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은 단순히 지폐나 동전이나, 햄버거나 영화의 문제가아니다. 누군가에게 인종이나 피부색을 이유로 그를 공공의 구성원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할 때, 그가 당연히 느낄 모멸감, 좌절감, 수치심의 문제이다." 바로,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문제다.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어떤 사적 특성이 공공의 장소에서 받아들여지는가? 공공 공간의 주인은 누구인가? 공공 공간에 입장할 자격은 누가 정하고 통제하는가?
존 스튜어트 밀sim Stat 이 자유로에서 지적하듯, 다수자는 소수자의 의견을 거침없이 공격할 수 있다. 반면 소수자는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표현을 순화하고, 상대방에게 불필요한 자극을 주지 않도록 극도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요구된다. 다수자는 소수자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서 잘말하라고 요구한다. 그렇게 사실상 침묵을 강요한다.
우리가 생애에 걸쳐 애쓰고 연마해야 할 내용을 차별 받지 않기 위한 노력에서 차별하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 옮기는 것이다.
고정된 ‘옳은 삶을 규정하지 않는 이 해체의 시대가 버겁고 혼란스러울 수도 있지만, 이는 인류가 지속적으로 갈구하는 자유를 획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왕족이나 귀족이라는 소수가 누리던 자유를 민중이라는 다수가, 그리고 다음 단계로 사회 바깥에 놓여 있던 모두가 향유하게 될 때까지 세상은 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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