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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보내는 상자 - 믿고, 사랑하고, 내려놓을 줄 알았던 엄마의 이야기
메리 로우 퀸란 지음, 정향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2년 6월
평점 :
어머니라는 존재는 누구에게나 그리운 존재이자 특별한 존재가 아닐까 싶다. 같이 있어도, 떨어져 있어도 언제나 엄마는 내 곁에 있는 느낌이니 말이다. 엄마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사람이고, 누구와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분이다. 이 책의 저자 메리 로우 퀸란에게도 어머니의 존재란 마찬가지인 듯하다. 그녀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지극하며 그녀의 어머니 또한 자식에 대한 사랑이 극진하다. 그런데 그녀의 어머니는 남편과 자식 말고도 주변의 친구와 이웃, 그리고 일면식도 없는 친구의 친구와 친구의 가족까지 사랑하고 아낀 다정다감하고도 특별한 사람이었다.
갓 박스(God Box)는 저자 메리 로우의 어머니 메리가 하늘에 보내는 상자다. 하느님께 소망과 걱정, 인생의 중요한 결정들을 알려드리고 보살펴주십사 하는 쪽지로 가득하다. 어머니 메리가 세상을 떠나자 장녀 메리 로우는 어머니의 갓 박스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어머니 방의 옷장 위에서 찾은 10개의 갓 박스에는 무려 20년 동안 그녀의 어머니가 남편과 그녀, 그녀의 남동생 잭, 그리고 어머니의 친구와 이웃에 대한 걱정과 보살핌으로 이루어진 쪽지가 가득 담겨있었다. 그녀는 아버지와 동생과 함께 갓 박스에 들은 자그마한 쪽지들을 하나씩 하나씩 찬찬히 읽어보며 자신의 생애와 어머니의 생애를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사랑과 헌신에 감동받아 어머니에 대한, 어머니의 갓 박스에 대한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저자는 어머니의 갓 박스에서 믿음, 사랑, 공감, 열정, 인내, 그리고 내려놓음의 지혜를 발견했다. 하느님에 대한 어머니의 믿음은 무척 신실하고 극진한 것이었다. 메리 로우의 어머니는 일상의 모든 일을 하느님께 보내는 쪽지에 적어 갓 박스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결과가 좋든 나쁘든 모두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하느님이라는 절대자가 존재했기에 온갖 걱정을 갓 박스에 넣어두고 이내 잊어버리는 일이 가능했다. 갓 박스에 담긴 쪽지에는 남편에 대한 사랑도 돋보였다. 뇌졸중으로 언어 장애를 겪게 된 남편이었지만 바라만 봐도 좋다는 내용이 적혀있을 정도로 두 분의 사랑은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기쁨과 슬픔에 대한 공감 능력은 특별해 보였다. 나 또한 엄마와 함께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면 엄마가 인물의 감정을 제대로 파악하셔서 놀라는 적이 한 두 번이 아닌데 그녀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나보다. 어머니의 힘이란 다른 이들에 대한 사랑과 포용력을 포함하는 것이기도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어머니는 친구와 이웃, 그리고 서로 모르는 친구의 친구와 친구의 가족까지 가슴 아프고 안쓰러운 일들이 들려오면 모두 쪽지에 적어 갓 박스에 넣어두었다. 딸과 아들의 일에 대한 열정도 엄청났다. 딸과 아들을 매우 자랑스러워 했고 그들의 일이 잘 풀리기를 기원하는 내용도 역시 갓 박스 안에 들어있었다. 그러나 모두에게 언제나 밝고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모습만 보여주었던 저자의 어머니도 희귀 백혈병 때문에 고생했다고 한다. 가족 외에는 병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리지 않았고 그 모든 고통도 스스로 인내하며 갓 박스에 넣어 두었다. 저자와 나머지 가족들 모두 갓 박스의 쪽지를 보고서야 어머니, 아내의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갓 박스에 모든 소망과 걱정을 넣어두고도 가장 어려웠던 일은 바로 내려놓음이었다. 내려놓는 일은 그녀의 어머니도 시간이 흘러서야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엄마조차도 고민과 걱정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계셨다.
… 엄마는 처음 갓 박스를 만들었을 때, 자신이 상자에 담은 고민들을 내려놓거나 잊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 ”처음에는 굉장히 어려웠다. 나는 고민거리들을 상자에 담아두고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 했다.”
(53~54p)
갓 박스는 일생의 기록이자 거기 담긴 이들에게 감동과 사랑을 전하는 어머니만의 방식이었다. 저자는 아버지를 떠나 보내야 했을 때 아버지를 천국으로 인도해달라는 첫 쪽지로 ‘갓 박스 의식’을 시작하면서 곁에 어머니가 있는 듯한 따뜻함과 안도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친구와 이웃들의 인생 스토리를 알게 되고, 공감하고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변화를 겪으며 어머니를 닮은 사람이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에게도 갓 박스 의식을 시작할 것을 제안한다. 인생의 모든 힘든 일을,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걱정을 쪽지에 적고 상자에 넣어두면 거기서 해방될 것이라 조언한다. 그것이 저자가 어머니에게서 받은 마지막 선물이라는 사실이 참 감명깊게 다가온다.
가장 어려운 과정인 ‘내려놓음’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 하지만 이 간단한 믿음과 해방의 몸짓에서 당신 역시 안락함과 희망을 찾으리라 믿는다.
무엇을 하든, 그저 이이야기를 친구에게 들려주기만 하더라도, 당신은 메리의 선물을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엄마의 기도는 응답 받았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157p)
갓 박스 의식은 아주 쉽고 아주 적은 시간만을 필요로 하지만 그 자체로 고결하며 소중하다. 전세계 더 많은 사람들이 저자의 '갓 박스 프로젝트'의 진가를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특정 종교의 신자가 아니더라도 나를 옭아매는 온갖 걱정을 상자에 넣은 다음 해방을 맞는 일은 누구에게나 중요하고 효과적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