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미니북)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하소연 옮김 / 자화상 / 201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개츠비는 내가 경멸하고 비웃는 세상의 모든 것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그에게는 눈이 부시도록 찬란한 개성이 있었고, 고양된 감수성과 예리한 민감성도 존재했다. 그러한 민감성은 ‘창조적 기질’이라고 그럴듯하게 불리는 무기력하고 활기 없는 감수성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였다. 그것은 희망을 갖게 하는 탁월한 재능이었으며 ‘로맨틱한 기민함’과 같은 것인데,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일찍이 발견한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결코 발견할 수 없을 것 같은 기질이었다. (p.11)

 

연주가 시작되었으나 내 귀엔 제대로 들려오지 않았다. 나의 눈에 개츠비의 모습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는 대리석 층계 위에 혼자 서서 손님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햇볕에 그을린 피부는 얼굴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했고 그의 짧은 머리카락은 매일 단정하게 손질되고 있다는 인상을 풍겼다. 그에게서 나쁜 사람일 거란 인상을 주는 그림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파티의 분위기가 고조될수록 그는 더욱 바른 자세를 보이며 빈틈이 없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끝나자 여자들은 흐트러지는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였다. 남자들의 가슴으로, 심지어는 무리 속으로 뒤로 넘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개츠비에게는 함부로 하지 못했다. (p.93)

 

데이지가 갑자기 개츠비의 팔짱을 꼈다. 그러나 개츠비는 지금 자신이 한 말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어 팔짱을 낀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에게 녹색등이 가지고 있던 거대한 의미가 지금은 영원히 소멸해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자신과 데이지를 갈라놓고 있던 그 끝없는 거리에 비하면, 등불은 바로 그녀 옆에, 그녀를 만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는 것처럼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바라던 것이 현실이 되었고, 그것은 잔교 위에서 깜빡이는 단순한 녹색등에 지나지 않게 되어 버렸다. 그를 사로잡던 것 중의 하나가 줄어든 것이다. (p.162)

 

“그녀의 목소리는 돈으로 가득 차 있어요.”

갑자기 그가 이렇게 말했다. 그랬다. 그때까지 나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분명 돈으로 가득 찬 목소리였다. 파도치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의 매력은 바로 그것이었다. 딸랑거리는 그 울림, 그 심벌즈의 노래, 그것은 돈의 소리였다. 높은 곳의 흰 궁전에 사는 공주, 황금의 여자······. (p.210)

 

실제로 그는 그녀의 손을 잡을 권리조차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녀를 얻으려고 했다. 자기 자신을 경멸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분명히 거짓으로 그녀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이 많은 백만장자인 척하며 자신을 속였던 것은 아니다. 그는 다른 식으로 그녀에게 어떤 안정감을 갖게 만들었다. 상류사회 출신이고, 충분히 그녀를 돌봐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믿게 했다. 사실 그에게 그런 능력이 있을 리가 없었다. 배경이 되어 줄 만한 유복한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정부가 하라는 대로 세계 어느 곳으로 쫓겨 갈지도 모르는 비참한 신세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경멸하지 않았고, 또한 일의 전개도 그의 예상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아마 그는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은 손에 넣고 도망갈 생각이었을 것이다. (p.268)

 

 

주인공인 개츠비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대단한 야심가로 출세를 꿈꾼다.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대위로 임관되어 참전하였고, 테일러 기지에 주둔하던 중에 교양 있는 상류층 여인 데이지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는 자신이 데이지의 집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어쩔 수 없는 우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은 무일푼인 청년에 불과했고, 지금 정체를 감추고 있는 군복이 언제 어느 때에 어깨에서 벗겨질지 모르는 형편이었다. 따라서 그는 교묘하게 현재를 최대한 이용했고, 손에 들어오는 것은 무엇이든 탐욕스럽게 주저하지 않고 손에 넣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해외로 파병되었고, 종전 후 귀향하려고 했으나 군의 명령으로 옥스퍼드로 가게 된다. 그 사이 개츠비가 돌아오지 않자 불안해하던 데이지는 사교계에 진출하게 되고, 사랑의 힘이든 돈의 힘이든 아니면 저항하기 어려운 현실의 요청이든, 어떤 힘에 의해 자신의 생활이 안정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시카고 출신의 부호 톰 뷰캐넌과 결혼해 버린다. 뒤늦게 이 소식을 듣게 된 개츠비는 데이지를 다시 찾기 위해 부자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그 이후 불법적인 일을 하며 갑부가 된 개츠비는 데이지가 사는 곳 맞은편 해안가에 저택을 사서 매주 파티를 벌이며 데이지가 자신을 방문하길 희망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데이지를 만나게 되고 과거의 사랑을 다시 되돌리고자 하지만 사랑과 꿈을 모두 잃은 채 모두에게 배신을 당하게 된다.

 

책은 얼핏 젊은 연인의 사랑과 낭만을 이야기하는 로맨스 소설로 보이지만 그 속엔 1920년대 미국의 사회상이 보다 자세히 담겨있다. 소설 속 화자인 닉 캐러웨이가 묘사하던 시대는 제 1차 세계대전 직후인 일명 재즈시대라고 불리는 시대였다. 미국은 급격한 산업화와 전쟁의 승리로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얻었지만 전쟁이 가져다분 참혹한 잔상을 경험한 젊은이들이 많았다. 잃어버린 세대로 불리는 이들은 자신의 삶에 환멸을 느끼고 새로운 것을 찾아 유럽으로 떠났다. 그리고 그들은 그곳에서도 삶의 중심을 찾지 못하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위대한 개츠비> 그 당시의 인물과 배경을 설명하며 이를 날카롭게 묘사해낸다. 신흥부자를 대표하는 개츠비와 집안 대대로 전통부자였던 톰 뷰캐넌과 데이지. 이들의 차이는 행동과 가치관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돈으로 만들어 낸 화려한 파티를 통해 자신의 부를 과시하던 개츠비와 유명인이지만 교양 없는 사람들의 낯선 방문이 복잡하다며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톰과 데이지의 행동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개츠비가 살던 웨스트에그와 데이지가 살던 이스트에스의 동네 분위기와 이웃주민들을 묘사하는 글에서도 자세히 나타난다.

 

끝내 데이지의 진정한 사랑을 얻지 못하고 허망하게 죽고 만 개츠비. 그는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자유로운 몸이 되면 두 사람은 루이빌로 돌아가 결혼을 할 예정이었으니까. 마치 5년 전에 그렇게 할 뻔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변했다. 처음에 그녀의 마음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그녀는 부를 둘러싸고 오직 욕망으로 뒤덮힌 여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톰 뷰캐넌은 그녀의 허영심을 채워줄 수 있는 남자였다. 모든 것이 너무나 경솔하고 또 복잡하게 뒤얽혀 있다. 그들은 개츠비를 그렇게 만들어 버린 일에 대해서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결국 개츠비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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