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병동으로의 휴가 - F/25
김현경 지음, 노보듀스 그림 / 자화상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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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고 여름에 가까워져서야 처음 본 엄마가 나와 함께 의사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는 나를 혼자 두면 안 된다는 말이었다. 의사 선생님의 표정은 좋지 않았고, 엄마는 내게 함께 2주 정도 여행을 갔다가 한 달 정도 대구 집에 함께 있자고 말했다. 항상 아빠와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아빠가 그동안 다른 데에 있더라도 집에 있자고 했다. 나는 그때까지도 내가 집에 있을 때 얼마나 스트레스 받았는지 모르냐며, “집에 가면 자살할 거야” 분명하게 말했다. 의사 선생님은 “그러면 갈 곳은 병동밖에 없어요. 병동에 갈래요?” 물었고, 나는 끄덕였다. (p.51)

 

무언가 일이 처리되는 것 같더니 교수라는 사람이 내려와 훈화 말씀 같은 걸 했다. 치료를 잘 해보자는 말이었다. 나는 대충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응급실에서부터 침대 그대로 실려 병동으로 올라갔다. 몸이 아픈 곳은 하나도 없었는데, 잘 걸을 수도 뛸 수도 있는데 침대에 실려 가니 기분이 이상했다. “저 걸을 수 있는데요?” 말했지만 그냥 누워 있으라 했다. 침대는 이중 철문을 지나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이 보이는 병동으로 들어갔다. 그때는 사실 이제 진짜 일과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있을 수 있겠다, 그리고 조금은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침대는 2인실에 나를 내려다주고 간호사로 보이는 사람들은 이따 이곳의 규칙이나 생활에 대해 알려준다고 했다. 나는 며칠째 그랬듯 계속 꾸벅꾸벅 졸았다. (p.66)

 

뉴스를 보고 있자면 저 미친 세상에서 어떻게 맨 정신으로 살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자신 안에 갇히고 자주 울고 난 얼굴이 되고 혼자 노래해도 괜찮은 이곳이, 되려 정상 같기도 하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세상에 의해 가두어진 것보다 세상으로부터 피난이나 휴가를 왔다는 생각이 든다. (p.155)

 

병동 거실에는 ‘가훈: 제대로 살자’ 라는 글씨가 적혀 있는데, 뭐가 ‘제대로’ 사는 건지, 그리고 왜 이게 여기 이 병동에 붙어 있는지 모르겠다. (p.218)

 

 

언젠가부터 어느 것도 할 수 없었다. 작은 기숙사 방 2층 침대에 누워 내일이 없기를 바랐다. 우울증 때문이었다. 자신이 이렇게 된 모든 이유가 자신의 무능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학교 상담실 앞을 몇 번 서성거렸고, 대학병원 정신의학과에 다녔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여전히 무기력하고 무능했다. 때로 집 앞 카페에 나가 앉아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술을 사 와 집에서 마시는 일이 생활의 전부였다. 죽으려고 했다. 별 다른 이유는 없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해주고, 회사에도 다니지 않고 취업을 하라는 금전적, 심리적 압박도 없었다. 누군가 ‘편하게 사니 그렇다’ 말해도 수긍할 만큼 편했다. 한 달 내내 밤낮 술에 취해 있던 어느 아침,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한참 전 SNS에 ps로 달아놓은 ‘서울 정신과 추천 부탁해요’라는 말을 보고, 혹시 멀지 않다면 자신이 다니는 정신과를 추천한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그 병원에서, 다른 병원으로, 또 대학병원 폐쇄병동으로 옮겨졌다.

 

저자 김현경이 갖고 있는 증상은 정확히 말하면 우울증이 아니라 조울증. 누군가는 이런 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팔리지 않는대도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하는 마음으로 만들어진 이 책은 양극성 장애라고 불리는 조울증과 공황장애,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이러다 정말 죽겠다 싶어서 제 발로 병동을 찾아 입원한 저자의 이야기로 술을 마실 때부터의 기록과 병원을 찾아다니던 때의 기록, 열흘간 정신과 폐쇄병동에서 지냈던 일들 그리고 그곳을 다녀와서 적어둔 일기와 메모 같은 것들이 감정의 흐름대로 두서없이 이어진다. 대부분 정신과 폐쇄병동이라고 하면 어둡고 침울한 분위기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자의 말에 의하면 모든 정신과 폐쇄병동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지는 않다고 한다. 폐쇄적인 곳도 있고 그보다 조금 더 자유로운 일반병동 같은 곳도 있다고 한다. 저자가 있던 곳은 다른 곳보다 더 자유롭고 수용 인원이 적은 곳으로 그곳에 주로 있던 환자들은 자살 기도를 비롯한 우울증과 초기 치매로 들어온 분들이었다. 3교대로 24시간을 지키는 간호사 분들이 계시고, 간호사 분들을 돕는 보호사 분들이 계셨다. 휴대폰은 물론 사용이 되지 않고 가족에게만 전화를 할 수 있으며 면회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따고 있고, 가족만 면회 할 수 있다. 모두 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 저자는 그곳에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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