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철도 999, 너의 별에 데려다줄게 - 어른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안드로메다 횡단 안내서
박사.이명석 지음 / 파람북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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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벌떡 일어나 TV 앞으로 가 앉았다. 브라운관 안에서는 철이라는 작고 못생긴 꼬마가 주인공 노릇을 했다. 금발의 늘씬한 미녀와 함께 새카만 기차를 타고 우주를 날아다녔다. 매번 신기한 상상의 별에 내렸고, 그때마다 기상 천외한 모험을 벌였다. 철이는 어떨 때는 서부의 사나이가 되어 ‘전사의 총’을 쏘아댔고, 때론 수십 명의 해적들과 맞서 싸워 기차를 지켜내기도 했다.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눈물을 자아내는 마음의 모험도 적지 않았다. <은하철도 999>는 내가 전혀 만나보지 못했던 세계였다. <오즈의 마법사>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닮았지만 그런 이국적인 마법 세계와는 또 달랐다. 다른 판타지들은 수평선 위의 이야기, 지금 이 세상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였다. 은하철도는 바로 내 앞에 놓인 수직 선로 위의 이야기였다. 이 선로를 힘차게 밟아가면 점점 가속이 붙고, 언젠가 저 하늘 위로 슈웅 하고 날아오를 수 있을 거야. 은하철도가 달리는 우주는 언젠가 내가 직접 찾아갈 미래였다. (p.24)

 

같이 여행을 하기로 결심한 뒤 메텔은 한 번도 철이를 떠나지 않았다. 철이와 같이 가지 않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철이가 자기를 데리고 여행을 다니는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어느 별에서건 철이가 정기권을 잃어버려 ‘은하철도 999’를 탈 수 없게 되면 미련 없이 가방을 들고 따라 내렸다. 그런 철이를 오랫동안 부러워했다. 절대로 자기를 버리지 않을 사람과 함께 하는 기나긴 여행, 그런 여행을 하고 싶었다. 버려질 것 같으면 지레 먼저 버려버리는 그런 여행 말고, 영원히 마주 보고 앉아 있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여행. (p.68)

 

철이는 ‘은하철도 999’를 타고 여행을 하면서, 그의 짧고 격렬한 삶을 자꾸 반복하고 복기한다. 죽기 직전의 사람의 눈앞으로 주마등처럼 지나간다는 일생처럼, 그렇게 차창 밖으로 일생이 지나간다. 행복의 끝에 따뜻한 라멘 한 그릇이 있고, 불행의 끝에 엄마가 죽던 날 내리던 눈보라가 있다. 우리는 일생에서 행복했던 순간만 추려낼 수 없고 마찬가지로 불행했던 순간만 추출해낼 수도 없다. 그냥 온전한 통째로 고향은 거기, 누워 있다.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고향이 아무리 먼 곳에 있더라도 과거의 재현은 고향을 자꾸 이곳에 불러온다. 추워서 울었던 기억은 따뜻한 구들목에서 뒹굴던 평온함을 덮지 못하고, 화창한 여름날의 행복감은 이어진 겨울의 우울함을 상쇄하지 못한다. 그런다 한들 어떠랴. 구식 기관차 외양 안에 최첨단 기계를 감춘 열차처럼, 우리는 과거를 안고 미래로 간다. (p.79)

 

‘은하철도 999’는 우주를 가로질러 달려간다. 언젠가 거대한 폭발이 있은 후 생겨나 팽창하고 있다는 그 우주다. 이 우주 안에 안드로메다도 있고 우리 은하계도 있고, 아주 작은 은하들도 떠다니고, 미지의 세계도 끝없이 이어진다. 그렇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은하철도 999」의 우주는 커다란 단일 공간처럼 느껴진다. 이 우주 안에서 우리가 겪는 일들은 모두 하나로 연결된다. 같은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철이는 저 별에서 만난 인연으로 이 별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기도 한다. 예전의 인연 덕에 결정적일 때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 안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무수히 많은 독립된 우주도 존재한다. 연결되어 있지만 연결되어 있지 않은 우주. 포함되어 있지만 포함되어 있지 않은 우주. 그것은 개개의 마음속에 있는 우주다. 우리는 개개인의 몸피의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그 안에 무한한 우주를 품고 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새로운 사건을 겪을 때마다 주렁주렁 넓어지는 우주를 가지고 있다. (p.229)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면 우주정거장에 햇빛이 쏟아지네 행복찾는 나그네의 눈동자는 불타오르고 엄마잃은 소년의 가슴엔 그리움이 솟아오르네 힘차게 달려라 은하철도999 힘차게달려라 은하철도999 은하철도999~! 보지는 못했어도 제목을 듣기만 하면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 가사. 맞다. 은하철도 999는 어렸던 그 시절을 회상하게 만드는 추억의 애니메이션이다. 검은 외투를 입은 금발 머리 메텔, 은하계에서 가장 못생긴 철이, 얼굴 없이 눈만 번쩍이는 차장, 기계 인간과 천년여왕, 하록선장 그리고 우리가 어느새 잃어버린 소중한 기차, 은하철도 999. 그 은하철도 999를 타고 상상의 별들을 지나 안드로메다로 여행을 떠난 철이는 무엇을 알게 되었을까? 책은 북 칼럼니스트 박사와 만화평론가 이명석이 철이와 메텔과 함께 ‘은하철도 999’를 타고 은하계를 여행하다 발견한 슬픔과 기쁨, 희망과 용기의 순간들의 기록이다. PART1. 그때 내 진심은 그게 아니었는데, PART2. 정말 저 별에 가야만 할까, PART3 걱정마지 마, 지금 날 사랑하면 돼, PART4. 기차가 출발하기 전에 돌아와야 해, 이렇게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이야기들은 이명석, 박사 순으로 나뉘어져 있다. PART1에서는 유년기 소년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PART2에서는 너무나 짧아서 아름다운 청춘에 대한 이야기를, PART3에서는 사람 혹은 생명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PART4에서는 삶의 자세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과연 철이는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마지막에는 기계로 몸을 바꿀까?

메텔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철이는 일생일대의 선택을 한다. 기계 인간이 되겠다고. 그러기 위해 정체불명의 여인 메텔의 손을 잡고 처음 보는 구식 외양의 열차에 운명을 맡기기로 결정한다. 엄마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은 너무나 크고, 삭막한 지구의 환경은 너무나 춥고 미래는 없었으니 철이로서는 선택이랄 것도 없었다. 그러나 여행을 하는 내내 만나는 현실은 철이의 선택에 조금씩 의문을 제기한다. 철이의 확신에는 잔금이 가기 시작한다.

 

우리는 두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또 철이와 메텔 그리고 차장과 함께 은하철도999를 타고 여행길에 오르며 저마다 자신 앞에 주어진 삶을 떠올리고 그 속에서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여러 생각들을 꺼내 놓으며 각자의 답을 찾아 나아간다. 그것은 친구와의 우정일수도 있고 청춘에 대한 것,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간관계 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일 수도 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인생이란 길 위에서 만나게 되는 수없이 많은 질문들과 그 답을 찾기 위한 몸부림. 인생이라는 것은 어느 하나 쉬운 게 없다. 하지만 그래서 더 재미있는 것이 아닐까. 광활한 우주를 여행하는 철이는 기차가 역에 정차하기 전까지 그곳이 어떤 곳인지,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더 궁금해하고 더 재미있어한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 어떤 날은 가시밭길을, 또 어떤 날은 웃음 가득한 꽃길을.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한치 앞도 알 수 없기에 한껏 더 기대하게 되고 그만큼 더 흥미진진하게 느껴진다. 오늘이 지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일어날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실패 따위는 생각하지 않아도 돼. 진짜 인생은 지금부터 시작이야.” 우리 인생은 언제나 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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