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태도가 차별과 혐오의 소산이라는 것을 안 뒤에는의식적으로 어린이의 소음을 무시했다. 기차에서 아기가 울면 ‘아기가 피곤한가 보구나‘ 하고, 식당에서 아이가 보채면집에 가고 싶은가 보구나‘ 하고 말았다. 그러자 놀랍게도내가 편안해졌다. 눈살 찌푸릴 일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손님들이 이런 관용을, 내가 너무 늦게 갖기 시작한 이런 관용을 조금씩 갖는다면 어린이도 배울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물론 한 번씩 어린이의 고함에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릴 때가 있고, 이 점이 가게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당황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런 순간들을 공유하면서 어린이를 가르칠 수 없을까?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누린 사람이 잘 모르고 경험 없는 사람을 참고 기다려 주는 것, 용기와 관용이 필요하지만,

사회가, 국가가 부당한 말을 할 때 우리는 반대말을 찾으면 안 된다. 옳은 말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사회에 할 수 있는 말, 해야 하는 말은 여성을 도구로 보지 말라는 것이고,
아이를 낳고 키우기 좋은 세상을 만들라는 것이다. 우리 각자의 성별이나 자녀가 있고 없고가 기준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어린이를 위해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어린이 스스로 그렇게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약자에게 안전한 세상은 결국모두에게 안전한 세상이다. 우리 중 누가 언제 약자가 될지모른다. 우리는 힘을 합쳐야 한다. 나는 그것이 결국 개인을지키는 일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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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는 어른보다 작다. 그래서 어른들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큰 어른과 작은 어린이가 나란히 있다면 어른이 먼저보일 것이다. 그런데 어린이가 어른의 반만 하다고 해서 어른의 반만큼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가 아무리 작아도 한 명은 한 명이다. 하지만 어떤 어른들은 그 사실을 깜빡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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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면, 가장 외로운 어린이를 기준으로 만들어지면 좋겠다.
성실하고 착한 사람들이 이기는 모습을, 함께 노는 즐거움을다양한 가족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가족이 아니어도 튼튼한 관계를, 강아지와 고양이를, 세상의 호의를 보여 주면좋겠다. 세상이 멋진 집이라고 어린이를 안심시키면 좋겠다.

자매, 형제의 정이란 참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쌓이는 모양이다. 싫어하면서도 껴안고, 껴안으면 웃음이 나고, 그렇다.
고 다 풀리는 건 아니고, 그래서 늘 할 말이 남아 있는 사이.
어린이에게 자매, 형제는 부모라는 절대적인 조건을, 지붕을 공유하는 동지다. 인생의 초기 단계에서 만나 평생을 알고 지내는 친구이기도 하다. 각자 서투른 채로, 서로의 사회화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도 바로 자매, 형제다.

입을 비죽였다. 그러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이 글을 쓰는데도 눈앞이 그만 뿌예진다. 아니, 원래 하려던 말은이런 게 아닌데, 동생들도 억울하다는 거랑, 그러니까 자매,
형제 어린이들 사이좋게 지내게 도와 주자는 말을 쓰려던건데 왜 눈물이 나지. 이번 글은 아무래도 잘못 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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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도 끼가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그런 준비가 되는 시점은 없다. 실행을 위해서는 일을 벌이고 수습하는 것이지, 수습하고 일을 벌이는 것이 아니다. 준비는 늘 열심히 하는 것이다. 그것과는 별개로 일단 일을 벌여야한다. 그러기 위해 공개적으로 소문을 내길 권한다. 상대방에게 이메일을 보내거나 연락하는 것도 소문의 일환이다). 뭔가 완벽하게 만들어서 ‘짠~‘ 하고 알리려는 계획 따윈 버리시길, 최대한 빨리,
설익은 상태에서 소문을 내면, 스스로 아차 싶은 마음이 들기도한다. 하지만 예정된 날이 다가오면 어떻게든 하게 되어 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렇게 하고 나면, 그 경험으로 한 단계 더성장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건 내가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그러니 내가 해야 할 고민도아니다. 나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연락하고,
지원하고, 소문내는 일,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결과를 기다리면 된다.

(민폐일지 아닐지는 뚜껑을 열어봐야하고, 나를 쓴 사람의 몫이다. 나는 잘 하면 된다. no problem)

현 직장에 불만이 많거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후배들에게해 주는 조언이 있다.
"회사에 목숨 걸지 말아라."
기대치가 높으니 실망도 크고, 내 커리어를 현 직장과 동일시하니 불안한 거다. 회사는 비용의 효율화를 추구하는 영리 단체일 뿐 효용 가치 없는 나를 돌봐 주는 비영리 단체가 아니다. 회사가 나를 언제든 버릴 수 있듯이, 나 또한 언제든 회사를 버릴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모든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
월급의 대가로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그것만으로는 내 커리어를 성장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10~20퍼센트의 노력을 들여 회사 밖에도 내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콘퍼런스나 학회에 발표자로 참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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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에 의해 움직이는 시장은 가치 싸움이다. 재미있게도 소비자는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제품을 사면서 이유를 만들어 낸다. 필요해서 사는 게 아니라 갖고 싶은 욕구가 소비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옷장에 청바지가 수두룩한데 신상을 사면서
‘이건 핏이 다르다‘라고 합리화한다. 월급의 절반이 넘는 명품코트를 사면서 혹은 연봉의 몇 배가 되는 최고급 승용차를 사면서 나는 그럴 가치가 있어‘, ‘결혼 10주년이잖아‘, ‘승진했잖아‘, ‘한정판이잖아‘ 등의 이유를 갖다 붙인다. 심지어 ‘예쁘잖아‘ 같은 밑도 끝도 없는 이유를 들기도 한다. 그래서 욕구에 의해 구매되는 제품은 충성도가 높고 틈새시장이 항상 존재한다.

나 구할 수 있는 것은 당장 갖고 싶은 욕구가 안 생긴다. 원하면언제든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력서에남들도 다 하는 뻔한 기술이 나열되어 있거나 해당 분야에서 으레 나올 법한 경력들이 적혀 있으면 전혀 매력을 느낄 수가 없다. 당연한 것은 눈에 띄지 않는다. 나에게만 있는 가치, 나만 할수 있는 일, 나라서 가능한 일 등 기업에 내가 필요한 이유가 보여야 한다. 문화재로 지정될 만한 보물이나 ‘넘사벽‘의 재주를말하는 게 아니다. 당신에겐 분명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남들이 다 하니까‘, ‘남들이 좋다니까‘, ‘남들이 하라니까‘
등등 ‘남들 바람에 휘말리면 안 된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해서나의 원천 기술을 찾고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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