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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독
박완서 지음, 민병일 사진 / 열림원 / 201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그리운 작가 박완서...
내방 책장에도 그녀의 책이 몇권이나 꽂혀있다. 2011년 작고한 박완서 작가가 이제와서 새로운 신작을 내놓을리는 만무하니 이 책은 그녀가 출간하지 못한 문집중 하나란 말인가? 그렇지 않다. 이미 1997년 1월에 출간되었던 '모독'이 2014년에 재출간 된것이다. 당시 티베트와 네팔 여행에 동행했던 시인이자 사진작가인 민병일의 약 150여장의 사진이 그대로 수록되어 있다.
지금은 중국화가 많이 진행되어 변해버린 티베트의 모습과 다른 전통적인 티베트를 그대로 담고있는 [모독]에 실린 사진들이 박완서에 대한 그리움을 더해간다. 비교적 젊은 시절의 박완서 작가를 만날 수 있고, 그녀의 여행과 함께하며 삶의 지혜와 많은것을 경험하고서 느낀 혜안을 잔잔하게 전달받을 수 있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것을 경험하고 동행한 민병일 선생의 사진과 함께 써내려간 의미있는 글귀들. 그리고 그녀가 이 여정에서 얻은 느낌과 삶의 지혜들을 너무도 편안하게 전해준다. 그녀의 다른 작품들도 그렇듯이 독자에게 커다란 반전을 주려고 하지도, 무언가 숨겨진 비밀을 만들려하지도 않는다. 그저 할머니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옛이야기처럼 잔잔하고 편안하게 우리를 여행에 동참시킨다.
특히 사진들이 많아서 좋았는데, 지금의 티베트와는 많이 다른 원래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유지한 20여년전의 티베트 모습을 느낄 수 있었고 어째서 그들이 중국에게 독립하기위해 그렇게 애쓰는지 조금은 납득이 가기도 했다. 아무리 봐도 중국의 문화와는 별개인 독자적인 문화를 최근까지 유지해왔음에도 강대국에게 흡수될수밖에 없는 소국의 운명... 이렇게 [모독]이 개정판으로 나오지 않았다면 그저 오래된 책의 오래된 이야기로 남아 잊혀져버렸을지도 모르는 내용이라고 생각하니 더 의미있게 다가왔다.
네팔 기행기는 분량은 적지만 특히나 쿠마리의 삶을 써내려간 부분이 인상깊었다. 여신과도 같이 추앙되는 '쿠마리'의 삶은 영원하지 않다. 한정적이고 소모적이다. 그들은 그녀를 신처럼 숭배하지만 처녀성이 나타나는대로 '쿠마리'의 지위는 박탈되고 새로운 '쿠마리'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엄격한 쿠마리의 심사과정까지 파고들지는 않았지만 이색적인 문화임에는 틀림없다. 문화라기 보다는 종교라는 표현이 더 맞겠지... 박완서와 민병일의 여행을 함께하며 무엇을 얻었는가 묻는다면, 그리움과 편안함이라고 답하고 싶다. 이제는 많이 바뀌어버린 옛날모습을 이제와서 다시 넘겨보지만 그 역시 나에게는 새로웠다. 그리고 이런 좋은 글을 보여줄 박완서 작가가 이제는 없다는것이 약간은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