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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유령들 - 금지된 욕망의 봉인을 푸는 심리 르포르타주
대니얼 버그너 지음, 최호영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성에 대한 관념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던 18∙19세기, 프로이트는 유아 성욕론을 주창하여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은 유아기 때부터 (배설 등을 통한 만족감과 쾌감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의) 성욕을 느낀다. 이는 환경이나 교육에 좌우되지 않는 불변의 본능이다. 프로이트는 성적 충동이 인간의 모든 본능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했으며, 인간의 모든 심리적 요인에는 기본적으로 유아 성욕이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했다. 충격적이고도 혁명적인 프로이트의 이론은 정신분석학, 성심리학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에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21세기가 지나도록 성욕의 확실한 근원을 찾기란 여전히 어려워 보인다. 명확한 사실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연구자들이 많지만 아직 분명하게 결론지어진 내용은 없다. 현재 성과학자들의 주된 연구 주제는 이렇다. ‘욕망은 타고나는 것인가, 학습되는 것인가?’ ‘욕망은 고정적인가, 가변적인가?’ <<욕망의 유령들>> 역시 이 주제를 면밀히 살펴보려 한다. 특히 인간의 이상 성욕을 중심으로 욕망을 작동시키는 심리와 그 근원을 파헤쳐나간다. 르포르타주이기 때문에 실존 인물들을 대상으로, 사실 그대로 꾸밈 없이 그들의 성적 취향과 욕망의 정체를 추적한다. 현실감, 사실성이 강하게 드러나며 주인공들의 사연이 구구절절 생생하게 다가온다.
이 책의 주인공은 총 네 명이다. 여성의 발만 보면 주체할 수 없는 성욕을 느껴 고민인 성공한 사업가이자 가정적인 남편, 유명한 패션디자이너지만 역사적으로 보기 드문 여성 가학성애자, 어린 의붓딸에게 성욕을 느껴 30년 동안 감시와 치료를 받아야 하는 기술자이자 밴드 리더, 마지막으로 사지절단성애를 가진 광고업 종사자이다. 이들은 자신의 숨겨진 욕망이 드러났을 당시 저마다 생경한 느낌에 흥분했고 스스로를 남들과 다른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신을 비정상적이라 생각하여 곤혹스러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순간 느끼는 성욕을 두려워하는 사람도, 자신의 성적 기질을 아주 당당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욕망들을 어떤 성과학자들은 학습된 것으로 보기도 하고 반대로 선천적인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인간이 스스로 욕망을 억제하거나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의사라면 약물이나 다른 치료법을 통해 환자의 변화 의지를 고취시키고, 더 나아가 성욕의 대상을 문제가 되지 않는 선으로 고쳐놓을 수 있다고 기대하기도 한다. 즉 욕망의 정체에 따라 약물 치료의 정도와 정신적 치료법의 방향이 결정되는 것이다. 저마다 꾸준한 연구와 치료를 통해 자신의 주장과 이론을 증명해 보이려 하기 때문에 아직 어느 쪽이 맞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결국 욕망의 정체를 파악하는 일이 정신분석학과 성심리학의 근간과 치료법을 밝혀주는 등대라는 점은 충분히 알만하다.
이 책은 성에 대한 모든 것, 특히 '정상'적인 범주의 사람들에겐 생소하면서도 달갑지 않은 이상 성욕을 노골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객관과 주관 사이에서, 수용과 거부(독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를 이 저자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는 작가의 글솜씨(담담한 어조와 문체, 소설 같은 묘사와 융통성이 돋보이는 서술 방식)가 민망한 내용이나, 심하면 엽기적이기까지 한 내용을 어느 정도 순화해주며, 주인공들을 이해할 수 없다가도 어느새 이해하게 만드는 신기한 재주를 부린다. (그러나 소아성애자의 경우, 이 책에서 유일한 성범죄자기 때문에 마냥 이해해주기는 힘들었다. 저자 또한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하다가 딱 한 번 거부감을 솔직하게 밝힌 바 있는데 바로 이 경우였다. 그런데 사실, 거의 모든 남자들이 어린 여자아이에게 성적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따라서 ‘정상적인 남자’를 ‘성인성애자’라고 표현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거부감이 덜하고, 결국 신세계를 만난 듯 관음증 환자가 된 듯 계속 엿보게 된다. 생각해보건대 책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게 해주었던 요소는 무엇보다도 보통 사람들의 일생을 면밀히 살피며 진솔한 이야기를 이끌어낸 저자의 노력이 아니었을까 싶다.
매우 구체적이고 흥미진진한 이 책을 통해서도 욕망의 정체에 대해선 확실한 답변을 들을 수 없다. 그러나 실망만 하기엔 아깝다. 저자가 세상 사람들에게 던지는 물음은 따로 있다. 우리는 과연 관용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가? 우리가 정의하는 ‘정상’과 ‘비정상’이란 어떠한 것인가? 모든 사람들에게 사회가 원하는 대로 반응하도록 강요하는 것이 ‘정상’이란 말인가? 이 책을 읽다 보면 이 질문에 대해 깊이 고찰해볼 기회를 얻을 것이다.
사회에서 이상한 사람들로 치부되기 쉬운 이들을 관용으로 살펴보려는 저자의 열린 마음이 뜻 깊어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자의 관찰력과 탐구력, 그리고 저널리스트로서의 의식을 높게 사고 싶다. 대니얼 버그너, 기억해 두고 이전 저작들도 읽어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