이게 락슈미가 생각하는 성공의 상징이자 목표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부모님 세대의 내 집 장만이라는 목표가 고스란히 반영되는 듯했다. 돈을 버는 것도 결국에는 집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위함이고, 헤나 아티스트로 많은 고위 계급의 가족들과 사교 활동을 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누구보다 자신을 억압하는 환경에서 벗어나 부인들처럼 살고 싶어하는 의지가 보였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올려다 볼 수 있는 위치이기에 처음에는 락슈미의 감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동생인 라다의 등장이었다. 락슈미의 나아가는 길을 응원하다 잠시 생각이 바뀐 계기가 있다. 그게 바로 라다를 억압하는 모습이었다. 이 또한 자녀의 성공을 바라는 부모님을 보는 듯했다. 고위 인맥으로 라다를 좋은 학교로 보낸다거나 지속적으로 외국어를 가르치는 등 자신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데 보는 입장에서는 뭔가 모르게 간섭이라고 느껴졌다. 어떻게 보면 라다의 인생을 스스로 책임져야 할 텐데 무조건적으로 옳지 않다면서 의견을 무시할 때면 마치 라다가 된 것처럼 묘한 감정이 들었다. 물론, 락슈미의 의견이 맞을 때도 있어서 감정적으로 고집을 부리는 라다의 행동이 조금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세 번째는 고위 계급 사람들의 행동이었다. 충분히 헤나 아티스트를 비롯해 다양한 일을 너무나 잘하고 있는 락슈미이지만 이를 악의 구덩텅이로 이끄는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이 바로 고위 계급의 사람들이었다. 락슈미에게 무시하는 말과 행동은 별것도 아닌 일로 치부될 정도로 일상이었으며, 심지어 그들로 인해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사건도 벌어진다. 특히, 자신들의 권력과 소문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태도는 읽는 내내 화를 돋구기도 했다. 약간 사적인 감정을 표현하자면 싱 가문은 소설에서 유일하게 모난 마음을 들게 했던 인물들이었다. 그밖에도 폭력을 저질렀던 남편 하리의 태도를 보면서 인간은 다면적인 존재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고, 락슈미를 지지하는 인물들을 보면서 인류애가 차올랐다. 사실 읽으면서 공간적인 배경은 인도이지만 비슷한 동양권 나라인 대한민국의 모습과 겹쳐질 정도로 비슷한 점이 많다는 생각이 불쑥 튀어 나오기도 했다.

초반에 했던 걱정이 별것이 아니게 느껴질 정도로 생각과 교훈을 주었던 소설이었다. 하루도 되지 않아 완독할 정도로 몰입력이 뛰어난 스토리이기도 했고, 내용을 이해하는 것도 문제가 없었다. 특히,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인도 문화에 낯선 독자들을 위해 인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뿐만 아니라 헤나, 인도 카스트 제도 등 다양한 자료를 많은 페이지로 할애해 수록했기에 인도라는 나라 자체만 알아도 소설 이해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다. 아마도 몰입해 읽을 수 있는 조건이 되지 않았나 싶다.

시대 억압을 이겨내는 한 여성의 성공기로도 읽힐 수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삶의 중요성을 찾아가는 성장기로 보였다. 돈과 명예, 권력을 비롯한 사람들 시선과 비위에 맞춰 살아가던 락슈미가 가족을 만나고 사건을 경험하면서 진정으로 살아감에 있어 필요한 것을 알아냈다는 점이 유독 깊게 느껴졌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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