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을 초대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벤저민은 위기 이후에 오른 새로운 정상에서 자신이 어떤 의미를 갖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어디를 가든 웅웅 울리는 후광이 그를 감싸고 있었다. 벤저민은 그 후광이 늘 자신과 세상을 가로막고 있다고 느꼈다. 다른 사람들도 그후광의 존재를 느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그의 일과는 변하지 않았다-그는 피프스 애비뉴에 있는, 대체로 사람이 없는 자기 집에만 머물며 강도 높은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는 외면적인 착각을 계속 불러일으켰다. 실제로 그 사회생활은 유령회원으로 참석해도 큰 효과를 낼 수 있을 만한 몇몇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는 데 그쳤다. 하지만 공황 시기에 일으킨 쿠데타로 그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 자신에게조차 정말로 놀라웠던 점은, 그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그를 알아보았다는 기색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벤저민은 사람들이 그를 둘러싼 웅웅 소리를, 그 떨림을 그들을 벤저민과 멀어지게 하는 바로 그 존재를 알아챘다는 걸 확인하고 싶다는 욕망에 굶주렸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구분 짓는 이런 거리감을 확인하고 싶다는 마음은 그들과 영적 교감을 나누는 한가지 형태였다. 새로운 감정이었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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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마이다네크 혹은 아우슈비츠의 어느 소각로에서 태워져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아직 인간적이었다..… 전쟁이 끝나도 그녀가 돌아오지 않기에 나는 마당에서 연을 태웠다. 더는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그 어린 집시 여자가 반짝이 종이로 장식했던 긴 연꼬리와 연출도 함께. 전쟁이 끝나고 한참 뒤인 1950년대에 내 지하실은 나치 문학에 파묻혀 있었다. 동일한 주제가 반복되는 수톤이나 되는 책과 팸플릿을 나는 열성을 다해 파기했다. 내 어린 집시 여자의 감미로운 소나타에 이끌려서 착란과 황홀경에 빠져 경례를 붙이는 남자들과 여자들의 사진이 수백 쪽에 이르는 책장을 뒤덮고 있었다. 노인, 노동자, 농부, 친위대원, 군인, 누구 할 것 없이 모두가 열정적인 경례를 붙였다. 나는 해방된 그단스크로 입성하는히틀러와 그의 수행원들이 내 압축 속에서 사라지도록 온전히내 일에 몰입했다. 해방된 바르샤바와 해방된 파리, 빈과 프라하로 입성하는 히틀러, 혼자 있는 시간의 히틀러, 추수감사절의 히틀러, 히틀러와 그의 경호견, 전선의 군인들을 방문중인 히틀러,
대서양 장벽을 순찰중인 히틀러, 동유럽과 서유럽의 점령 도시로향하는 히틀러, 참모부에서 지도를 들여다보는 히틀러…… 나는이 히틀러와 열광하는 남녀들과 아이들을 파쇄하고 짓이겼는데, 그럴수록 나의 집시 여자가 더 간절히 생각났다. - P84

자비로운 자연이 공포를 열어 보이는 순간, 그때까지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모든 것이 자취를 감춘다.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고통보다 더 끔찍한 공포가 인간을 덮친다. 이 모두가 나를 망연자실하게 만들었다. 그렇게나 시끄러운 내 고독 속에서 이 모든 걸 온몸과 마음으로 보고 경험했는데도 미치지 않을 수 있었다니, 문득 스스로가 대견하고 성스럽게 느껴졌다. 이 일을 하면서 전능의 무한한 영역에 내던져졌음을 깨닫고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희미한 전구 불빛이 지하실을 비추었고, 녹색이나 붉은색신호가 들어오면 압축판이 전진하거나 후진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것을 해치울 차례였다. 고된 작업도 막바지에 이르러, 점토처럼 변해버린 종이 더미를 무릎을 이용해 삽으로 긁어모았다. 축축하고 끈적거리는 물질을 마지막으로 한 삽 퍼서 던지자니, 이 도시의 하수도 깊은 곳에 버려진 시궁창 밑바닥을 긁어내는 청소부라도 된 기분이었다. - P75

폐지 더미 속에서 희귀한 서적의 책등과 표지를 발견하는 그 놀라운 순간이 내게는 언제나 축제나 다름없었는데 말이다. 그 즉시 책을 집어들지는 않았다. 플란넬 헝겊을 집어들고 우선 내 압축기의 굴대를 닦은 뒤 내 힘을 다스리며 종이 더미를 흘끗 바라보았다. 그러고 나서야 그 멋진 책을 펼쳐 들면, 제대 앞에선 신부의 부케처럼 책이 내 손가락 사이에서 떨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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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로운 자연이 공포를 열어 보이는 순간, 그때까지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모든 것이 자취를 감춘다.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고통보다 더 끔찍한 공포가 인간을 덮친다. 이 모두가 나를 망연자실하게 만들었다. 그렇게나 시끄러운 내 고독 속에서 이 모든 걸 온몸과 마음으로 보고 경험했는데도 미치지 않을 수 있었다니, 문득 스스로가 대견하고 성스럽게 느껴졌다. 이 일을 하면서 전능의 무한한 영역에 내던져졌음을 깨닫고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희미한 전구 불빛이 지하실을 비추었고, 녹색이나 붉은색 신호가 들어오면 압축판이 전진하거나 후진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것을 해치울 차례였다. 고된 작업도 막바지에 이르러, 점토처럼 변해버린 종이 더미를 무릎을 이용해 삽으로 긁어모았다. 축축하고 끈적거리는 물질을 마지막으로 한 삽 퍼서 던지자니, 이 도시의 하수도 깊은 곳에 버려진 시궁창 밑바닥을 긁어내는 청소부라도 된 기분이었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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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취는 즉흥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것은 재능과 몰두가 요구되는 예술에 속한다. 술을 무턱대고 마셨다가는 어디에도 이르지 못한다.
최초의 만취가 대개의 경우 기적적인 것은 순전히 그 유명한 초심자의 행운 덕분이다. 정의상, 그 행운은 두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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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낙관의 소용돌이라면, 노자는 출구 없는 원이다. 예수가 극적인 갈등 상황과 싸우고 있다면, 노자는 도덕과 관련된 상반되는 요소들의 풀리지 않는 문제를 조용히 명상한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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