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피하지만, 일단 해봅니다 - 지금 창피한 마음은 미래가 보내는 성공의 신호
나카가와 료 지음, 김나정 옮김 / 갈매나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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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사람들의 유형만큼 성격 또한 다양하지만 창피함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 중의 하나이다.

창피함을 느끼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우리나라처럼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문화에서는 이러한 창피함이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도 꽤 있다.

자신의 학업이나 진로, 자기 계발 등의 관점에서 창피함을 너무 걱정한 나머지 잘못된 선택을 하거나 아니면 선택의 결단을 포기하는 경우가 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창피함을 걱정하고 심지어 두려워까지 하면 발전 없이 정체될 수밖에 없고 이는 자기 경쟁력 감퇴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될 가능성도 있다.


"한 가지 영역도 아직 완벽하지 않는데 다른 영역에 손을 대면 양쪽 다 애매해질 뿐이야라고 말하는 사람도 적잖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 분야에 강점을 지닌 제너럴리스트는 '조합의 스페셜리스트'이기도 하다. 조합할 수 있는 영역이 많아질수록 특별함이 커져 그 사람의 시장 가지 또한 올라간다. 이러한 영역 간의 조합이야말로 비연속적이고 개별적인 축에서 일어나는 '변화'다... 한 가지 영역만을 봤을 때는 승산이 없어 보이더라도, 여러 영역을 조합하면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된다. 여러 영역의 지식과 경험을 섞으면 내 강점이 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은 순간이었다."

평균 수명의 연장으로 예전에는 상상하기 쉽지 않았던 초고령 사회 진입이 우리 눈앞에 성큼 다가왔다.

하지만 아직까지 사회적인 합의는 이뤄지지 않아 생각보다 이른 나이에 은퇴하여 원치 않았던 제2의 삶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직장 또는 사업 등에서의 젊은 시절의 커리어는 리셋하고 완전히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경우도 우리는 종종 언론으로 접하고 있다. 혹자는 화려했던 젊은 시절을 포기한 선택에 용기와 찬사를 보내기도 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창피한 선택이 아닌가 걱정 또는 우려를 보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러한 선택의 생각과 준비 과정이 분명히 있었다는 데 있다.

예전에만 해도 한 우물을 파서 전문가가 되는 것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졌지만 요즘은 트렌트가 바뀐 것 같다.

급변하는 시대의 경쟁력은 한 가지만 깊이 볼 수 있는 좁은 시야가 아니라 여러 다방면의 지식을 접하여 넓은 시야를 가지고 그것을 서로 조합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닐까 한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일정 시간 이상의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번뜩이는 영감으로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경쟁력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기회는 처음부터 '기회'라는 모습으로 굴러들어 오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게 기회였어'라고 생각되는 작은 계기가 기회로 이어지는 것이다... 일상 속의 작은 계기가 되는 실마리를 찾는 요령이 있다. 이 실마리는 대체로 '머리로는 하는 편이 좋다는 것을 알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일'이다. 그것은 인상에 남는 자기소개를 궁리하는 일일지도 모르며, 세미나에서 맨 앞자리에 앉은 덕분에 강연자와 대화를 나눌 기회를 얻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창피한 기분이 드는 행동이 기회로 이어지는 이유는 타인 또한 당신처럼 창피하다는 이유로 그 행동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창피한 감정을 넘어서서 행동할 수 있다면 사소한 실마리가 기회로 바뀐다."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시간 축의 흐름을 보다 보면 그동안 놓쳤던 여러 기회가 떠오르곤 한다.

대부분은 좋았던 기억에 대한 감상보다는 후회로 가득한 아쉬움이다.

'지금 그때로 돌아간다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때는 왜 그렇게 창피하고 부끄러움이 많아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여러 회한을 하지만 지난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현재와 앞으로 다가올 미래다.

과거와 유사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과거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와 용기가 필요하다. 부끄러움과 창피함으로 천금같은 기회를 놓치는 우를 다시는 범하지 않도록 말이다.


"내적 창피함을 느끼기 쉬운 사람은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사람이다. 이상적인 자신이 명확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지금의 자신에게 있는 결점이 눈에 쉽게 들어오는 것이다... 내적 창피함의 원인이 되는 미학이란 '이래야만 해'라고 생각하는 자신만의 고집이다. 그리고 내적 창피함을 느끼는 순간은 이 '고집'을 자기도 모르게 버렸을 때다. 사실 하고 싶었는데 안 한 경우나 사실 하기 싫었는데 해버린 경우에도 자신을 꼴사납게 여기는 것이다. 내적 창피함을 느끼기 쉬운 사람은 오히려 외적 창피함을 느끼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자신의 행동 지침이 '나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에 맞춰져 있어서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를 신경 쓰지 않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즉 주변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는 성격인 것이다. 이런 점은 내적 창피함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무기가 된다."

창피함도 내적 창피함과 외적 창피함이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외적 창피함에 대해서만 생각하겠지만 스스로의 생각과 모습에 창피함을 느끼는 사람도 적지는 않을 것이다. 대체로 완벽주의자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이에 해당되는데 이런 사람의 경우 스스로가 설정한 기준에 미달할 경우 창피함을 느끼고 외부적으로 비치는 모습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런 성향이 자기 계발에 있어서 동기 부여의 긍정적인 면도 분명히 있을 것이나 스스로 설정한 기준이 너무 높은 경우 또는 잘못된 방향의 설정이라면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여지도 꽤 크다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자기의 성향을 정확히 객관적으로 파악해서 자기에게 맞는 옷을 입는 것이다.

진로나 직업의 선택에 고민을 많이 해야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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