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마리에게는 미국으로 들어오라고 하는 엄마가 없었다. 하지만 엄마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면, 마리에게도 다정하고 친절하고 때로는 잘 삐지는 귀여운 엄마가 진짜 있는 것 같았다. 마리는 세심하고 집요한 시나리오 작가처럼, 자신의 인생 각본을 완성했다. 시나리오에서 설정한 장치의 세부사항을 외우고 인물을 상상하고 진짜로 존재한다고, 진짜라고 몇 번이고 되뇌었다. 마법의 주문을 거는 것과 비슷하다고 마리는 생각했다. 지훈의 엄마를 떠올리면 한결 쉬워졌다. 그러면 믿어졌다.
놀랍게도, 허구의 세상을 가정하고 세심한 세공을 거친 거짓 이야기로 집을 지으면, 진짜 집이 탄생했다.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인생은 어차피 진실과 거짓으로 엮어지는 게 아닌가. 거짓 속에 달콤하고 안락하고 뭔가 특별해 보이는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 P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