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와 나 - 한없이 다정한 야생에 관하여
캐서린 레이븐 지음, 노승영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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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우리는 달에 사람을 보내지 않았던가. / p.384

여우 하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우의 모습보다는 귀신의 형태로 떠올랐던 것 같다. 직접 보기 전까지 어르신들의 말씀과 매체에 비추어 볼 때 여우는 그저 구미호였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여우의 사진을 쉽게 볼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주위에서 여우라는 동물보다는 구미호라는 귀신을 더욱 많이 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고정관념이 잡혔다.

그러다 요즈음 아이돌 덕질은 또 멤버들을 하나의 동물 이모티콘으로 정한다고 하던데 마침 당시 좋아하던 아이돌 멤버의 이모티콘이 사막여우였다. 그때 처음으로 여우의 모습을 검색했고, 여우의 실물을 한 달 전 조카들과 갔던 동물원에서 처음 보았다. 생각보다 귀엽고 너무 예뻤다. 내가 여우라면 구미호라는 귀신이 여우의 모습을 띈 것에 대해 억울하거나 기분이 나빴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 책은 캐서린 레이븐의 에세이이다. 여우에게 어린 왕자를 읽어 주었다는 문구가 가장 눈에 띄어서 읽게 된 책이다. 언어를 모르는 여우에게 어린 왕자를 읽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속담 중 하나인 소 귀에 경 읽기가 떠올랐다. 그게 또 묘하게 호기심이 생겼다.

연구원과 대학 교수 등 누가 봐도 부러울 정도의 재력과 명예를 가진 저자는 야생동물이 넘치는 어느 오두막으로 이사를 간다. 물론, 오두막에 거주하면서도 일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우를 비롯한 야생동물을 돌보는 일에 집중한다. 이야기는 전반적으로 여우와의 우정과 그 이상을 다루고 있다. 인간과 여우의 관계가 무엇보다 잘 드러나 있다.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첫 번째는 여우를 의인화하는 것이었다. 책을 읽다 보면 가끔 헷갈리는 구석이 있는데 여우를 그 또는 그녀로 표현하는 부분이 많다는 점이다. 중간에 생각이 잠시 다른 길로 새게 된다면 흐름을 놓칠 정도이다. 처음에는 이 부분이 참 적응이 안 되었고 혼란스럽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후에 읽으면서 여우를 하나의 동등한 생명을 가진 존재로 인정해 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여우를 인간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한 저자의 의견이 나오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에서는 조금 모순이라는 생각이었다.

두 번째는 여우에 대한 저자의 태도이다. 저자가 야생동물에 대한 시민 수업 비슷하게 진행하면서 여우에 대한 이야기를 참 조심스러워한다고 느껴졌다. 여우에 대한 언급을 하게 되니 수업 참여자들은 여우가 곧 애완 동물이라고 생각을 하기도 하고, 후반에는 여우와 사귄다는 게 뭔지 되묻는 경우도 있었다. 나 역시 저자의 행동들이 어떻게 보면 여우를 애완 동물로서 키운다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거주하는 오두막에 여우를 들여보내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더불어, 저자는 여우가 들고양이들의 습격을 당할 때나 다른 동물로부터 적극적으로 보호해 주지 않았다. 분명 친구라고 표현을 했는데 너무 야생에 던져 두었다. 계란의 노른자나 다른 것들을 이용해 여우의 생존에 도움을 주었던 것은 맞지만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 역시도 의아하면서도 강렬하게 남았다. 아무래도 야생이나 생물학 분야에서 오랫동안 근무를 했었기 때문에 여우가 야생에서 살아갈수록 사이드 측면에서 도움을 주었던 것 같다. 아마 그런 지식이 없는 일반인이었다면 여우를 집으로 들여보낼 생각을 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책에서는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이 자주 등장한다. 어린왕자 모자에 대한 내용과 이슈메일의 가치관 등을 비교하는 글을 보면서 저자와 참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왕자에 비해 전문적이고, 모비 딕에 비해 따뜻했다. 처음에는 이슈메일과 저자의 공통점을 깊이 생각하지 못했는데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고래에 대한 열망을 가진 이슈메일과 여우에게 어느 순간을 걸었던 저자의 교차점이 보였다. 어린왕자는 아직 읽어 보지 못했기 때문에 깊이 공감하지 못한 부분이 개인적으로는 아쉬웠다.

에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모비 딕이 철학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었던 것처럼 이 책 역시도 아무 생각 없이 읽기에는 어려웠다. 그러나 어린왕자와 모비 딕을 감명 깊게 읽었던 독자라면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 권 중 하나만 읽었던 나에게도 분명히 생각할 지점이 있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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