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진짜와 구분할 수 없는 가짜라면, 그건 이미 진짜가 아닐까요."
한쪽은 열심히 가짜를 만들어 낸다. 다른 한쪽은 기를 쓰고 가짜와 진짜를 분별한다. 이처럼 제한적인 기능만을 수행하는 두 존재의 경쟁으로부터 언젠가는 틀림없는 진짜가 만들어진다. 이러한 원칙이 기원전 4세기에는 정령에게 적용되었다면, 4차 산업 혁명의 시대인 지금은 인공지능 기술 개발에 널리 이용되고 있다. 초자연현상의 세계뿐 아니라 컴퓨터 공학의 세계에도 혁신을 가져다준 그 알고리즘의 이름을 나는 자신만만하게 입에 담았다.
"이언 굿펠로의 생성적 적대 신경망 기계학습 분야에서 지난 10년을 통틀어 가장 주목받는 아이디어죠."
"어, 어어,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그래서 에네 아마루를넣은 거였어! 굿펠로라면 홉고블린의 이명이죠? 과연 정령 혈통은 다르네요!" - P43

자가 빙의라고 하면 체외의 영체가 몸에 들어오는 통상적인 빙의와 달리, 몸 안에 잠재되어 있던 영체가 어떤 계기로 본래 인격을 밀어내고 전면에 드러나는 사례를 말한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례라면 역시 가문 대대로 유전되어 온 조선시대 사대부의 영혼이 제례를 통해 깨어나는 염부 박씨 종가(기이 제37호, 종친회는 2급 지정기이 단체)의 경우. - P71

그렇게 떠오르는 기억은 아마도 태곳적의 식사 시간, 사냥한 고기를 뜯어 먹을 때의 나무 위에서 벌레를 잡아먹을 때의 강렬한 감각이 차례로 되살아나 정신을 사로잡는다. 방을 정리하다가 옛날 일기장 무더기를 발견하면 하루 내내 학창 시절의 환상 속에서 헤매게 되듯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의 향기로부터 장장 일곱 권짜리 이야기가 줄줄이 사탕처럼 끌려 나오듯이. 문제는 그다음의 일이다. 겨우 몇분만에 나무타기 포유류까지 퇴화했다면, 저녁 무렵에는 도대체 뭐에 씌는 거야?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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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이 말문을 열고, 자기 생일을 저주하면서 울부짖었다. ‘내가 태어나던 날이 차라리 사라져 버렸더라면, ‘남자 아이를 배었다‘고 좋아하던 그 밤도 망해 버렸더라면, 그 날이 어둠에 덮여서,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께서도 그날을 기억하지 못하셨더라면, 아예 그 날이 밝지도 않았더라면, 어둠과 사망의 그늘이 그 날을 제 것이라 하여, 검은 구름이 그 날을 덮었더라면, 낮을 어둠으로 덮어서, 그 날을 공포 속에 몰아넣었더라면, 그 밤도 흑암에 사로잡혔더라면, 그 밤이 아예 날 수와 달 수에도 들지 않았더라면, 아, 그 밤이 아무도 잉태하지 못하는 밤이었더라면, 아무도 기쁨의 소리를 낼 수 없는 밤이었더라면, 주문을 외워서 바다를 저주하는 자들이, 리워야단도 길들일 수 있는 마력을 가진 자들이, 그날을 저주하였더라면, 그 밤에는 새벽 별들도 빛을 잃어서, 날이 밝기를 기다려도 밝지를 않고, 동트는 것도 볼 수 없었더라면, 좋았을 것을!어머니의 태가 열리지 않아, 내가 태어나지 않았어야 하는 건데, 그래서 이 고난을 겪지 않아야 하는 건데! 어찌하여 내가 모태에서 죽지 않았던가? 어찌하여 어머니 배에서 나오는 그 순간에 숨이 끊어지지 않았던가? 어찌하여 나를 무릎으로 받았으며, 어찌하여 어머니가 나를 품에 안고 젖을 물렸던가? 그렇게만 하지 않았더라도 지금쯤은 내가 편히 누워서 잠들어 쉬고 있을텐데.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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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인물의 진면목을 알게 되는 순간은 보편적인 욕망에 사소한 개성이 더해질 때입니다. 실제 삶과 참 비슷하죠? - P79

동질감 형성이란 감정이입을 가능하게 하는 좋은 방법이지만, 동질감에 ‘선망‘이라는 요소가 더해질 때 사람들은 한층 더 그 캐릭터에 빠져들게 됩니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서사 이론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시학』을 통해, 우리보다 어느 정도 위대한 힘을 갖고 있는 주인공은 사실 우리 자신과 대동소이한 인물이기에 우리는 그 인물의 감정에 자신도 모르게 완전히 참여(이입)하게 된다고 말했죠. 우리가 부러워하고 동경하는 건 바로 ‘우리보다 어느 정도 위대한 힘‘입니다. - P80

시대가 정해 놓은 이성과 보편 질서를 무너뜨리고 선을 넘는 사람들이야말로 선망의 대상이 될 자질을 갖추고 있다 말할 수 있을 겁니다. - P81

선망과 연민이라는 양극단의 감정을 함께 느낄 때 사람들은 그 아찔한 낙차에 긴장감을 느끼며 대상에 빨려들어 가죠. - P82

어떤 세계가 지속된다고 했을 때 창작자가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는지 보여 주는 것이 톤 앤드 무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P109

긍정적인 톤 앤드 무드의 세계는 시간이 지나면 밝은 미래, 좀 더 진보한 미래가 올 것이라는 가치관이 투영된 세계입니다. 주인공은 선천적인 약점 때문에 좌절하지 않으며, 위기와 갈등 상황이 일어난다 해도 그건 주인공의 성장을 위한 시련이지 주인공을 완전히 부숴버리는 유의 위험이 아닌 것입니다. - P115

만약 복고적인 톤 앤드 무드를 조성하고 싶다면 배경이 되는 시공간과 당시의기술 및 제품 같은 특정 부분에 집중해 적절한 환상을불러일으켜야 합니다. 그렇게 소수의 요소에 집중하지 않고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시대를 조망하게 되면, 사람들이 그 시대의 실체와 가까워지기 때문에 복고적인 감상에 젖기 어렵습니다. 좀 더 냉정하게 그 시대를 바라보게 되겠죠. 그래서 복고적 세계관을 만들 때는 집중해야 할 특정 부분 외의 다른 부분들은 선택적으로 감추거나 농도를 조금 희석해 다루기도 합니다. - P117

SF에 복고적 관점의 톤 앤드 무드가 더해지면 우선 수용자들은 이 세계를 덜 ‘차갑게‘ 인식하게 됩니다. - P119

복고적인 톤 앤드 무드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앞서 말했듯 다른 정서와 마찬가지로 ‘왜 이것을 사용하려 하는가?‘입니다. 그에 따라서 과거의 향수를 강조할 수도, 미래에 보고 싶은 가치를 강조할 수도 있습니다.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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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것이었다. 재주가 없으면 훈련과 경험을 쌓는 수밖에 없다. 『중용(中庸)』의 저자는 공자(孔子)의 말씀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나면서부터 알고, 어떤 사람은 배워서 알며, 어떤 사람은 노력해서 안다. (…) 그러나 이루어지면 매한가지다(或生而知之 或學而知之 或困而知之(…) 及其成功一也).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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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 교환 불가능한 것은 나와 그 사람이 이어져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 P271

하지만 실제로는 땅속에서, 일상생활이라는 단단한 표층을 뚫고 들어간 곳에서, ‘소설적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공통의 이야기를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합니다. 내가 상정하는 것은 아마도 그런 독자입니다. 나는그런 독자들이 조금이라도 즐겁게 읽어주기를, 뭔가 느껴주기를 희망하면서 매일매일 소설을 씁니다. - P272

소설이란, 스토리란, 남녀와 세대 간의 대립이나 그 밖에 다양한 스테레오타입의 대립을 누그러뜨리고 그 날카로운 칼끝을 완화하는 기능을 가진 것이라고 나는 항상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P280

에이브러햄 링컨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많은 사람을 짧은 기간 동안 속이는 건 가능하다. 몇몇 사람을 오랜 기간 속이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을 오랜 기간 속일 수는 없다‘라고. - P301

현실 사회의 리얼리티와 스토리의 리얼리티는 인간의 영혼 속에서(혹은 무의식 속에서) 피할 수 없이 그 근저에서 상통하는 것입니다. 어떤 시대에도 대변혁이 일어나 사회의 리얼리티가 크게 교체될 때, 그것은 스토리의 리얼리티의 교체를 마치 반증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요구합니다.
스토리란 본래 현실에 대한 메타포로서 존재하는 것이고, 사람들은 변동하는 주변 현실의 시스템을 따라잡기 위해, 혹은 거기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내적인 장소에 앉혀야 할 새로운 스토리 새로운 메타포 시스템을 필요로 합니다. 그 두 가지 시스템(현실 사회의 시스템과 메타포 시스템)을 제대로 연결하는 것에 의해, 다시 말해 주관 세계와 객관 세계를 오고 가면서 상호 간에 제대로 적응하도록 하는 것에 의해, 사람들은 불확실한 현실을 겨우겨우 받아들이고 평정심을 유지해나갈 수 있습니다. - P305

나는 소설가라서 사람을 관찰하는 게 일입니다. 세밀히 관찰해서 대략적인 프로세스는 거치지만 판단은 하지 않습니다. 판단은 정말로 그것이 필요할 때까지 보류해둡니다. 그래서 그때도 딱히 가와이 선생님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어떠한 판단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 신기한 눈의 모습을 그대로 하나의 정보로서 기억에 담아두었을 뿐입니다. - P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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