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하자! 푸른도서관 79
진희 지음 / 푸른책들 / 201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과를 주세요​

과연 의지답다. 전후 사정 다 생략하고,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이야 전교생이 빤히 알고 있겠지만, 자기가 원하는 것 한 가지만 저토록 강력히 주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과를 받고 싶어요.’라든가, ‘사과를 하세요.’라든가, ‘학생도 사과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식의 과격한 요구 따위 치우고 풋, 하고 웃음마저 터지게 하는 저런 문구를 선택한 것도 의지의 작전일 테다. 어쩌면 자기 엄마에게서 전수받은 요령일지도. (p.9)



데이트하자!​

나긋나긋한 요청의 목소리가 또 한번 들려왔다. 어리둥절 했던 방금 전과는 달리 지금은 방향을 정확히 알겠다. 나는 쓰고 있던 다이어리를 덮고 목소리가 건너온 왼쪽을 돌아보았다. 내 옆에 앉아 기다렸다는 듯 방그레 웃어 보이는 사람. 일흔은 족히 되어 보이는 할머니였다. (p.41)

 


삐딱이를 만났어

첫사랑!

삐딱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름 모범생이 등장해 주셨다. 말도 안되는 소리. 고민거리야. 그것도 아주 곤란한. 그러니까 애당초 저런 애랑은 엮이면 안 돼.

이런 답답이!

삐딱이가 코웃음 쳤다. 나름 모범생도 꽤 강하게 되받았다. 누구더러 답답이래? 이래 봬도 난 모범생이라고!

나름, 모범생님이시지.

‘나름’을 강조하는 삐딱이에게 웃어 줄 수밖에 없었다. 남들 눈에 그럭저럭 모범생 같아 보인다는 뜻이지, 글자 그대로 완벽한 모범생이고 싶은 생각 따위 없으니까. 이쯤에서 다시금 삐딱이 승!


가출기록부

배는 천천히 나아갔다. 딱히 목적지를 정해 놓지 않고 무작정 바다 위를 떠도는 것도 같았다. 어둠을 삼킨 물이 아득했다. 저 깊디깊은 물 아래에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묻혀있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기다리는 일은 육지의 사람들에게만 속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기다림은 저 어둔 바닷속에 남겨진 사람들에게 더 절실한 것인지도 모른다. 영원히 남겨지지 않게 해 달라는 염원. 아주 잊고 돌아서지 않게 해 달라는 소원. 하루빨리 집으로, 가족들 품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게 해 달라는 기원.

그렇지만...... 모두 잊는다. 날마다 까맣게 잊어 간다.



 

짝사랑 만세 


태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나도 안다. 태오 걱정처럼 어쩌면 내 꿈도 이루지 못한 짝사랑으로만 끝날지 모른다. 좌절하고 포기하고 버려진 꿈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순간이 찾아들지도. 그렇지만 오지도 않은 그 순간이 두려워 지레 물러서진 않겠다. 걱정을 풍선처럼 부풀리며 살아가진 않겠다. 그러기에는 내가 품은 진심이 너무도 찬란하니까. 영원히 짝사랑이어도 괜찮다. 꿈이든, 의지든, 지금은 행복한 진행형이니까.

 

 

10대에서 20대까지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는 푸른 세대를 위한 본격 문학 시리즈인 푸른 도서관의 79번째 이야기 <데이트하자!>

 꿈과 현실 사이에서 당차게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선 청소년들의 삶을 다섯 편의 이야기로 묶어 청소년 특유의 발랄한 일상과 그 안에 깃든 고민과 성장통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사과를 주세요>의 주인공인 의지와 친구 태오를 시작으로 그 친구의 동생들이 나머지 네 편의 이야기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미처 애기하지 못했던 자신만의 이야기를 다른 단편의 주인공이 되어 들려준다. 표제작 <데이트를 하자>의 주인공 나래는 <사과를 주세요>에 나오는 의지의 친구 태오의 동생이며, 이 작품에서 나래가 짝사랑하는 수현의 형인 재현은 마지막 작품 <짝사랑 만세>의 주인공이다. <삐딱이를 만났어>의 주인공 이유는 나래의 사촌 언니이고, 이유의 쌍둥이 동생 해밀이 주인공이 되어 풀어가는 이야기가 바로 <가출기록부>. 그리하여 이 모든 주인공은 마지막 장면에서 한데 모이며 대미를 장식한다.


가출이나 자퇴, 진로변경 등은 기존의 청소년소설들에서도 자주 흔하게 등장하는 소재들이다. 기존 소설들이 이 소재들을 일종의 고난과 역경으로 설정하여 주인공들이 고난을 겪고 그 일을 바탕으로 한층 더 성장해 나가는 청소년들의 모습들을 그렸다면  <데이트 하자> 속 주인공들은 이 소재가 곧 자신의 일상이자 꿈이며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저자는 청소년들에게 행복해지라던가 욕심을 비우고 눈높이를 낮추라는 등 섣불리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 누구보다 청소년들의 행복한 미래를 응원하고 꿈꾸며 끊임없이 청소년 자신이, 어른들이, 이 사회가 그런 청소년들을 삐딱한 시선으로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응원해줘야한다고 이야기 한다. 그 인정과 응원이 미래의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첫걸음이라는 것.

작가가 이야기하는 행복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부와 명예를 얻는 것도 아닌, 그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소소한 자기만족을 찾는 것도 아닌, 나와 다른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개성을 발휘하면서 내가 나인 채로 살 수 있는 세상에서 비로소 발견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부모님과 선생님의 무시와 조롱을 받으면서도 묵묵히 자신의 꿈을 향해 걸어 나가고, 가출한 동생을 나무라는 대신 그의 시선으로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하며, 좀비가 되기 싫어 자퇴하는 삶을 살아 나간다.

마냥 어리게만 봐왔는데 책을 읽으면서 우리 아이도 이제 마냥 어리지만은 않은 것 같아 한편으론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들을 인정하고 응원해줘야 하는 우리들인데, 아이들의 속마음은 들여다 보지도 않고 우리가 너무 삐딱하게만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 내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내 딴에는 아이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  말이 지금 우리 아이의 마음을 불행하게 만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