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구들 - 여성은 왜 원하는가
캐럴라인 냅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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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면서 느끼는 지금의 행복감과 만족감은 내 삶을 통틀어 최고치를 찍었다. 어린 시절엔 이런 느낌을 모르고 살았던지라 가끔씩은 ‘나 말고 다들 원래 이만큼 행복하게 살았나?’ 하면서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크게 불행하지 않았지만 행복했던 기억도 없는 이유를 오래도록 궁금해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시절 내가 느꼈던 욕구들에 대해 충분히 존중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책을 읽는 동안 저자 캐럴라인 냅과 나의 어머니가 닮아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모르는 사람을 대할 때 가장 공손했던 사람, 나의 욕구를 숨겨야 한다고 경고했던 사람, 칭찬에 인색했던 사람. 내 문제의 원인을 찾다보면 그 끝에는 꼭 어머니라는 존재가 있었다. 한 인간을 형성하는데 유년시절의 가족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금 내가 왜 이 모양인가를 고민했을 때 나오는 단 하나의 답 앞에서 분노를 참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 결국은 ‘나의 어머니 또한 당신의 어머니로부터 겪은 일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라고 이해해야만 했고, 나는 어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까지 거슬러 올라가 누군가를 탓하게 되었다. 이 책의 2장 <어머니와의 관계>에는 저자를 비롯한 여성들이 어머니로부터 받은 압박과 그것이 그들의 삶을 어떻게 괴롭혔는지를 서술한다. 그 일화들을 읽으며, 일단은 (미안하지만)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이것은 어느 한 여성의 잘못이 아니라, 그동안 여성의 욕구들을 억눌러온 사회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글을 쓰기 전 나는 말차크림이 가득 든 페이스트리를 먹었다. 사실 이른 저녁으로 이미 샐러드를 먹었지만, 빵의 유혹을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열량을 태우겠다며 580번 노를 저어서 270킬로칼로리를 태웠다. 맛있는 것을 먹는 일은 행복하지만, 그만큼 살이 찌는 것은 불편하고 부끄럽다. 1년 사이에 거의 10킬로그램이 찌면서 “요즘 얼굴 좋아 보이네요!”라는 인사를 들을 때마다 숨을 들이마시며 배를 넣는 습관이 생겼다. 얼굴이 좋아 보인다는 말은 왠지 칭찬이 아닌 것 같다. 사진이나 영상에 찍힐 때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보다 얼마나 뚱뚱해 보이는지가 더 신경이 쓰인다. 타인의 시선에 맞추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내가 가진 장식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은 괴롭다. 거식증을 극복한 저자마저도 이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듯하다. 간단한 해결책은 없다. 나를 둘러싼 억압을 마주하며 그 속에 있는 내 진짜 욕구들을 들여다보는 것밖에는. 모순 속에 살아가는 모든 여성들과 함께 이 책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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