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출판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마흔백수 손자가 엄마 박여사와 97세 피여사와 함께 살아간다.
피여사는 몸 여기저기가 아픈 97세의 할머니다.
누군가는 그런 할머니를 돌봐야 한다.
가족이 아니면 할 수 없다.
가족이기 때문에,핏줄이기 때문에 마흔 백수 손자는 할머니를 돌본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 생명 갉아먹힐 정도로 남을 돌보는 일이 쉽지 않은거란걸 육아도 해보지 않은 손자는
뼈저리게 잘 알고 있다.
피여사는 무뚝뚝하고 매사 부정적인 사고를 하는 전형적인 일제강점기 시대를 지내온 어른이다.그도그럴것이 전쟁에 항상 긴장상태로 지내온 그들이 평온하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질리가 없을거라고 손자는 피 여사를 이해해본다.
피여사도 박여사도 그 옛날 딸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회적 풍토때문에 환대받지 못한 채 태어났다.
피여사는 2번의 결혼으로 네 아들과 박여사를 낳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 나이든 피여사를 책임지게 된것은 박여사 뿐이다.
태어날때는 아들아들 해도(요즘시대 사람들은 덜하지만) 나이들어 결국 부모마음 잘 헤아려주고 잘 보살펴 줄 수 있는것은 어쩔 수 없이 딸 인것 같다.딸은 결혼한뒤 엄마와같이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면서 부모님의 아이를 키우는 정성과 노력과 고생을 자연스레 알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부모에 대한 안쓰러움이나 공감대가 아들보다 훨씬 높은 수치로 작용하는듯 하다.
피여사의 아들들도 이혼을 하거나 도박에 빠지거나 하여 자기 앞가림도 힘들어 가끔 엄마를 들여다 보는게 전부이다.그런 아들들이 당신보다 먼저 죽는날에는 몸이 좋지 않아 가보지도 못하는 처지다.100세 가까이 살게 되면 그럴수도 있겠구나...하는 슬픈 순간이다.
이 책을 읽기전에는 오래산다는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적이 없다.나야 지금 아이를 키우는 가장 바쁜 시기이니 내 미래까지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피여사의 생활을 들여다보니 집안에서도 보행기를 끌어야 화장실에 갈 수 있고,그마저도 안될때는 누군가를 통해 기저귀를 갈아야만 생존할 수 있다.밤마다 몸에 이상이 없는데도 아프다고 소리치게 되고 이것은 혼자서는 해낼수가 없는 사정이다.새삼 늙음이 두려워졌다.
p194 피 여사에게 친절했던 남자가 살아오면서 몇 명이나 될까 싶었다.남자들 역시 나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을 테고,가족들을 부양하느라 무지하게 고생했다.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이 겪은 고통을 여자들에게 전가하기 일쑤였다. 피 여사의 인생을 통틀어 고마운 남자보다 설움을 안겨준 남자가 더 많았다. 피 여사뿐 아니라 앞 시대 여자들 거의 모두가 불행했다.사람들이 자기 엄마를 생각하자마자 다들 울먹이는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피여사에게 행복한 날이 있긴 했을까?
그냥 낳고 키우고...
엄마들 세대는 참...안타깝다.
현재도 아주 나은건 아니지만 그래도 작가말마따나 과거와 현재중 고르라하면 현재를 고를것이기에...
손자는 아버지의 장례식도 안갈정도로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컸다.어린날 피여사와 머리채를 붙잡고 싸우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뛰쳐나가 빗자루를 휘둘러 아버지를 패려고 작정했던 그였기에...
p178 화목하지 않은 가정에서 지낸다는건,궁핍한 가정에서 큰다는건 참으로 서글프게 씁쓸한 일이었다.사위를 원망하던 피여사도,스스로 삶을 망가뜨리고 신세한탄하던 아버지도,빗자루를 들고 뛰쳐나가 휘두르던 나도,헐벗은 가슴으로 상처를 끌어안고는 세월을 견뎠다.
사실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주기도 하는건데 손자는 화목하지 않은 가정에서 살면서 비뚤어지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텐데... 나이 40이 다되도록 엄마와 한집에서 아픈 할머니와 함께 살아가며 밥도 챙겨드리고 약도 챙겨드리고 아프다고 '인아, 인아' 부를때마다 침착하게 할머니의 말벗이 되어주거나 진정시켜 드리거나 하는걸 보면서 역시 피는 진하다고 생각했다.
누가 그리 지성스럽게 돌볼 수 있을까,
새벽마다 가족들의 잠을 깨우고 몇번씩 고통스럽게 울부짖고 불러대고 하는 아가같은 할머니를..
손자도 손자이겠지만 박여사의 사정도 딱하다.
박여사는 피여사를 배려하면서 자신을 희생하면 속이 문드러졌고,피여사를 외면하면 극심한 죄책감에 시달렸다.엄마와 딸처럼 끈적한 애증관계도 없는것 같다.
엄마에게 강렬한 애정을 느끼면서도 엄마의 말한마디에 상처를 받고 ,자기또한 엄마에게 상처를 주면서 엄마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박여사는 피여사를 두고 일을 다닌다.아빠에게 맞고 살때 스스로 종교를 찾았다.
그래서 종교생활도 한다.그런 딸에게 섭섭함을 느끼는 엄마 피여사가 있다.
허나,박여사가 딸이라고 할지언정 박여사의 인생도 있는것이다.
사람은 아무리 가까워도 어느정도의 거리가 필요하다.그것이 가족이어도 말이다.
박여사가 집에만 있다고 해서 피여사를 더욱 따뜻하게 돌봤을리 만무하다.
오히려 아들과 돌보는 업무를 나눴기에 피여사와 함께 사는일도 가능했을 것이다.
피여사는 죽을것만 같았지만 다시 건강을 되찾았다.
가족이란 게 뭘까?
세상에는 이웃보다 못한 친족관계도 많다.
여기에 가족으로서 아픔을 줬고,각자 아픔이 많은 상처를 담고 살아가는 세사람이 있다.
세 사람은 현재에 매우 충실히 살아가고 있다.
피여사는 격투기와 야생동물 다큐멘터리 티비를 보며,박여사는 일을 다니며,손자는 그런 피여사를 바라보며, 글을쓴다.
언뜻보기엔 각자도생 같지만,서로를 외면하지 않고 가장 적절한 포지션에서 가족이라는 이름하에 맡은 책임을 다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하루하루 고군분투하더라도 가족이라는 타이틀이 그들을 끈끈하게 연결시켜주는것이다.
가족은 그런것이다.
가족은 그냥 영원히 내편이어야 하는것이다.
그래서 손자도,박여사도,피여사도 모두 잘 해내고 있다고 충분히 응원해주고 싶다.
피여사의 모습이 먼 미래에 닥칠 나의 모습,우리들의 모습일 수 있다.
나중에 내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지는 않은데....
나는 누군가에게 부담을 주지않고 스스로 잘 늙어갈 수 있길 바란다.
그래서 앞으로 노인의 복지를 위해 나라의 지원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더불어 피여사님도 건강하시기를...
#나의 까칠한 백수 할머니 #이인 #한겨레 서평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