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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와 고블린 ㅣ 네버랜드 클래식 43
조지 맥도널드 지음, 제시 윌콕 스미스 그림, 최순희 옮김 / 시공주니어 / 201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영국의 어린이문학계에서 가장 뛰어난 작가로 인정받고있는 '조지 맥도널드'의 대표작 중 하나인 [공주와 고블린]을 읽고...
나이가 꽤 찼지만 나는 가끔씩 동화책이나 그림책을 읽곤한다. 단순히 어떤 의미가 있어서 읽는다기보다는 정말로 재미가 있어서 읽게된다. 최근의 유아기를 겨냥한 동화책을 말하는것이 아닌 대부분 짧게는 50년에서 길게는 100년전에 쓰여진 고전 어린이문학을 좋아한다. 이번에 읽은 [공주와 고블린]은 그중에서도 최고봉에 있는 작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공주와 고블린]은 1870년부터 1871년까지 2년동안 <어린이를 위한 좋은 글>이라는 영국 잡지에 연재되었던 소설인데, 당시에 여러모로 새로운 시도를 보여줬고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호응이 좋았다고 한다.
그 당시(19세기 후반) 대부분의 어린이문학 작품들은 재미를 위해 가볍게 쓴 유치한 내용이거나 어린이들에게 교훈을 주기위해 쓴 계몽도서가 대부분을 차지했다고 한다. 하지만 [공주와 고블린]은 그 두가지를 잘 결합시킨 최초의 어린이도서라고 평가받고 있다. 일견에선 최초의 본격적인 어린이 판타지문학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선 등장인물의 성격부터가 그동안의 옛날이야기속의 주인공들과는 다르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아일린 공주'는 용감하고 똑똑하며 모험심이 가득하다. 한낱 광부의 아들을 구하려고 목숨을 걸고 모험을 시작하는 특이한 공주님이다. 지금까지 공주라고 하면 백마탄 왕자님을 기다리며, 순진하고 가려린 모습으로만 등장했었는데 파격적인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최근의 디즈니 공주들은 시대적으로 보더라도 비교대상이 아니니까 제외하는게 좋겠다.) 그 외에도 신화속에 등장하는 요정이과 괴물을 등장시켜 본격적인 어린이 판타지문학의 기초를 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가는 누군가와 대화하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마도 잡지 편집자와 작가의 대화같은 느낌이랄까? 첫시작과 마지막 에필로그역시 그런 형식으로 끝맺는다. 지금와서 보더라도 독특한 구성이다. 책한권에 단순히 이야기 담아낸것이 아니라 실제로 작가는 독자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처럼 더 가까운 느낌으로 다가와 있는듯했다.
P.9
옛날 옛날에 어린 공주가 살았다 ......
"아니, 작가님, 작가님은 왜 만날 공주 이야기만 쓰시나요?"
"왜냐하면 어린 소녀는 모두 다 공주거든."
"소녀들이 들으면 우쭐해하면서 거만해질 텐데요."
"내 말뜻을 알아듣는다면 그러지 않을 거야."
[공주와 고블린]의 등장인물들은 선과 악이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지는 않다. 흉측한 괴물인 고블린 조차도 원래는 지상에서 인간들과 함께 살아가던 존재였지만 왕의 박해로 인해 지하에 숨어들어 살면서 모습도 변하고 성격도 포악해졌다고 나온다. 어린이소설이지만 세상의 양면성을 보여주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판타지 캐릭터와 모험 등 재미를 주면서도 교훈까지 담고있는데 그것은 작가의 살아온 과정에서 찾는게 더 쉬워보인다.
작가는 애버딘 대학을 졸업한 후 목사가 되었으며 많은 설교를 했지만 불신자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설교를 믿고 따르는 신도들이 없어서 성직생활을 접고 본격적으로 글쓰기에 전념했다고 한다. 지금이야 불신자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설교가 당연한거지만 (그렇지만 여전히 구시대의 종교관을 가진 사람들도 엄청 많다.) 당시 사람들에게 받아들이긴 힘든 내용이었나보다. 성직생활은 그만뒀지만 그의 이야기속에는 종교적인 철학이 담겨있는것을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공주와 소년 커디가 이야기의 막바지를 달려가는 과정에서 대홍수로 인해 모든것이 해결된다. 성서에 나오는 대홍수를 전혀 무시할순없는 내용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종교적인 이야기는 전혀 아니다. 어느정도 교훈적인 내용을 인용하고 작가의 생각이 담겨있다는것이지 종교랑 상관없이 어느 누가 읽어도 즐거운 책이었다.
워낙에 오래전에 나온 책이라서 지금의 동화와 비교하면 세련미도 없고 문체도 단순한 편이지만 충분히 재미있는 요소는 다 담겨있었다. 100여전 전의 책이라고는 감히 상상하기 힘들정도였다. 물론, 번역되면서 본래의 내용과는 그 해석이 조금씩 정리되고 바뀌었겠지만 그렇다해도 본질은 달라지지 않을테니까.
책에는 삽화가 몇장 실려있는데 '제시 윌콕 스미스'가 그렸다. [공주와 고블린] 초판본과는 많이 다른 그림체인데 그의 주요 활동시기는 1917년 이후부터라고 한다. 개정판부터 그의 그림이 책에 실렸는데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억하는 아일린 공주의 모습은 '제시 윌콕 스미스'의 그림속 그녀라고 해도 무방하다고 생각된다.
조지 맥도널드는 "나는 어린이가 아니라. 어린이 같은 모든 사람을 위해 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작가의 생각에 부합하는 사람이 여기 나도 포함되는것 같다. 어린이 같은 사람... 아니 어린이 같은 사람이 되고싶은 사람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