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 자화상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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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지요.
새도 알을 깨고 나오려면
온 힘을 다해 애써야 한다는 걸
당신도 잘 알잖아요.

돌이켜 생각해보고 자신에게 한번 물어보세요.
대체 그 길이 그렇게도 어려웠던가.
그저 어렵기만 했던가.

그러나 역시 아름답지 않았는가.

 

 

지금까지의 이야기해온 경험 중에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하고 깊이 기억되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권위에 대한 최초의 균열이었고, 내 유년 시절의 근간으르 이루는 기둥에 가해진 최초의 톱질이었다. 그것은 모든 이가 각자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스스로 무너뜨려야 하는 것이었다. 누구나 감지하지 못한 이런 경험으로 우리들의 운명에 내면적이고 본질적인 선이 그어지는 것이다. 그런 톱질이나 균열의 흔적은 다시 아물고 치유되기도 하지만, 우리 마음속 가장 비밀스러운 암실에서는 여전히 살아남아 계속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이다. (p.31)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위기를 경험한다. 특히 평범한 사람에게 이것은 인생의 분기점이 된다. 자기 삶의 욕구가 그의 주변 환경과 갈등을 일으키고, 앞으로 나갈 길을 추구한다는 것은 끝없는 투쟁이라는 교훈을 배우는 인생의 한 기점이 되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생애에 단 한 번 숙명적인 죽음과 새로운 탄생을 경험한다. 그들의 어린 시절은 허물어지고 그들이 사랑하는 모든 것이 그들을 떠나고 고독과 죽음이라는 차가움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한 경험은 평생에 단 한 번 가능한 것이다.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이 경험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 채 과거에 집착하고 수많은 꿈 중에서 가장 잘못되고 잔인한 실낙원의 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p.77)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라고 한다.” 나는 이글을 여러 번 읽은 후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그것은 데미안에게서 온 화답이었다. 그와 나를 빼놓고는 아무도 그 새에 대해서 알 리가 없었다. 그는 나의 그림을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은 서로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단 말인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를 괴롭힌 것은 아프락사스라는 이름의 정체였다. 그것은 무엇일까? 나는 한 번도 그런 이름을 들은 적도 읽어 본 적도 없었다. (p.143)

 

 

누구에게나 ‘사명’은 있다 할 지라도 그럼에도 누구에게도 개인의 선택과 해석을 임의로 지배할 수 있는 ‘사명’은 없다는 깨달음이 날카로운 불꽃처럼 나를 불태웠다. 새로운 신을 원한다는 것은 잘못이었으며 이 세계에 무엇인가를 주려고 하는 것은 전적으로 거짓이었다! 깨달은 인간에게 부여된 임무는 단 한 가지 그것 말고는 아무런 의무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으르 찾고, 자신의 내면을 견고히 하며, 그 길이 어디를 향하든지 조심스럽게 자신의 길을 더듬어 나아가는 일. 그 이외의 다른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고, 이 생각이야 말로 내가 이번의 체험에서 얻은 열매였다. (p.203)

 

 

부모의 보호속에서 안락하게 살아가던 싱클레어에게는 두 세계가 얽혀 있었다. 한 세계는 아버지의 집으로 이 영역의 대부분은 싱클레어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과 엄격함, 모범, 교육이라고 할 수 있는 세계였다. 이 세계 속에는 부드러운 빛, 명확함과 깨끗함, 그리고 따뜻하고 다정한 예절들이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다른 세계는 이미 집 한가운데에서 시작되고 있었는데 그것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냄새도 달랐고, 말투도 달랐으며, 기대와 요구 또한 달랐다. 이 두 번째 세계에는 하녀라든가 직공들이 속해 있었으며 유령 이야기와 추한 소문이 있었다. 그곳에는 섬뜩하고 요사스럽고 끔찍한 수수께끼 같은 일들이 넘쳤고, 도살장과 감옥, 주정뱅이들과 고함치는 여자들, 새끼 낳는 암소와 쓰러진 말들, 강도와 살인, 자살 같은 일들이 일어났다. 선과 악, 이 두 세계는 경계가 가깝게 닿아 서로 공존하고 있었고 눈과 귀를 돌리면 어디에나 다른 세계가 있었다. 

어느 날 수업이 없던 오후, 싱클레어는 이웃의 두 친구와 집 근처를 배회하고 있던 중에 힘세고 난폭한 프란츠 크로머를 만나게 되고 그로인해 어두운 세계를 접하게 된다. 그의 명령에 복종을 하면서 함께 있던 두 친구는 처음부터 자신에게서 떨어져 크로머에게 붙었고 싱클레어는 그들 사이에서 이방인과도 같았다. 두 친구들이 여차하면 자신을 모른체할 거라는 사실에 두려워진 싱클레어는 너무 두려운 나머지 도둑질을 하지 않았음에도 자신이 사과를 훔쳤다는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를 꾸며대기 시작하고 그 결과 크로머로부터 협박을 당하며 고통스러운 관계를 이어가게 된다. 그러나 막스 데미안이라는 새로운 전학생이 싱클레어를 도와 위기를 모면하게 되고 그 일을 계기로 가까운 사이가 된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여태껏 당연하다고 여겨 온 것들에 의문을 던지며 전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알려 준다. 이후 싱클레어는 난생처음으로 집을 떠나 다른 도시의 상급학교에 진학하게 되면서 데미안과 헤어지게 되고 다시 어둠의 세계에 빠지게 된 그는 위태롭게 방황하며 혼란스러워한다. 그러나 데미안의 편지를 받고 참된 자아를 발견하게 되고 그로 인해 자신의 내면을 구축하는 방법을 깨우치게 된다.  


데미안은 당시 문단에서 대문호로 인정받던 헤르만 헤세가 작가로서 자신의 소설이 작품성만으로 인정받는지 확인해보고 싶어 1919년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출판한 소설로,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가 열 살 때부터 청년이 되기까지 내면의 성장 과정을 그리고 있다. 부모님의 그늘 아래에서 평온한 생활을 이어가던 싱클레어는 크로머를 만나면서 어두운 세계를 접하게 되고 그로 인해 자신을 감싸고 있던 세계가 허물어지며 자신이 속한 세계가 전부가 아님을 깨닫기 시작한다. 나쁜 짓이라고는 사탕이나 과일 같은 간식을 몰래 꺼내 먹는 일밖엔 하지 않았던 싱클레어가 크로머로 인해 어머니 책상에서 자신의 저금통을 훔쳐나오는 도둑질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크로머가 속한 세계에 한 걸음 가까워지게 되면서 자신이 타락의 길로 빠져들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불안해하는 모습에서 어린 아이가 어른이 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시련을 겪는 모습들이 떠오른다. 충분히 아프고 힘든 괴로운 성장과정이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나면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성숙해진 자신과 마주한다. 그것은 마치 길고 긴 터널을 지나면 눈부신 빛을 맞이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성장하며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 아닐까. 저자는 에밀 싱클레어가 커가는 모습을 통해 현실에서 충분히 고뇌하며 스스로 세계에서 알을 깨고 나와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치밀하게 그려낸다. 한마디로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싱클레어라는 소년이 20대 중반의 청년이 되기까지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은 우리 부모님들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우리 아이들도 한 번쯤은 겪어야 할 시련이다.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젊은이들은 방황, 그 과정은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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