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주 오영선
최양선 지음 / 사계절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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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영선에게 깊이 공감하며 단숨에 책을 읽었다. 나 또한 영선처럼 빚의 무서움을 보며 자라 대출을 두려워하고, 간소하게 살면 2년 마다 이사하며 사는 것도 분위기 전환 겸 괜찮지 않을까 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가정을 꾸리며 느끼는 안정감과 늘어난 살림은 비례했다. 집 계약이 끝나가며 집주인과 실랑이를 벌이고, 집을 구하려고 발품을 팔며 모르는 사람들의 집에 들어가고, 짐을 싸고 나와 새 집에 들어가는 일은 너무 고된 일이었다. 어딘가에 정착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생겼다.

2년 전 매매가가 오늘은 전세 보증금밖에 되지 않는 현실은 이제 크게 놀랍지도 않다. 나도 영선처럼 포기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다음 이사 땐 꼭 내집 마련을 하자고 다짐했는데 몇 억씩 하는 집을 과연 내가 가질 수 있을지 늘 의구심이 든다. 주 대리는 대출을 받는 걸 ‘거인에 어깨에 올라탄다’고 했다. 내 노동으로 몇 백 걸음을 힘들게 걷느니 대출 한번으로 거인의 한 걸음을 딛어 시간을 아끼라는 말이다.

솔깃한 말이다. 어차피 내가 번 돈만 가지고 집을 사는 건 불가능한데 대출을 나쁘게 볼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집을 산 사람들이 “화장실만 내 거고 나머지는 은행 거야.”라고 말하는 걸 보면 그 마음도 편해보이진 않던데. 아니 근데 나는 내가 사는 집의 어떤 부분도 내 것이 아닌데? 잠깐, 내가 사는 집이 내 것이어야 할 이유는? 머릿속 갈등은 끊이지 않는다. 그러는 동안 집값은 또 오르고 있겠지.

출퇴근길엔 어김없이 아파트를 세워 올리는 공사장을 보게 된다. 끊임없이 집을 짓는데 왜 집값은 오르기만 하고 내 집은 없을까. 폭탄 돌리기 같은 부동산 시장이 쉬이 이해되지 않으면서도, 작가의 말처럼 이 땅에 발 딛고 사는 한 여기서 빠져나갈 수는 없다. 책을 덮는 마음이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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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람들은 집에 머물렀습니다 - 위로와 희망을 노래하는 시 그림책 그림책 너머
키티 오메라 지음, 스테파노 디 크리스토파로 외 그림, 이경혜 옮김, 최재천 해설, 이해인 / 책속물고기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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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그림책을 넘기며 지난 1년 반 동안 경험했던 많은 일들이 머릿속에 영상처럼 흘러갔다. 텅 빈 공연장에서 사람들을 위로하는 노래를 부르는 유명한 음악가들, 집에 머물면서 처음으로 유튜브를 보며 시작한 운동, 화상회의 프로그램으로 친구들과 함께 한 맥주 한 캔.

코로나 이전의 삶과 지금은 정말 많이 달라져있다. 하루도 ‘코로나’ 또는 ‘마스크’라는 단어를 말하지 않은 날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난리 속에서도 사소하게 행복한 순간들은 늘 있었고, 사람들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 더 지구 환경을 염려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개인과 정부, 기업이 중요한 결정을 할 때 환경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코로나에 다들 지쳐가고 있지만, 이 바이러스와 결국 공생해야 한다 하더라도 백신과 방역으로 지금보다는 나아질 거라는 기대를 놓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견뎌내는 과정에서 개발과 경제 성장보다는 환경과 치유에 더 가까이 다가가길 바란다. 또한, 이 그림책이 보여주는 평온함을 느끼지 못한 의료진, 택배기사, 청소노동자 등 필수산업인력, 소상공인들과 같은 사람들까지 끌어안아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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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들 - 여성은 왜 원하는가
캐럴라인 냅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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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면서 느끼는 지금의 행복감과 만족감은 내 삶을 통틀어 최고치를 찍었다. 어린 시절엔 이런 느낌을 모르고 살았던지라 가끔씩은 ‘나 말고 다들 원래 이만큼 행복하게 살았나?’ 하면서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크게 불행하지 않았지만 행복했던 기억도 없는 이유를 오래도록 궁금해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시절 내가 느꼈던 욕구들에 대해 충분히 존중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책을 읽는 동안 저자 캐럴라인 냅과 나의 어머니가 닮아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모르는 사람을 대할 때 가장 공손했던 사람, 나의 욕구를 숨겨야 한다고 경고했던 사람, 칭찬에 인색했던 사람. 내 문제의 원인을 찾다보면 그 끝에는 꼭 어머니라는 존재가 있었다. 한 인간을 형성하는데 유년시절의 가족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금 내가 왜 이 모양인가를 고민했을 때 나오는 단 하나의 답 앞에서 분노를 참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 결국은 ‘나의 어머니 또한 당신의 어머니로부터 겪은 일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라고 이해해야만 했고, 나는 어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까지 거슬러 올라가 누군가를 탓하게 되었다. 이 책의 2장 <어머니와의 관계>에는 저자를 비롯한 여성들이 어머니로부터 받은 압박과 그것이 그들의 삶을 어떻게 괴롭혔는지를 서술한다. 그 일화들을 읽으며, 일단은 (미안하지만)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이것은 어느 한 여성의 잘못이 아니라, 그동안 여성의 욕구들을 억눌러온 사회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글을 쓰기 전 나는 말차크림이 가득 든 페이스트리를 먹었다. 사실 이른 저녁으로 이미 샐러드를 먹었지만, 빵의 유혹을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열량을 태우겠다며 580번 노를 저어서 270킬로칼로리를 태웠다. 맛있는 것을 먹는 일은 행복하지만, 그만큼 살이 찌는 것은 불편하고 부끄럽다. 1년 사이에 거의 10킬로그램이 찌면서 “요즘 얼굴 좋아 보이네요!”라는 인사를 들을 때마다 숨을 들이마시며 배를 넣는 습관이 생겼다. 얼굴이 좋아 보인다는 말은 왠지 칭찬이 아닌 것 같다. 사진이나 영상에 찍힐 때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보다 얼마나 뚱뚱해 보이는지가 더 신경이 쓰인다. 타인의 시선에 맞추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내가 가진 장식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은 괴롭다. 거식증을 극복한 저자마저도 이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듯하다. 간단한 해결책은 없다. 나를 둘러싼 억압을 마주하며 그 속에 있는 내 진짜 욕구들을 들여다보는 것밖에는. 모순 속에 살아가는 모든 여성들과 함께 이 책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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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청년 정치 - 페미니스트 정치를 말하다, 허스토리 인터뷰집
류소연 외 지음 / 허스토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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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내내 인터뷰에 응한 여성 청년 정치인 다섯 명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단 하나의 단어를 꼽는다면 ‘갈증’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기존 거대정당에서도, 진보를 지향하는 군소정당에서도 여성 청년의 자리를 찾지 못한 그들이 스스로 새로운 판을 만들어내는 과정,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목이 말라보였다. 여전히 너무나 적은 여성 의원 수, 그래서 지지부진한 여성 관련 법안 마련, 어린 여성이라는 이유로 엄연한 정치 활동이 가십으로 소모되는 일까지. 그 모든 것을 견디며 일하는 그들의 하루하루는 투쟁에 가까워보였다.

그럼에도 이 페미니스트 정치인들에게 물러서라고 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우리의 목소리를 모아주는 대표들이기 때문이다. 내 또래,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해본 누군가가 선거 포스터에 내가 바라던 정책을 공약으로 싣고, 국회에서 발언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귀하고 감사한 일이다. IT 노동자로 일했던 경험으로 IT 노동자를 대변한 류호정 의원, 엄마가 되고보니 불합리한 일들이 너무 많아서 엄마들을 모아 당사자 정치를 시작한 장하나 활동가, 내 집 없는 청년의 삶을 기성 정치인들에게 일갈한 용혜인 의원. 그들이 쓴 한 줄 한 줄의 기록들이 너무 소중하기에 더 가열차게 정치를 펼쳐주길 먼발치에서 응원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읽는 사람들도 덩달아 갈증을 느끼면서 책장을 넘기지 않을까 한다.

다섯 페미니스트 정치인 각각에 대한 개인적인 인상이나 평가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그들의 활동을 과소평가할 수 없으며, 그들이 던지는 메시지를 못 들은 척 할 수도 없다. 그들은 여성 청년들의 정치 세력화 과정에서 큰 스피커가 되어주고 있다. 그들의 활동 범위가 점점 넓어지면서 여성 정치인들의 풀이 더욱 더 커지길, 여성들의 의석이 많아지면서 질이 높아지는 정치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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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레벨 업 - 제25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대상작(고학년) 창비아동문고 317
윤영주 지음, 안성호 그림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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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 초 자기소개를 할 때 좋아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행복한 순간도 모두 게임이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꼭 있다. 게임을 즐겨하지 않는 선생님은 그 아이들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게임하느라 원격수업에 들어오지 않고, 교과서에 게임 캐릭터만 가득 그려놓은 아이들을 보면 대체 뭐가 그렇게 재밌을까하고 의문을 갖곤 했다.

<마지막 레벨 업>은 현재보다 좀 더 먼 미래를 그리고 있지만 주인공 선우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만나는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부모님이 원해서 편입한 학교, ‘친구’라고 부르며 빠져나갈 수 없게 자신을 괴롭히는 덩치 큰 또래, 진짜 속마음을 나눌 친구는 찾을 수 없는 현실 세계에서 ‘판타지아’는 선우에게 완벽한 공간이었다. 괴물을 무찌르며 영웅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고, 쏟은 시간만큼 정직하게 레벨이 올라가며, 무엇보다 처음으로 친구라고 느낀 존재인 원지가 있기 때문이다. 게임은 아이들이 현실에서 맘처럼 되는 게 없을 때 찾을 수 있는 가장 편안한 도피처가 될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다.

어린이 SF 동화를 처음 읽어보았는데, 뇌를 가상현실에 연결한다는 설정이 충격적이었다. 원지의 정체가 밝혀진 후에 베르나르베르베르 단편소설 <완전한 은둔자>가 계속 떠올랐다. 뇌를 보존액 속에 넣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자하는 의사의 이야기였다. 그는 다른 감각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자기 안으로 끝없이 침잠했다. 반면, 원지는 사고 이후 아버지에 의해 판타지아에 ‘갇혔다’. 원지는 아픔과 배고픔을 느끼고 싶어 했다. 판타지아 안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다른 유저들이 상상도 못할 권능을 사용할 수 있지만 원지는 행복하지 않았다. 단지 그것이 타의로 이루어진 일이라서가 아니라, 그 안의 삶은 진짜 삶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완전한 은둔자>에서 보존액이 쏟아지며 의사의 뇌가 강아지의 먹이가 되고 마는 것처럼,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삶은 ‘영원한 삶’이라 말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원지가 마침내 찾은 자유는 판타지아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음과 그 너머의 세상을 찾아 떠나는 것이었다. 선우도 그것을 알기에 원지를 도왔을 것이다.

<마지막 레벨 업>은 어린이들이 폭발적인 관심을 보이는 게임 세계를 통해 삶과 죽음, 그리고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준다. 또한, 트랜스 휴머니즘에 대한 논의가 끊이지 않는 지금, 기계와 결합한 인류의 영원한 삶이 어떤 의미일지 고민해볼 수 있다. 많은 어린이들이 선우와 원지의 친구가 되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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