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도 일상이 로맨스겠어
도상희 지음 / 뜻밖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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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발견의 눈’이 떠진 날. 평소 잘 다니지 않던 골목길을 걷다가 비에 젖은 아름다운 능소화를 봤다. 그것 하나로 이번 주말은 좋은 주말이 되었다. 장마에도 바깥바람을 쐬고 싶다는 의지를 보송보송하게 지켜낸 것, 땅만 보고 걷지 않고 두리번거릴 여백이 내게 남아 있는 것, 건강하게 두 다리를 딛고 서 두 눈으로 능소화를 본 것. 그 모든 게 고마웠다. (p.20)

 

삶은 노동, 작업, 활동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스피노자가 말했다.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이 노동, 그 노동을 하기 전후로 씻고 챙기고 먹고 지하철에 타고 목적지에 가고, 내 방을 청소하고 이런 게 작업인데, 우리는 작업의 순간은 삶에서 없는 거고 그냥 어쩔 수 없이 흘려보내는 시간이고 목적을 위해 해치우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순간들도 다 소중한 내 일상이에요. 나를 아름답게 천천히 씻기고, 느긋하게 콩나물 한 시간 다듬어 요리해 먹이고, 지하철에선 책도 노래도 없이 멍하니 나 자신과 있어보고, 이리저리 나와 놀아보는 시간으로 만들어야 해요. 그렇게 되면 작업도 ‘활동’이 되죠. 즐거워서 하는 모든 것, 하고 싶어서 하는 창조 같은 게 활동이에요. (p.47)

 

거리에서 수십 명을 만났지만, 두려운 게 없다는 사람은 없었다. ‘두려움’을 ‘사랑을 잃는 것’으로 다시 정의한다면, 그건 곧 삶을 지탱해나가는 사람이라면 사랑하는 것을 꼭 하나씩은 품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자세히 들여다볼 순 없어도 비슷하게 모진 하루를 보냈을 당신이, 완전한 타인인 당신도 나처럼 ‘사랑’ 하나로 산다는 이야기는 내겐 그 어떤 동화보다 아름다운 동화이자 위로였다. (p.71)

 

사람은 비슷한 부분에 이끌린다. 유난히 마음에 쓸쓸한 바람이 부는 사람, 뒷모습이 슬픈 사람이 있다. 그 사람들에게 이끌리는 건 잘잘못을 따질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결국 그들과 함께 있는 내가 행복해지지 않는다면 헤쳐 나올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남이 아닌 ‘나 자신’의 빈 곳을 메우려는 노력일 것이다. 내게 ‘구원자병’이라는 적확한 단어로 나를 도왔던 그 언니처럼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구원은 셀프다. (p.117)

 

 

 

스물하나에 고향을 떠나 혼자 올라온 서울. 그렇게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도 오늘 하루 어땠는지 안부를 물어주는 사람이 없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바다로, 독서 모임으로, 영화제 자원 활동 같은 이런저런 대외활동을 하면서 사람을 만났다. 서울살이 채 1년이 지나지 않아 그녀는 워커홀릭, 금사빠로 불렸지만 그래도 외로움은 가시지 않았다. 사람을 만나고 돌아와 다시 혼자가 되었을 때 느껴지는 공허함. 흠씬 두들겨 맞은 뒤엔 책을 펴들었다. 수많은 타인의 문장이 이불이 되어 저를 덮어올 때, 비로소 잠들 수 있었다. 그렇게 외로움과 맞서 싸우며 제 안에 쌓인 문장들은 가끔 일기로 터져 나오곤 했다. 대부분의 날들에 자신만을 위해 썼다. 일기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감정에만 집중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일기들이 블로그에 하나씩 쌓일 때마다, 그런 그녀의 글이 좋다는, 그녀의 글에 마음이 따뜻해진다는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혼자라도 괜찮은 사람이 되려고 끄적였는데, 타인을 위로할 수도 있다니. 그렇다면 내 글쓰기는 이 불안한 생에서 겨우 완전해지는 일이겠다.’ 이 책은 그렇게 모으기 시작한, 한 사람의 완전해지려는 버둥거림이다.

 

 

‘입고 싶은 거 입으면 되지. 추고 싶으면 춤추면 되지.’ 자기 자신과 잘 노는 사람, 혼자서도 일상이 로맨스인 사람은 바로 이 책의 저자 도상희. 이 책은 그녀가 홀로 살아온 세월의 기록이다. 대단하거나 화려하진 않지만 그래서 더 소중한, 솔직하고 다정한 한 사람의 세계를 만나볼 수 있다. 세상에 상처 받아도 기어이 세상과 또다시 사랑에 빠지고, 두 눈을 빛내며 자신이 반한 존재들에 대해 얘기하는 그녀는 일명 금사빠. 세상에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그녀는 그것을 보고 있는 게 좋다. 자신이 쉬이 반하는 사람인 게 좋다. 그래서 내일도 살아갈 수 있으니까. 사는 동안 이렇게 계속 반하고 싶다. 계속 반하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면 좋겠단다. 그녀는 애써 꾸미려고 하지 않는다. 아무렇지 않은 듯 담담하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두런두런 담아낼 뿐이다. 그래서 더 좋았다. 그런 모습들이 묘하게 눈길을 잡아끌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찾아낸 소중함이랄까. 어느 날과 다를 것 없는 일상이 소소하게 위로가 되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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