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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해운대
오선영 지음 / 창비 / 2021년 12월
평점 :
[부산 사람이 읽은 호텔 해운대]
서울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란 오선영 작가의 책이다. 부산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이 도시에 살아오면서 내가 생각하고 느껴온 것들이 많이 담겨 있었다. 표제작 「호텔 해운대」의 두 주인공이 호텔 테라스의 바다를 보며 느끼듯, 해운대는 욕망의 끝을 보게 한다. 해수욕장을 둘러싸고 경쟁하듯 쌓아올린 높은 건물들을 보면 바다를 보며 탁 트였던 마음이 다시 답답해져온다. ‘오션 뷰’를 두고 어디까지 장사를 할 건지 자본가들을 경멸함과 동시에 평생 일을 해도 저 건물의 창문 하나 얻지 못할 거라는 열패감에 싸인다. 호캉스 준비를 아무리 완벽하게 해가도, 심지어 해운대구에 주민등록이 되어 있어도 주인공들과 나는 그곳에 속한다고 느낄 수 없다. 그래서일까, 해운대구에 살지만 해운대에는 잘 가지 않는다. 휴가철엔 더더욱.
「다시 만난 세계」와 「바람 벽」에서는 여성 인물들에게서 동질감이 들었다. ‘집안 사정’으로 퉁쳐지는 지방 국립대 입학, 서울에서 공부하고 취직한 친구들에 대한 부러움, 끊임없이 찾는 플랜B, 안정적인 삶은 얻었지만 여전히 남는 미련, 서울에 다녀오는 길에 느끼는 소외감. 서울을 떠올릴 때 들었던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들이 섬세하게 담겨 있었다. 「다시 만난 세계」에 나오는 안티페미니스트들의 마녀사냥, 「바람 벽」에 등장하는 중견 작가의 혐오 발언까지 사실적인 이야기 전개에 함께 분노하며 읽어 내려갔다.
「후원명세서」는 머리를 땡-하고 맞는 듯한 기분이었다. ‘어쩌면 이것이 Z세대?’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오히려 통쾌했다. 어린 시절 (그놈의) 집안 사정이 안 좋을 때 필요한 게 없다고 말하는 것이 체화되었다. 어차피 말해도 가질 수 없으니까. 나 또한 결핍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 생각했다. 그런 나의 공식을 깨뜨리는 상대방을 보고 느낄 충격은 상당할 것 같다. 나도 내가 원하는 걸 말할 수 있고, 말해도 된다는 걸 정말 오랜 시간 끝에 깨달은 주인공 윤미를 안아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