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여우 길들이기
리 앨런 듀가킨.류드밀라 트루트 지음, 서민아 옮김 / 필로소픽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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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랴예프와 류드밀라는 푸신카가 류드밀라와 함께 생활하는 동안 개들이 인간과 맺는 것과 같은 특별한 유대 관계를 발전시킬지 확인하고 싶었다. 애완동물을 제외한 대부분의 가축화된 동물들은 인간과 친밀한 관계를 맺지 않는다. 지금까지 가장 강한 애착과 충성심은 주인과 개 사이에서 나타났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드는 걸까? 인간과 동물 사이의 깊은 유대감은 오랜 시간에 걸쳐 발전했을까? 아니면 류드밀라와 벨랴예프가 이미 여우들에게서 보았던 수많은 다른 변화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에 대한 친밀함은 금세 드러날 수 있는 변화였을까? 인간과 함께 생활하는 것은 길들인 여우에게 자연스러운 일이었을까? (P.9)

 

 

 

드미트리의 실험은 유전학 연구에서 지금까지 한 번도 실시된 적 없는 규모였다. 지금까지는 주로 아주 작은 바이러스와 박테리아 혹은 빠르게 번식하는 파리와 쥐를 대상으로 실험했지, 1년에 딱 한 번 짝짓기를 하는 여우와 같은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한 적은 없었다. 새끼 여우들을 각 세대마다 교배시키는 데 걸리는 시간 때문에 실험이 결과를 얻기까지는 몇 년, 어쩌면 몇십 년, 아니 그보다 더 오랜 기간이 걸릴지 몰랐다. 하지만 드미트리는 장기간의 헌신과 위험을 모두 감수할 가치가 있는 실험이라고 생각했다. 실험 결과가 나오면 틀림없이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게 될 것이었다. (P.16)

 

 

 

1950년대 옛 소련 시절, 모피 동물 품종개량 연구를 위해 모스크바의 여우농장을 둘러보던 유전학자 드미트리 벨랴예프는 어떤 여우들이 유난히 차분하고 온순하게 행동하는 것을 발견한다. 농장에서 사육되는 여우는 대부분 사람에게 공격적이었기 때문에 온순한 여우들은 시선을 끌었고, 벨랴예프는 이런 생각을 떠올린다. 혹시 여우를 길들일 수도 있을까? 벨랴예프가 처음 은여우 가축화 실험을 기획하던 시기는 소련이 유전학을 정치적인 이유로 탄압하던 시절이었다. 가축화의 유전학에 관한 진지한 실험을 하는 것은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벨랴예프는 이 실험이 가축화의 본질을 밝혀낼 수 있으리라고 믿었고, 결국 표면적으로는 ‘모피 품종개량’이라는 이유를 내걸고 실제로는 여우를 개로 길들이기 위한 목적의 실험을 감행했다. 유전학을 '부르주아 과학'이라고 탄압한 옛 소련 정부의 눈을 피해 시베리아 외딴 여우농장에서 비밀리에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류드밀라 트루트는 여우들을 직접 돌보고 관찰했던 실험의 또 다른 주축이었다. 트루트는 세대를 거듭할수록 여우들이 점차 인간의 관심을 끌고 싶어 하며 마치 개들처럼 행동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들은 이 길들인 동물을 빠른 시간 안에 만들어냈다. 이 같은 성과를 거둔 시간은 6년이 채 안 되었는데, 우리 선조들이 늑대를 개로 길들이기까지 걸린 시간에 비하면 진화적인 시간으로 눈 한번 깜박거리는 사이에 지나지 않는다. 두 사람은 영하 40도라는, 보통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추운 시베리아에서 이 연구를 진행했다. 이곳에서 류드밀라와 그녀보다 먼저 연구를 시작한 드미트리는 동물의 행동과 진화에 관해 믿기 어려울 만큼 놀라운 실험들을 상당히 오랜 시간에 걸쳐 실시했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의 얼굴을 핥으며 심장을 녹일 만큼 귀엽고 순한 여우를 탄생시켰다. 은여우 길들이기 실험은 지금도 이어지며 동물들이 어떻게 인간과 살아가게 됐는지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을 밝혀내고 있다.

이 책은 40년 전 유전학계를 뒤흔들 정도로 큰 충격을 주었던 은여우 가축화 실험에 얽힌 모든 이야기를 소개한다. 구소련 시절 스탈린의 눈을 피해 외딴 여우 농장에서 비밀리에 시작되어 오늘날까지도 진행되고 있는 이 실험은 개의 진화를 연구한 가장 유명한 실험이다. 유전학적으로 늑대와 가장 가까운 은여우, 그중에서도 가장 온순한 여우들만을 골라 교배하고 6년 만에 귀엽고 순한 여우로 가축화시킴으로써 늑대가 개로 진화한 과정을 재현하는 데 성공하였다. 은여우 가축화 실험이 전 세계에 알려진 지는 오래되었지만 실험에 얽힌 모든 이야기를 자세히 알린 글은 이 책이 처음이다. 사랑스러운 여우들, 과학자들, 여우를 돌본 사람들, 실험들, 정치적 음모, 거의 비극이라고 할 만한 사건과 정말 비극적인 사건, 러브 스토리,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우러진 일 등, 모든 이야기가 이 책속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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