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상상을 해보기로 한다. 하루 두 편씩 글을 쓰는데 딱 세사람에게만 보여줄 수 있다면 어떨까. 세 명의 독자가 식탁에 모여앉아 글을 읽는다. 피식거릴 수도 눈가가 촉촉해질 수도 아무런 반응이 없을 수도 있다. 읽기가 끝나면 독자는 식탁을 떠난다. 글쓴이는 혼자 남아 글을 치운다. 식탁 위에 놓였던 문장이 언제까지 기억될까? 곧이어 다음 글이 차려져야 하고, 그런 노동이 하루에 두 번씩 꼬박꼬박 반복된다면 말이다.
그랬어도 슬아는 계속 작가일 수 있었을까? 허무함을 견디며 반복할 수 있었을까? 설거지를 끝낸 개수대처럼 깨끗하게 비워진 문서를 마주하고도 매번 새 이야기를 쓸 힘이 차올랐을까?
오직 서너 사람을 위해서 정말로 그럴 수 있었을까? 모르는 일이다. 확실한 건 복희가 사십 년째 해온 일이 그와 비슷한 노동이라는 것이다. -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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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모두가 [과거처럼] 자는 데 지금보다 몇시간을 더 쓴다면, 사람들은 아마존에 접속해 있지 않을 겁니다. 물건을 사지 않을 거예요." 찰스는 인간이 건강에 적합한 수면 시간으로 돌아가면(모두가 내가 프로빈스타운에서 잔 만큼 잔다면) "경제체제에 지진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의 경제체제는 잠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집중력 부진은 로드킬일 뿐이에요. 그저 사업의 대가일 뿐이죠."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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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고생이 끝나면 다음 고생이 있는 생이었다. 어떻게 자라야겠다고 다짐할 새도 없이 자라버리는 시간이었다.
고단한 생로병사 속에서 태어나고 만난 당신들. 내 엄마를 낳은 당신들, 해가 지면 저녁상을 차리고 이야기를 지어내는 당신들 계속해서 서로를 살리는 당신들. 말로 다 할 수 없는 생명력이 그들에게서 엄마를 거쳐 나에게로 흘러왔다.
알 수 없는 이 흐름을 나는 그저 사랑의 무한반복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들이 나의 수호신들 중 하나였음을 이제는 알겠다. 기쁨 곁에 따르는 공포와 절망 옆에 깃드는 희망 사이에서 계속되는 사랑을 존자씨와 병찬씨를 통해 본다.* - P108

자신에 관한 긴 글을 듣자 오랜 서러움이 조금은 남의 일처럼 느껴졌다. 슬아의 해설과 함께 어떤 시간이 보기 좋게 떠나갔다.
이야기가 된다는 건 멀어지는 것이구나. 존자는 앉은 채로 어렴풋이 깨달았다. 실바람 같은 자유가 존자의 가슴에 깃들었다. 멀어져야만 얻게 되는 자유였다. 고정된 기억들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존자에 관한 여러 개의 진실이 시골집 거실에 차곡차곡 놓였다. 마당에서는 배추들이 절여지는 중이었다. - P109

그런 미래가 오리라는 것을 아는 자주 잊는다. 잊은 채로 어떤 슬픔도 없이 복희가 차린 밥을 먹는다. 그렇게 생긴 힘으로. 예수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돈을 벌고 가녀장이 되고 잘난 척을 한다. - P147

"폴 발레리가 그랬어요."
복희는 폴 발레리가 누군지 모르지만 묻는다.
"뭐라고 했는데요?"
"작품을 완성할 수는 없대요. 단지 어느 시점에서 포기하는 것뿐이래요…….."
모든 작품이 체력과 시간과 돈 등의 한계로 어느 순간 작가가 포기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하면 슬아의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복희는 대충 고개를 끄덕인다.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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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태스킹이 가능하다는 생각의 세 번째 대가는 중장기적으로만 알아차릴 수 있다. 이 대가에는 창의력 유출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훨씬 덜 창의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생각과 혁신은 어디서 나오죠?" 얼이 물었다. 새로운 생각과 혁신은 뇌가 보고 듣고 배운 것에서 새로운 연결을만들 때 나온다. 방해받지 않는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지면 우리의 정신은 자동으로 그때까지 흡수한 모든 정보를 돌아볼 것이고, 그 정보들 사이에서 새로운 관련성을 끌어낼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일어나지만 바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 "새로운 생각이 튀어나오고, 관련이 없다고 믿었던 생각들이 갑자기 관계를 맺게 된다. 이렇게 새 아이디어가 탄생한다. 그러나 얼은 "작업을 전환하고 실수를 바로잡으며 정보 처리에 많은 시간을 쓴다면, 뇌가 떠오르는 관련성을 따라 새로운 장소에 도착하고 진정으로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생각을 할 기회가 그만큼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 P62

그때 미하이는 당황스러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림에 수많은 시간을 쏟은 예술가들은 작업을 마쳤을 때 자기 결과물을 의기양양하게 바라보거나 자랑하거나 칭찬을 구하지 않았다. 거의 모두가 그 그림을 치워놓고 다음 작업에 착수했다.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하는 이유는 그거 보상을 얻고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스키너의 생각이 옳다면 이들의 행동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들은 작업을 끝마쳤다. 즐길 수 있는 보상이 그곳에, 바로 눈앞에 있다. 그러나 창작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보상에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심지어 돈조차 그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훗날 미하이는 한 인터뷰어에게 이렇게 말했다. "작업이 끝나면 그 대상, 그 결과물은 그들에게 별로 중요치 않았습니다." - P84

암벽을 등반하는 사람이 말했다. "암벽 등반의 신비는 암벽을 오르는 데 있어요. 정상에 도착하면 다 끝나서 기분이 좋지만 사실은 영원히 오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암벽 등반을 하는 이유는 오르는 행동에 있어요. 시를 쓰는 이유가 쓰는 행위에있듯이요. 정복해야 할 존재는 자기 안에 있는 것뿐이에요… 글쓰는 행위가 시의 이유예요. 등반도 마찬가지죠. 내가 흐름 속에있음을 인식하는 거예요. 흐르는 것의 목표는 계속 흐르는 거예요. 정상이나 유토피아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흐름 안에 머무는 거예요. 위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흐르는 거예요. 그 흐름을 지속하기 위해 위로 오르는 거죠."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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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시당초 기이현상청이라는 조직의 출범 계기부터가 "수도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합니다."라는 2004년 당시 서울시장의 발언으로 인해 서울특별시의 영적 균형이 흔들리며 빈발하기 시작한 수도권 기이 문제를 해소하려는 것이었으니, 조직 역량의 상당 부분이 수도권에 할애되어 버린 상황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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