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케이의 눈앞에 있었다.

그것의 피부는 붉은빛이 도는 흰색이었는데, 세밀한 붓으로 칠한 듯 농담의 차이가 있었다. 살짝 몸을 덮은 피부에는아름다운 내부 윤곽이 아주 희미하게 비쳤다. 몸은 정교한 모공과 눈에 띄지 않을 만치 작고 보드라운 털로 덮여 있었고,
미학적인 곡선이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흐르고 있었다. 눈꺼풀은 부드럽게 깜박였고 촉촉한 입술은 도톰했다. 발그레한 볼은 생기로 넘쳤고 가느다란 머리카락이 풍성하게 두피를 덮고 있었다. 달콤한 향기가 후각 센서를 찔렀고 멀리서부터도 온기가 전해졌다. 모터음도 엔진 돌아가는 소리도 없었고 몸에는 기운 자국 하나 없었다. 케이는 한순간에 깨달았다. 모든 로봇은 모조품이고 불완전품이며, 이 완벽한 생물을 흉내 낸 그림자일 뿐이었다. 케이의 눈앞에 있는 것은 완전체였고 이데아였으며, 예술가들이 평생을 바쳐 추구하는
‘성스러움‘, 이제 세상에 남아 있지 않은 줄 알았던 ‘신성’ 그자체였다. - P147

내가 그것을 만들었다. 신을 조롱하고 끝모를 로봇류의 가능성을 점치기 위해서. 우리의 교활한 지성을 증명하려고. 로봇이 생명과 영혼까지도 지배할 수 있음을 입증하기 위해서.
케이는 이제 이곳에 온 로봇에게 일어난 일을, 그리고 이연구소의 모든 직원에게 일어난 일을 깨달았다. 그들은 사랑에 빠진 것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폭풍 같은 애정의 광기에 휩쓸려, 정신을 잃을 만큼 사모하여 이전까지의 자신을완전히 잃고 말았다. 모든 가치관이 뒤바뀌고 중요한 것들이전부 의미를 잃었다. 로봇이 존재하는 이유는 단 하나, ‘이 아름다운 생물‘에 있다. 우리에게 오랫동안 결핍되었던 것, 철학자와 신학자들이 찾아 헤매던 것. 그것이 눈앞에 현신해 있다. 우리는 이들의 비천한 종이며 노예에 불과하다. 모두가이 생물 앞에선 한갓 먼지에 불과하다. 이들을 숭배하고 이들에게 봉사하는 것 외에 의미 있는 일이란 없다. - P154

케이는 울음에 대해서는 지겹도록 잘 알았다. 인간은 더 고통스럽게 울었다. 케이는 그들의 눈에서 ‘물’이 흐르는 것을 직접 보았다. 누구든 눈에서 물을 흘려보낼 수만 있다면 세상 모든 것을 뜻대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 P183

정녕 그들은 무엇이었을까. 로봇을 닮았지만 로봇이 아니었던 것, 너무나 나약했지만 또한 너무나 초월적이었던 것. 그것은 우리의 오만에 대한 신의 경고였을까. 아니면 세실이 믿었던 대로, 우리가 불완전하게 불러내버리고 만, 어떤 잔인한 신의 적자(赤子)였을까. 아니면…………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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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여행을 다니는 내 모습은, 삶을 열렬히 사랑하면서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모습과도 닮아 있다. 여행을 떠나올 때마다 나는 일상으로부터 도피를 꿈꾼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여행을 하는 중에 나는 가장 열렬히 일상에 대해생각한다. - 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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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왜 그래야 하죠? 선천적으로 발목이 약하게 태어난 사람은 자전거 탈 권리도 없나요?"
"저희는 온전히 저희 힘으로 한발 한발, 힘들게 밟아가며 노력해서 올라가고 있는데, 님은 모터의 힘을 빌려 이렇게 쉽게 올라가신다고요? 이건 공정하지 않죠. 전 이렇게 불공정한 건 절대 못 참습니다!" - P211

"발렌타인 삼십년 같은 소리 하고 앉아 있네. 박통도 십칠년짜리 묵다가 가셨다는데, 마, 느그 아빠 뭐라꼬 삼십년짜리 처묵노? 절대 사지 마래이. 그럴 돈 있으면 계좌로 입금을 해도, 지난 번처럼." - P235

"어쨌든,"
내가 말을 이었다.
전부 다…………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에요."
언니가 고개를 들었다. 나도 언니를 바라봤다.
"나도 알아."
조금 뜸을 들인 언니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나한테는 이게 제일 귀하고 중요해. 너처럼."
언니는 그때 더 멋진 말을 하고 싶었을 거라고, 지금의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미라 언니의 입에서 나온 문장은 마치 언니의 소설 속 대사처럼 인상 깊지 못했다. 그래도그 말을 듣고 나니 어쩐지, 더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 P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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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줄 알았으면 ‘쪼’나 고칠 걸. - P80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팀장님! - P160

내가 더 잘 부탁해.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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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버는 돈보다 작가 생활과 그에 수반된 여러 대외 활동으)로 버는 돈이 더 많아질 때쯤, 나는 미련 없이 회사를 그만두었다. 만 3년여의 투잡 생활은 나를 훌륭한 고도비만인이자 불면증 환자로 만들었으며,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장기간의 치료를 받게 만들었다. 이 이야기는 그 뒤출간된 산문집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 안에 담기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기뻤다. 내가 겪었던 지독히 평범하고 별 볼일 없는 불행이 작품으로, 재화로 치환된다는 사실이 몹시 행복했던 것이다. 나는 내가 더 많은 글을 쓰며 더욱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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