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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수업
닉 드르나소 지음, 목정원 옮김 / 프시케의숲 / 2023년 1월
평점 :
품절
1. 간단히 말해보자면 삭막한 도시에 사는 서로 다른 열 명의 인물들이 우연히 (특별한) 연기 수업에 참여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인물들은 대체로 저마다의 크고 작은 불안이나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현대인의 대부분이 아마도 그럴 것이다). 연기 수업은 현실의 이런저런 문제들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처럼 참가한 이들에게 유혹의 손짓을 하고 수업이 진행되면서 참가자들은 연기 수업에 푹 빠져들거나 혹은 수업을 의심스러워 한다. 결말은 누구의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해피엔딩일 수도 비극일 수도 있고 호러나 미스테리일 수도 있다.
2. 연기 수업의 목적은 무엇일까? 우선 참가자들의 목적은 대체로 현실에서의 크고 작은 문제 해결이다. 꼭 사회 부적응과 같은 부정적 문제의 해결만은 아닌 것이 데니스의 경우 삶에 두드러지는 문제가 있었다기보다는 (창의력과 같은) 배움을 목적으로 수업에 참여한다. 대니얼의 경우도 딱히 삶에 커다란 문제가 있었다고 암시되지 않는다. 다만 직장에 다루기 까다로운 고객이 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는데 그 정도의 문제도 지니고 있지 않은, 무사태평하고 해맑은 삶을 사는 현대인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아무튼 인물들이 이 수업에 참여하게 되는 계기가 각자의 삶에 있는 치명적인 문제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
그렇다면 연기 수업 주최자의 목적은 무엇일까? 궁극적인 목적은 베일에 싸여 있지만 연기 수업의 진행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표면적인 목적은 참여자들을 가상의 세계로 이끄는 것이다. 궁극적인 목적은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다.(다만 어떤 불길한 암시 같은 것이 뜻밖의 장면에서 언뜻 비치는데 예를 들어 라얀과 라얀의 아들 마커스가 노는 장면이 그렇다.(64페이지) 알록달록한 색깔의 블록을 쌓아 층고가 높은 건물을 만든 마커스는 자신이 만든 장난감 집을 ˝다 박살내버릴˝ 거라고 말한다. ˝다 박살내는 게 재밌는 거야!˝)(그리고 또 하나의 그럴듯한 암시는 네 번의 무료 연기 수업이 끝나면 그 다음 수업부터는 무료가 아니라는 친절한, 은근히 강조되는 설명이다. 그 다음부터 무료가 아니라는 말은, 이미 가상 세계의 단맛에 푹 잠겨버린 인물들이 앞으로 가상 세계를 계속 경험하려면 돈이 필요해질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한다)
3. 수업의 주최자는 참여자들을 유혹한다는 목적을 달성했을까? 수요일 밤 연기 수업의 참여자들 중 절반쯤은 가상 세계라는 유혹에 넘어가고 절반쯤은 (다행스럽게도) 현실의 삶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것이 온전한 귀환은 아닌 게 베스는 존 스미스가 이끄는 미지의 가상 세계로 넘어가지만 않았을 뿐 현실에 남았다고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베스의 이야기는 에필로그에서 전해지는데 병원에서 지내는 듯한 베스의 마지막 말은 ˝저 어디 안 가요.˝이다. 과연 베스는 정말로 어디 안 갈까? 베스의 머릿속에는 이미 현실 세계와는 다른 베스만의 달콤한 세계가 있고, 베스는 현실에 존재하지만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끝까지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사람들에게까지 가상의 세계는 안개처럼 스며든 것 같다. (에필로그를 제외한) 작품 마지막 장면의 모호함이 그런 불안함(가상의 세계에서 아직 완전히 벗어난 것이 아니라는)을 느끼게 한다.
4. 꽃덤불이 클로즈업 되는 이 마지막 장면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아무도 없는 도로변을 걷던 로지는 저 멀리서 차 한 대가 달려오는 걸 보고는 갑자기 근처에 있는 꽃이 핀 덤불 속으로 뛰어들어간다. 로지는 연기 수업의 다른 참가자들처럼 수업에 홀려 강사인 존 스미스를 따라 떠나지 않았지만 아직 자신이 있는 이 마을이 안전한 곳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 아마도 그래서, 이 마을의 낯선 사람과 더 이상 말을 섞지 않기 위해 덤불로 급하게 숨어들어간 게 아닐까? 이 생각(낯선 사람은 믿을 만하지 않다)은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 네 번째 수업을 통해 만들어진 가상 세계에서 로지는 라얀이 있는 호숫가의 집을 찾아가려고 하지만, 그 마을에 있는 낯선 인물들에게 길을 물을 때마다 이들이 번번이 틀린 길을 가르쳐준다. 로지가 결국 라얀에게 도착하는 건 낯선 이가 가르쳐준 길을 따라가지 않고 반대쪽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길을 일러준 이가 좌회전을 하라고 했지만 로지는 우회전을 한다) 존 스미스를 불신하는 로지에게 이 가상의 마을은 전혀 호의적이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장면이 좀 이상하다. 로지가 숨어들어간 덤불 가까이에 도착한 차에서 한 여자가 (로지가 보이지도 않는) 덤불에 대고 이렇게 말한다. ˝저기요! 혹시 도움 필요하세요?˝ 그러고는 그냥 떠나버린다. 차에 탄 사람은 왜 보이지도 않는 로지에게 말을 걸었을까?
왜냐하면 그들은 로지가 보였으니까. 아마도 로지가 숨으려 뛰어들어간 덤불은 연기 수업을 할 때 참가자들이 보던 환상처럼 로지 눈에만 보이는 환상이 아니었을까.(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떠나지 않기를 선택, 즉 현실에 남아있기를 선택한 로지의 눈은 이제 가상 세계라는 눈꺼풀이 벗겨진다. 같은 장면의 현실 세계를 보게 되는 것인데(260페이지) 그렇다면 로지는 가상의 세계라는 눈꺼풀을 정말 완전히 벗어버린 게 맞는 걸까? 로지가 완전히 현실로 돌아온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문제는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 대한 해석에서 중요한 문제이다. 두 번째 연기 수업에서 글로리아는 귀신들린 (샘이라는) 세입자와 귀신들린 장소(place)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런 말을 한다. ˝그 영매 말로는 샘이 이사 간 뒤에도 이 집 귀신들이 안 떨어질 거라는 거예요.˝ 오싹하게 느껴지는 이 말은, 로지처럼 정신줄을 붙잡고 있다 하더라도 한번 가상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다면 쉽게 그 가상 세계의 흔적을 떨쳐버리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래서 로지는 덤불에 숨어들었지만 그건 로지 눈에만 보이는 덤불일 뿐 도로를 지나던 차에 탄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로지가 웅크려 있는 것만 보인 거다. 그래서 자기 눈에 보이는 로지에게 도움이 필요하느냐고 말을 걸었을 거고, 하지만 덤불에 가려졌다고 믿는 로지는 자신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로지가 반응을 보이지 않으니 차는 그냥 떠나버리는 거다. 물론 이것은 별다른 설명 없이 그림으로만 이어지는 장면을 통해 내가 추측한 상황이지만 이렇게 추측하면 작품의 마지막 장면, 꽃이 가득 핀 덤불의 클로즈업 장면이 되게 의미심장해진다. 작품을 통해 참가자들의 연기 수업을 관람해온 독자들 눈에는 마지막의 이 장면이 과연 무엇으로 보일까. 꽃이 핀 덤불? 아니면 웅크려 앉은 로지? 이제 장면의 좀 더 깊숙한 곳에서 작가가 모호한 미소를 짓고 있을 것만 같다.
5. 작품에 적용되고 있는 것 같은 세계관에서 한 인물에게는 현실의 세계와 가상의 세계가 공존한다. 물론 인물은 두 세계를 동시에 경험할 수는 없어서 가상의 세계를 경험하는 동안은 현실 세계에서 사라지거나,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현실 세계를 잊게 된다. 그리하여, 열 명의 참가자 중 가장 적극적으로 가상의 세계에 빠져드는 인물인 엔젤은 블랙 아웃 현상을 (노골적으로) 경험한다. 다른 인물들에게서는 (이런, 현실에서의 행방불명이) 암시나 흔적 정도만 보일 뿐인데 재미있는 것은 연기 수업 강사인 존 스미스에게서도 이러한 (블랙 아웃의) 흔적이 보인다는 것. 이미 첫 번째 수업에서 존 스미스는 자기 소개를 할 때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 실수를 했고(자신의 이름을 ˝잊어버리기 좋은˝이름이라고 말하는데, 이름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정체성, 곧 현실 세계의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는 것과 같다) 35년이나 수업을 한 베테랑 강사답지 않게 수업 도중 자기 자신에게 ˝생각해, 생각. 츄-츄-츄˝라고 말하는 의심스러운 태도를 보였으며 그 후로 이어지는 수업에서 계속 지각을 하고 심지어 수업 장소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강사인 존 스미스 역시 (연기 수업을 통해) 가상의 세계에 푹 빠져드는 몇몇 인물들처럼 가상의 세계에 빠져 있는 인물이라고 의심해볼 만하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인물의 상상에 의해 만들어지는) 이 가상의 세계가 작품 안에서 실제로 생겨나고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대표적인 장면 두 개 중 하나는 73페이지. 로지 부부와 다른 참가자들(글로리아, 베스, 라얀)이 3번째 수업을 들으러 (커뮤니티 센터의 관리인) 웨이드의 집으로 가는 중에 길을 잃는다. 분명히 지도를 보며 가고 있는데도 처음에는 길을 찾지 못하는데 그럴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길이 없었으니까. 73페이지에는 (어떻게 그렇게 된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이 페이지의 근처에서 현실의 세계는 가상의 세계로 넘어가는 것 같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길이 만들어졌음을 보여주는 듯한 장면이 나온다. 이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방금 생겨난) 가상의 길에는 특징적인 점이 있는데, 길가에 흩뿌려진 작은 알갱이 같은 것들. (후에도 반복적으로 나오지만 이렇게 가상의 세계인 듯한, 특히 방금 만들어진 길에는 작은 알갱이들이 널려 있다.) 아무튼 새로운 길이 생겼기 때문에 로지의 차는 무사히 수업 장소에 도착하게 된다. 작품에서 현실의 세계와 가상의 세계를 구분하는 가장 특징적인 묘사는 바로 무성한 나무와 덤불인데, 작품에 그려지는 현실 세계는 대체로 나무가 드문 회색빛이지만 가상 세계로 넘어가면 숨이 막힐 정도로 덤불이 빼곡하다. 그러므로 로지와 참가자들이 차를 타고 가는 장면에서 창밖에 보여지는 풍경이 빼곡한 덤불로 바뀌는 순간부터 현실 세계는 가상의 세계로 대체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길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장면은 256페이지. 데니스를 체포하여 어딘가의 목적지로 향하던 닐의 차가 갑자기 방향을 트는 장면을 보면 도로에 없던 길이 불쑥 생겨난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 장면은 현실 세계가 가상 세계로 바뀌는 장면은 아니지만 가상의 세계 속에서 새로운 길이 즉흥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장면(과 함께 스토리가) 바뀌기도 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누군가의 상상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세계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사실 이 상상의 세계는 현실의 세계만큼이나 연약해서 어떤 사소한 계기로 단번에 깨지기도 한다.)
6.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 두 개. 하나는 세 번째 연기 수업에서 로지가 만들어낸 상상의 장면이다.(104페이지) 로지는 자신이 최선의 상상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눈을 떠 보니 그저 자신의 집이었다. 로지는 뭔가 조금 실망스러우면서도 자기 자신에 대해 안심을 한다. 그러다 조금 이상한 것을 깨닫게 되고(작품에서 로지라는 인물은 굉장히 예민한 관찰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오는데 사소해서 그냥 지나칠 만한 디테일들을 매우 잘 포착한다. 어쩌면 이 예민함이, 로지가 결국 존 스미스의 가상 세계라는 덫에 걸려들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이렇게 말한다. ˝집에 있을 때면 느껴지는 익숙한 공포(dread)가 없어. 뭔가 달라.˝
dread는 불안이나 염려 등으로 해석할 수 있고 내 생각에 이 장면에서는 그게 좀 더 적절한 의미인 것 같다. 상상 속의 집이 현실의 집과 아무리 똑같아 보인다 해도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 딱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현실을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얼마간은 지니고 있을 막연한 불안이다. 상상 속 집에는 현실의 불완전한 흔들림이 전부 제거되어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상상 속에서마저 불안해하고 싶어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불안이 완벽하게 제거된 삶이라는 것은 결국 살아 있는 삶이 아닌 건지도 모른다고, 로지는 생각하는 것 같다.(그리고 내 생각도 그렇다)(˝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70퍼센트가 물이라면 이들의 정신을 구성하는 70퍼센트는 불안이다.˝『잠못드는 당신을 위한 밤의 심리학』)
현실에 존재하는 불안 또는 고통을 가리키고 있는 또 다른 장면은 81페이지에 나온다. 세 번째 수업 장소인 어느 집의 뒤편에서 글로리아는 한 여자를 마주치는데 글로리아를 다소 딱딱하게 대하는 이 여자는 잠깐의 마주침 동안 내내 두통을 호소한다. 그러면서 인상적인 말을 하는데 두통이 곧 ˝지나갈˝ 거라는 거다. 이 의문의 여자는 삶에 존재하는 두통으로부터 도망갈 생각은 없는 듯하다. 살아있다면 두통은 존재할 것이고 그리고 또 지나갈 것이다.(라고 이 장면은 말하고 있는 것 같다, 혹은 나는 이 장면을 그렇게 읽어내고 싶었다)
이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장면이 또 하나 있는데 세 번째 수업이 끝나고 대니엘이 음반 가게에 간 장면이다. 어떤 음반 하나를 집어들어 재킷의 사진을 살펴보다가 대니엘은 화들짝 놀라고 만다. 그러고서 대니엘은 자기가 미쳐가고 있는 건가 생각하는데, 대니엘이 앨범 자켓에서 무엇을 보았길래? 다음 장면에는 아무런 설명 없이 자켓의 뒷면만 확대되어 있다. 앨범의 제목은 Night is when I‘m wistful. 아마도 그리움 또는 애수에 대한 앨범인 것 같다. 그런데 앨범 재킷에 나오는 사진들 속의 얼굴들이 전부 웃고 있다. 웃는 모습밖에 알지 못하는 마네킹처럼, 인형처럼. 고통, 슬픔, 아픔 같은 감정이 완전히 제거된 어떤 세상 속의 사람들처럼.
7. 인상적이면서 가장 좋아하는 또 하나의 장면은 가상의 세계를 거부하는 또 하나의 인물인 대니엘에게서 나온다. 네 번째 수업에서 강사 존 스미스는 대니엘에게 자기 소개를 해보라고 한다. 조건은 ˝자기소개를 할 때 통상적으로 말하는 것들을˝ 말하지 않는 것이다. 이 조건에 맞게 대니엘은 자기소개를 한다.
˝저희 집에서는 흰곰팡이 냄새가 나고요. 저는 하루에 커피 한 주전자와 탄산음료 2리터를 마셔요.
2년 동안 트렁크에 고장 난 진공청소기랑 사진 앨범 한 상자를 넣고 다녔어요. 꺼낼 동기가 안 생기더라고요.
쓸모없는 정보들을 간직하는 데 능해요. (.....)
지난주에 갑자기 제가 걸음을 세며 걷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평생 강박적으로 해왔던 걸 한 번도 인지하지 못한 거예요. 누구한테 말하는 건 처음이네요.˝
강사 존 스미스는 수업에서 각각의 사람들에게 있는 고유성과 독창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것은 허울일 뿐이고) 정작 그가 학생들을 이끄는 길은 그의 말과는 정반대되는 방향인 것처럼 보인다. 존 스미스의 수업에는 디테일이 없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타인에 대한 상상이 결핍되어 있다. 이 연기 수업의 가장 큰 문제점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가 수업 참가자들을 각자의 달콤한 상상의 세계로 이끄는 동안 참가자들은 자신만의 세상 속에 빠져 현실만 잊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관심도 함께 잃어간다. 하지만 얼핏 사소하고 별 거 아닌 듯 보이는 대니엘의 자기 소개를 통해(존 스미스가 진짜 자기 소개를 주문했든 아니면 연기를 주문했든 상관없이 대니엘이 말해준 자기 소개는 연기가 아닌 진짜라고 나는 확신한다) 우리는 대니엘이라는 사람을 조금쯤 상상하게 된다. 그의 사소한 삶의 장면을 상상하며 피식,하는 웃음을 짓게 될 것이고, 그것은 아주 미세할지언정 (너의 세계 나의 세계가 아닌) 우리의 세계를 조금쯤 넓혀 주는 상상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쩌면 사소하고 하찮은 디테일, 바로 ˝쓸모없는 정보들˝로 이루어지는 존재들인지도 모른다.(작가들이 소설을 쓸 때에 인물들에게 현실감을 부여하기 위해 가장 많은 노력을 쏟는 부분은? 바로 디테일이다)
8. 그래서 이 (가상 세계라는) 귀신들린 집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작품이 건네고 싶어하는 말은 뭘까.
(계속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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