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립 지음 / 자화상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에 어린아이를 품고 산다.
내 안에 그 어린아이는 불쑥불쑥 튀어나와 지금 내가 잘하고 있냐고 묻는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맞는 것이냐고 묻는다. 불안하게도 마음을 휘젓고 뛰어다닌다.

이 어린아이를 달래는 법은 이 앞에 보이는 길이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설득시키는 것이었다. 양쪽에 현실적인 길이 있지만서도 내가 가장 즐거운 길로 가야 행복하겠다고 설득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면 아이는 나보다도 먼저 그 길로 뛰어들어간다. 나는 그 아이를 따라가기만 하면 됐다.(p.12)

 

 

책상 한켠에 아끼던 장식품의 색이 바래고 먼지가 수두룩해 닦아보려고 하니 너무 깊이 먼지가 내려앉아 쓸어내지도 못했다. 그래서 닦이지 않는 곳은 그대로 둔 채 그렇게 조금씩 세월을 맞았다. 잊혀지니 바래갔다. 요즈음 온전히 고민할 틈도, 내 생각들 또한 점점 옅어지니 지금 내 틈에도 먼지가 쌓이고 있는 것 같았다. (p.42)

 

 

 

 

 

주저 앉았나.
일어나는 법은 주저앉는 법의 역순이다.
나는 잠시 쉬었다가 일어나기로 했다. (p.84)

 

 

정신을 차려보니 칠흑 같은 어둠이다. 이 밤은 고요한데도, 주변의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성가실 만큼. 나는 집중하고 있었다. 한껏 예민해진 채로 더 신경을 곤두세웠다. 너무 깜깜해서 주위도 보지 못하고 더듬더듬, 어둡고 조용하니 생각과 시야는 좁아진다. 조심히 발을 딛었는데 허공이다. 나는 겨우 중심을 잡는다. 뭐지 아, 내가 외줄 위에 서 있구나. (p.88)

 

 

생각하는 것보다 나의 시야는 좁고, 내가 사는 세상도 좁았기 때문에, 작은 일도 쉬이 넘기지 못했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유치원을 다니던 시절엔 유치원이 내 세상의 전부이고, 사춘기 때에는 친구들 일만큼 신경 쓰이는 문제도 없다. 내 세상은 좁았고, 좁고, 좁다. 어느 순간 문득 깨달았다. 유리를 깨는 거친 방법이라도 우리는 그러면서 성숙하는 거라고. 그러곤 지금의 먼지들을 더 작게 보려는 습관을 새로 들이기로 했다. (p.100)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우리는 여름이 온 줄 착각하기도 하고, 일교차에 하루에도 겨울인지 봄인지 헷갈려하며, 그렇게 늘 순간의 감정들이 진심인 줄 착각하기도 한다. 봄은 지나고 여름은 온다. 착각과는 별개로. 순간들처럼. 그러니 우리는 오롯이 지금을 살면 된다. 미래에 살 필요도 걱정할 필요도 없다. 이 사람 저 사람에 묻혀서 그냥 지금을 살면 된다. (p.108)

 

 이 책은 <생각하는 오른손>의 작가 성립의 두 번째 에세이로 겉모습만 보아서는 보통의 책들과 다름이 없다. 하지만 책을 펼치자 신기한 광경이 눈앞으로 펼쳐진다. 1부는 에세이로, 2부는 다이어리로 구성이 상당히 독특하게 되어있다. 어떻게 이런 획기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거지? 책장을 넘겨보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다. 작가는 1부에서 자신의 삶을 담아낸다. 졸업을 하고 작가 생활을 한 지 2년 6개월.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를 즐기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 삶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야 하거늘 어찌 된 일인지 그게 쉽지가 않다. 실제 꿈꿨던 일을 하고 있는데도 느껴지는 괴리 때문에 힘들고 삶의 경험이 많아질수록 큰일에도 작은 일에도 무뎌지고 망설임과 설레임을 잃어간다. 자신이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고민하며 그 속에서 스스로 답을 찾아나간다. 2부는 다이어리로 딱히 정해진 틀은 없다. 그저 본인이 원하면 그 해의 다이어리가 시작되는 것이다. 선택지는 다가오는 2019년과 2020년. 아래쪽 귀퉁이에 투박하게 드로잉을 해놓았는데 책장을 빠르게 넘기면 그림이 살아서 움직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