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
고수리 지음 / 수오서재 / 2019년 3월
평점 :
품절


 

 

 

 

 

 

 

 

 

 

똑딱똑딱. 지금도 지나가고 있는 시간 속에는 수없이 많은 순간이 반짝인다. 순간을 단숨에 지나치려 하지 않고, 모든 순간을 잡으려 애쓰지 않고, 순간이 나를 붙잡을 수 있도록 천천천 걸어가는 것은 꽤 괜찮은 삶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어쩌다 순간에 붙잡힌다 해도 좋을 일이다. 내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반대로 삶이 나를 살아가게 하기도 하니까. 어떤 순간에는, 살아 있음 그 자체가 우리를 살게 하기도 했다. (p.21)

 

한없이 뾰족할 것만 같았던 내가 지금은 동그랗고 부드러워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마음을 계속 글로 써왔기 때문이다. 내가 연필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생각한다. 이런 운명이라면, 어쩔 도리 없이 연필로 살아가야 한다면. 살아가는 동안 부끄러운 글은 쓰지 말아야지. 그 시절 백일장 같은 글은 쓰지 말아야지. 남을 아프게 하는 글은 쓰지 말아야지. 나는 오래도록 쓰면서 작아지고 싶다. 볼품없이 뭉툭해진 몽당연필이 되더라도 정직한 마음으로 따뜻한 글을 쓰는 연필이고 싶다. (p.95)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까. 나는 뚜벅뚜벅 걷던 따피씨에를 생각한다. 제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선 정작 제 맘에 맞지 않은 일은 별로라며 피해 다니던, 뭐든지 제멋대로였던 이상한 친구. 그래서 녀석은 매일매일 행복했던 것 같다. 따피씨에가 그랬다. 하기 싫은 건 하지 말라고. 행복은 견뎌야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행복은 오늘 이 순간에만 반짝이는 조각 같은 것. 일단 잡아야 했다. 즐겨야 했다. 기뻐해야 했다. 아주 마음껏. (p.146)

 

어느 길이든 때마다 내가 선택한 방향으로 나의 속도로 걷는다. 걷다가 걷다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길게 이어진 나의 발자국이 나의 길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면 그때야 알게 되겠지. 우리의 지난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나는 그녀들에게 마음을 보냈다. 그렇게 계속 걸어가. 괜찮아. 그래도 괜찮아. (p.159)

 

 

특별할 것 없이도 이미 충분히 아름다운 우리 삶의 모습을 발견하는 작가 고수리가 전하는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행복하게 만드는 마법 같은 글들! 누구나 살아온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반짝이는 순간들이 있다. 마음속에 남은 기억과 추억 같은 것들. 모두 내가 붙잡은 순간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떤 순간은 아니다. 떠올리는 것과 동시에 찡하고 마음을 울리고 마는 그런 순간이 있다. 순간이 나를 붙잡은 순간. 콕콕 마음을 두드리는 따스한 글들이 가슴속으로 잔잔하게 퍼져나간다. 사랑과 상처를 껴안고 사는 이들에게 저자가 전하는 온기와 위로의 말들. 친구의 주머니 사정을 모른 척하며 싸구려 선물을 받아준 친구의 마음, 폐지를 모으는 할머니, 골목길 화단에 살던 길고양이, 자전거를 타는 저녁, 엄마의 텅 빈 냉장고 등 특별하지 않은, 우리 모두가 일상 속에서 겪은 법한 평범한 이야기가 더 크게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특히 엄마에 대한 글에서는 마음이 크게 동요되었다. ‘그래, 나도 그랬던 적이 있었는데···’ 마음으로 차곡차곡 위로가 쌓여간다. 세상의 인심이 야속하다지만 내가 보기에 아직 세상은 살 만하다. 괜찮다, 오늘이 힘들고 괴로워도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은 하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특별할 것 없어도 우리의 삶은 충분히 아름답다. 그러니 우리 마음껏 행복해지자.

 

 

우리는 그렇게 웅크리고 그렇게 걷고 그렇게 살고 있다고.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삶은 우리 등 뒤로 아름답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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