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산에 산다
최성현 지음 / 시루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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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를 챙겨보지는 않지만 채널을 돌리다 접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빠져든다.

얼핏 보면 불편하고 힘든 오지 생활, 자연에서의 삶이지만 우리 모두 가슴속에는 자연에 대한 동경과 삶의 안식처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특히 코로나 팬데믹 상황하에서 자연에서의 삶에 대한 동경은 부쩍 커졌다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차박이나 캠핑이 아닌 오롯이 자연에서의 삶을 살아보라고 하면 과연 할 수 있을까? 선뜻 '네'라고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저자는 서른둘의 나이에 과감히 산을 선택했고,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산에서 살며 자연농법을 실천하고 있다.


"지구에는 꽃이 피고, 나비가 춤추고, 작은 새들이 노래한다. 이 이상의 천국은 없다. 신이 에덴 농산으로부터 인간을 추방했다기보다 인간이 자신의 지혜로 늘 신을 쫓아내고, 죽이고 있다고 해야 한다."

>> 코로나 팬데믹으로 그 어느 때보다 인간은 힘들고 답답한 삶을 영위하고 있지만, 반대로 자연에게는 축복이 아닌가 생각한다. 요즘 맑은 날씨의 가을 하늘을 보면 이렇게 하늘이 파랬었나!, 바람이 이렇게 선선하고 포근했었나! 하는 근래에는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이질적인 느낌에 놀라곤 한다. 인간이 잠시 활동을 멈춘 사이에 놀랍도록 회복되는 자연을 보며 과연 인간은 자연을 이용만 할 뿐 괴롭히고 죽이고 있는 적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하루는 얼마나 자비로운가! 어제의 일을 묻지 않는다. 잘난 놈 못난 놈 가리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24시간이 주어진다. 하루 이틀이 아니다. 무엇을 그리든 자유인 1440분이라는 화폭을 하루는 죽을 때까지 우리 앞에 가져다 놓는다. 그 하루에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걸 수밖에 없다. 아무리 무거운 짐을 져도 지게질은 쉽다. 어쨌든 한발 한발 걷다 보면 목적지에 닿는다. 하지만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살기는 쉽지 않다. 그 한발 내딛기가 잘 안된다. 그것이 더 많은 수입이거나 더 높은 지위가 아니고 삶의 질이거나 인격일 때는 더욱 그렇다."

>> 머릿속이 복잡할 때 지게를 지고 집을 나서며 생각하는 저자의 생각과 감정이다. 빠름으로 상대를 압도해야 하는 현대인이 삶 속에서 지게질과 같은 느릿함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느린 걷기를 통해 나 자신이 맑게 정화되는 것이 좋다는 저자의 삶과 행동은 그 하나로 명상이요, 구도(求道)의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봄여름가을겨울! 한 해의 다른 이름이다. 여래如來의 다른 이름이다. 하나님/하느님의 다른 이름이다. 내 눈에는 그렇다. 그 귀한 것이 누구에게나 온다. 가리지 않고 온다. 어리석고 욕심 많은 내게도 온다. 우리는 모두 봄여름가을겨울 안에서 산다. 사람만이 아니다. 나무와 풀, 새와 나비가 그 안에서 산다. 호랑이와 나무늘보가 그 안에서 산다. 하루살이와 호리병박벌이 그 안에서 산다. 그 모든 것들이 봄여름가을겨울의 젖을 먹으며 산다."

>> 1년마다 반복되는 사계절의 흐름을 우리는 늘 당연한 듯이 대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자전을 통해서는 낮과 밤이 바뀌고 공전을 통해서는 사계절이 바뀐다. 시간과 마찬가지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이 흐름은 자연에게도 마찬가지로 동일하게 주어진다. 나무와 풀, 새와 나비가 그 안에서 살고 호랑이 나무늘보 같은 동물이나 호리병박벌과 곤충도 그 안에서 살고 있다. 산천초목과 동식물은 이러한 흐름에 순응하며 살지만 오직 인간만이 역행하며 살고 있지는 않을까?

입사 5년 차였던 걸로 기억한다. 온갖 스트레스에 머리도 아프고 퇴사 생각이 꽉 차 있을 때 우연찮은 기회에 덕유산 산행을 가는 일행을 알게 되었고, 부탁을 해 동행하게 되었다. 덕유산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을 때 머릿속에 가득 차 있던 스트레스와 잡념들이 부지불식간에 사라지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목적으로 산을 오르겠지만 산은 그 모든 사람들에게 해답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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