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서운하게 하는 것 모두 안녕히
김민준 지음 / 자화상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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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그 목소리를 듣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용기를 전해준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도 그만큼의 용기를 내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그리하여 물고기는 계속하여 앞으로 헤엄을 쳤다. 끝내 작은 이슬이 이파리의 끝자락에 당도하였을 때, 그 아슬아슬한 기울어짐 속에서 작은 물고기는 생각했다.

“소중한 존재를 지니게 된다는 게, 이렇게나 감사한 일인 줄은 몰랐어.” (숲 _ p.16)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은 우리를 서운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것보다 우리를 더욱 눈물겹게 하는 것은 어디에도 나를 기다려주는 이가 없다는 사실이다. 슬픔에 당당해지려면 혼자서도 걸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갈 곳이 없으니, 나아갈 이유도 희미해지는 것을 느낀다. 무릇 외로움이란 ‘더 열심히’라는 것으로 쉽게 견뎌지지 않는다.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 (슬픈 나 어제의 지금 _ p.75)

 

아마도 나는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계속해서 나를 붙잡던 당신에게 기여코 차갑게 선을 그을 수밖에는 없었던 나를 용서해줘요. 아마도 마음에도 국경이란 게 있나봐요. 한 번 선을 넘으면 다시는 함부로 돌아올 수가 없는 그런 경계가 있나 봐요. 나는 우리가 아직 가까이 있지만, 그 선을 넘었다고 생각해요. 마음의 국경 같은 거 말이예요. (우리의 마지막 바다 _ p.137)

 

세상에는 아름다운 순응과, 변화도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의 일상에서 도태되지 않고, 그들의 삶 속에서 깊이 있는 맛을 선사하려면 새로운 시도도 마땅히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또한 그것이 결코 전통에 대한 기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모두가 지켜온 시간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한 의미 있는 도전이라는 것을. (바다거북은 태어나자마자 어딘가를 향한다 _ p.174)

 

이번 한 달만 버티면, 몇 년 만 더 고생하면, 그러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아니, 우리 행복을 방해하는 요인들에는 시간제한이 있는 게 아니다.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일들은 언제 어디에서 즐비하다. 우리는 그러한 상념들로부터 영원히 졸업할 수 없다. 그러니 언젠가는 괜찮아질 거라는 믿음보다는, 지금 이 순간부터 행복한 이유들에 대해 고심해보는 편이 더 나았던 것이다. 앞서 누군가에게 말했듯이, 이미 나는 어른이었고, 행복은 나중에 오는 게 아니니까. (소설가 K의 일상 _ p.212)

 

 

 

첫 번째 이야기 <숲>은 평생을 이슬방울 안에서 살아온 작은 물고기와 그런 물고기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어주는 이름 모를 존재에 관한 이야기로 이슬 안의 작은 물고기는 이름 모를 존재가 나타나기 전까지 이슬 안에서 숨 쉬고 헤엄치고, 꿈을 꾸었지만, 반짝이는 그 물방울을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존재였다. 물고기에게 이슬이란 자신을 살게 하는 세계이면서 동시에 벽이었고, 그에게 주어진 자유이자, 구속이었던 것이다. 그런 물고기에 갑자기 나타난 이름 모를 목소리의 존재는 위안이었다. 이들은 서로의 존재를 알고 난 이후부터 서로를 의식하고 받아들이며 서로의 쓸쓸함을 위로해주고 고민을 들어주는 등 끊임없이 서로를 위하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외로운 생활 속에서 서로의 목소리를 느끼고 영혼의 대화를 나누는 존재는 서로가 서로에게 유일했던 것이다. 목소리에게 자신의 용기를 전해주고 싶었던 이슬 안의 작은 물고기는 자신에게 주어진 세계를 이탈하였고, 새까만 어둠 속의 목소리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에워싸고 있던 껍데기를 깨부수고 나와 새로운 인연을 향해 뻗어 나갔다.

두 번째 이야기 <슬픈 나 어제의 지금>은 진단명조차 알 수 없는 원인불명의 피부병으로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한 남자의 이야기로 주인공인 남자는 이 일이 생기기 전까지 누군가에게 일어난 좋지 않은 일을 가지고 사실과 추측을 뒤섞은 모호한 기사를 만들어내고 그것으로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등 타인의 아픔을 이용하여 월급을 받아 챙기던 기자였다. 하지만 병을 얻은 이후로는 홀로 방안에 틀어박혀 오직 인터넷 창을 통해 세상과 소통을 이어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 선배와의 만남으로 세상에 발을 내딛고 그에 용기를 얻어 숨겨왔던 자신을 내보이지만 그것은 다시 고스란히 그에게 상처로 되돌아온다.

세 번째 이야기 <우리의 마지막 바다>는 헤어지는 연인의 이야기다. 한때는 서로 사랑했지만 점점 서로의 마음이 엇갈리면서 한 사람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서운함을 느끼고 나머지 한 사람에게는 그 마음이 부담으로 다가오면서 이제는 헤어질 수밖에 없는 연인들의 애틋한 마음을 글로 담담히 담아낸다.

네 번째 이야기 <바다거북은 태어나자마자 어딘가를 향한다>는 초밥 명인을 목표로 하고 있는 이로하의 이야기로 그의 집안은 대대손손 초밥 명인의 길을 걷고 있으나, 아직까지 그는 자신이 그 자격에 충족되지 못함을 뉘우치는 중이다. 그의 스승이자 아버지는 일찍이 초밥 명인으로 명성이 자자하였지만 지금은 은퇴를 할 시기가 되어 이후에 자신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고심하는 중이고 하나 있는 그의 아들은 일찍이 초밥의 길을 잇지 않겠다고 선포를 해 놓은 상황. 이로하는 자신이 지켜온 것을 고수하기보다는 계속 갈고 닦는 것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는 자신의 스승인 아버지와 자신의 꿈을 찾아 집안에서 대대로 전해내려오는 초밥이 아닌 사진가를 꿈꾸는 아들을 보며 자기 자신을 되돌아본다.

다섯 번째 이야기 <소설가 K의 일상>은 허구의 인물 K를 중심으로 이어지는 짧은 소설이다. 스승님에게 문학적으로 가치가 있는 글을 써볼 것을 권유받은 주인공 K. 깊이 고심해보겠다고 하지만 그는 사실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그저 그는 개인적인 만족을 위해 소설을 쓸 뿐이다. 이 땅에 이런 이야기가 하나쯤 있으면 진심어린 미소를 짓고 눈물 흘릴 일이 하나 정도는 더 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에게 글을 쓰는 일이란 윤곽만 지니고 있던 숨겨진 자아의 투영과도 같다. 그 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자신과 마주 닿아 있다. 그는 그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실존하며 숨을 쉬고 살아가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니 한 권의 소설이란 단순한 허구의 세계가 아니라, 누군가의 속사성이며 오래된 비밀이자, 잊을 수 없는 기억의 공간인 것이다. 책을 펼치면 언제든 그곳에 발을 내딛을 수가 있다.

책은 다섯 편의 짧은 소설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의 이야기는 잔잔한 감동과 함께 위로의 메시지를 담아낸다. <숲>에서 이슬 안의 작은 물고기는 누군가에게 용기를 전해준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도 그만큼의 용기를 내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소중한 친구를 만나고 그에게 닿기 위해 자신이 태어나고 평생 살아온 이슬 안에서 박차고 나온다. 어느새 자신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어 버린 그를 위해서 그리고 제 자신을 위해서 두렵고 막막하고 어렵지만 그것을 넘어선다. <슬픈 나 어제의 지금>에서 주인공인 남자는 혼자만의 시간속에서 자기 자신을 뒤돌다본다.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것들이 흐릿해져 가지만 성취했던 것을 포기하고 나니 자신을 조여오던 스스로의 감옥창살이 얇아져 가고 있음을 느낀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니 그제야 자신의 본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날 대학 선배와의 만남으로 과거 그가 선배에게 전해주었던 마음을 다시 되돌려받으며 다시 일어설 힘을 얻지만 슬픔은 소리없이 찾아와 그에게 또다시 깊은 상처를 남긴다. 상처를 주기란 쉽다. 하지만 그 상처에서 벗어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 주인공 남자가 겪고 있는 고독감과 외로움의 깊이를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보려 하지만 그 상처의 깊이를 가늠할 수가 없다. <우리의 마지막 바다>에서는 행복했던 시간들이 이제는 서로의 마음에 멍을 들게 하는 말이 되어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이어 나간다. 이별 앞에서 뒤늦은 후회와 미안함 마음이 교차하고 과거의 아련했던 마음들이 스멀스멀 피어 오른다. <바다거북은 태어나자마자 어딘가를 향한다>는 자신이 원하는 삶이란 무엇이며 어디에 중점을 두고 살아가야 하는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고민하는 아들이자 아버지인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나 자신의 자아를 일깨워준다. 스스로의 삶을 쟁취하는 아들과 자신의 아버지 사이에서 끼여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한 가장의 이야기에 적잖은 감동이 밀려온다. 마지막 <소설가 K의 일상>에서 주인공 K는 인간이 어떤 순간순간의 모음으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진정한 행복이란 개별적인 즐거움 하나하나에 깊이 몰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고, 각각의 주어진 순간 자체에 만족감을 느낄 수 있어야 진실로 행복한 삶을 경험할 수 있다고 믿는다. 작가는 본인의 이야기가 절대 아니라고 하지만 어째 읽으면 읽을수록 그와 반대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잠깐이라마 작가님의 속마음을 엿볼 수 있던 아니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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